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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의 현장 탐방 - 스티로폼 원형 조각의 창시자 조각가 최충웅 교수

  • 웹출고시간2014.04.10 16:06:31
  • 최종수정2014.05.01 15:29:43
필자가 최충웅 교수를 마지막으로 만난 기억은 1999년 청주문화원 갤러리에서 있었던 그의 개인전에서이다.

그 후로 근 15년 간 최 교수를 만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미술계에서도 그와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지난 3월 31일 최 교수와의 만남은 낯설고 설레이는 만남이었다.

오랫동안 건강이 좋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던 터였기 때문에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최 교수 댁을 찾았다.

ⓒ 송봉화 다큐멘터리 작가
그러나 다행히 교수님의 표정이 밝고 안색도 좋아 보였다. 170 중반은 족히 넘어 보이는 훤칠한 키에 전형적인 미남의 모습인 최 교수의 모습에서 병색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여전히 멋스러웠다.

중앙 화단에서 활동하는 청주 출신 조각가는 최 교수를 비롯하여 지난 2월 작고한 김봉구 교수와 김경화 교수 등 몇 분 되지 않는다.

생전에 평소 청주를 자주 찾았던 김봉구 교수는 지역 후배 작가들에게도 매우 익숙해 있을 만큼 교분이 잦았다. 그러나 최 교수는 유감스럽게도 그동안 고향과 교류가 거의 없었다.

이번 방문을 통해 그가 청주공고를 졸업하였고, 김봉구 교수(청주상고 출신)의 서울미대 조각과 1년 선배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작품세계의 전성기를 누려야 할 시기였던 2002년 9월 간암수술을 받았고, 2004년에는 대장암 수술을 받게 되고, 2009년에는 인파선 항암수술까지 받으며 생사를 오가는 투병생활을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2002년 이후 그의 작품 활동은 불가피하게 긴 휴면기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 송봉화 다큐멘터리 작가
그의 고향은 청주 낭성 인경리이다. 대대로 부모님의 고향이지만 일제 때 공무원이었던 부친이 전출을 다녀야 한 탓에 최 교수는 충주에서 태어났다.

6.25가 일어난 그 해 충주 교현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는데 청주 교동초등학교로 전학하여 18회 졸업을 하였으니 필자에게는 8년 직속 선배가 되는 인연을 갖는다.

전쟁 중이였고 가정은 너무 궁핍하여 초등학교 시절에는 학교 앞에서 좌판을 놓고 장사까지 해야 할 만큼 생활이 궁핍하였음을 회상한다.

최 교수는 주성중학교를 거쳐 청주공고에 진학하였다. 중학교 미술반 시절 미술교사였던 김용희 선생과 청주공고 진학 후에도 미술반 미술교사의 인연이 이어지면서 최 교수에게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청주사범 재학 시절 정창섭(전, 서울미대 교수) 화백과 동기였던 김용희 선생은 중학 미술반 시절부터 조각에 재능이 뛰어났던 최충웅과 고영수(현재 뉴욕에 거주) 두 제자를 서울미대 조각과 진학으로 추천하였다.

최 교수가 청주공고 재학 시절 우정을 나눈 친구로는 충북예술의 대표적 문인 임찬순 선생과 전 청주문화원장 박영수 선생이 있다.

그러나 그의 청주에서의 생활은 1957년 서울미대 진학과 함께 끝나게 된다. 그는 재학 중 군대를 다녀오고 63년 졸업하기 전까지 학교에서 제공해주는 흙, 돌, 용접기 등 모든 재료를 통하여 조각가로서의 수련과정을 마친다.

조각과를 1등으로 졸업한 후 첫 근무지 발령을 경기중학교 미술교사로 받았다. 이 때부터 그의 인생은 순풍에 돛을 단 듯 순조롭게 풀리게 된다.

그 후 서울시 중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서울고등학교 재직 시 모시고 있던 이창갑 교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대구사범 동기로서 뒤에 서울시 교육감으로 영전하게 되는데, 이창갑 교육감은 교사 시절 최 교수의 중요한 멘토가 되어준다.

최충웅 선생은 경기상고와 서울고 미술교사를 거친 후 1990년 서울산업대학교 조형예술학과 교수로 부임하게 된다.

중등학교 시절 이창갑 선생을 미술교사로 만나 서울미대를 진학하고 졸업할 때까지를 최 교수의 형성의 1기라 한다면, 1963년 경기중학교 미술교사로 시작하여 1990년 2월 서울고에서 미술교사 생활을 마칠 때까지의 27년간의 세월을 그의 인생의 2기라 할 수 있다.

최충웅 선생은 한국미술사의 대표적인 조각가인 김세중, 김종영, 송영수 교수의 수(首)제자로 모교 교수가 되고자 했으나 불가피하게 꿈을 접고 비교적 늦은 나이인 53세가 되던 1990년 서울산업대학교 교수로 부임한다.

그의 인생의 3기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독창적 창작 활동에 대한 평가는 형태와 질감의 특이성에서 찾을 수 있는데, 흥미롭게도 발상의 배경이 되는 모티브는 모두 우리나라 고대 석탑(石塔)의 형태에서 유래하고 있다.

그는 대학 재학 시부터 비록 현대적 조소기법을 배우지만 자신의 작품의 주제는 우리의 문화유산에서 찾고자 한 것 같다.

ⓒ 송봉화 다큐멘터리 작가
특히 한국 조각의 부족한 연구 자료를 충당하기 위해 '장승'에 대한 연구를 위해 전국을 순회하였고, '현대조각회'를 통하여 이정갑 교수(전, 공주대 교수) 등과 함께 우리 것에 대한 탐구와 우리 양식, 전통을 만들어 후대에 물려주어야 하겠다는 생각도 한 것 같다.

장승과 석탑과 더불어 작품의 형태의 또 하나의 근원은 전통 건축의 공포(栱包)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 모두가 모름지기 창작의 시발점을 한국적 미의식를 통하여 현대적 심미성을 재창조하겠다는 그의 의지의 구현이다.

그 당시 현대미술의 흐름도 유럽의 앵포르멜 회화와 구성주의,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미술의 모방에 휩쓸려 있던 시기로 어떻게 보면 미술사적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우리 것을 지키고자 하는 자아의식의 구현을 보다 중요시하다고 생각한 고집 때문인 것 같다.

ⓒ 송봉화 다큐멘터리 작가
그렇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최 교수의 작품은 모두가 구상(具象)적 소재에서 출발하고 있다. 추상의 형태로 보이는 것 같은 그의 작품의 형태들은 모두가 구상적 소재를 데포르마숑(변형)한 것이다.

"나는 추상이란 거짓말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작품에서 추상의 모습은 모두가 구상의 변형이다."는 그의 말에서 그의 생각이 들어난다.

그동안 서울미대 출신 조각가 그룹인 '낙우회'와 '현대공간회'를 통하여 꾸준히 발표하고, 조각가들이 개최하기 힘든 개인전도 다섯 차례나 발표할 정도로 비교적 성실히 창작 활동을 하였지만, 조각가 최충웅 선생의 가장 빛나는 작가로서의 기록은 그가 1974년 처음 발표된 "스티로폼(styro-foam) 원형 조각"의 창시자라는 사실이다.

이 기법은 조각의 뼈대라 할 수 있는 원형의 틀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재료가 스티로폼으로, 이것으로 조각의 원형을 만들고 밀납 외형을 만든 다음 스티로폼을 휘발유로 녹여낸 후 청동 주물을 부어 넣어 주조한 것으로 조각에서는 매우 독창적인 기법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조각은 원형이 없는 단 하나의 조각 작품이다.

그의 자택과 조금 떨어져 있는 그의 작품의 수장고로 사용하고 있는 40여 평의 아파트에는 대부분 2002년 이전에 제작한 비교적 작은 조각 작품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의 작품의 특성 상 속이 비어 있는 청동상들이 아니고 통 브론즈 주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크기가 작을 수밖에 없는 작품들이었다. 차가운 이미지의 청동 작품 한 쪽으로는 2000년도 미국에서 연구교수로 있을 당시 제작했던 목(木) 조각품들이 매우 상반된 이미지의 따스한 모습으로 놓여 있었다.

최 교수의 건강상 이유로 현실적으로 작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막감이 흐르는 수장고를 보면서 그의 건강의 회복과 새로운 작품의 탄생을 기원하였다.

글/김재관(미술학박사, 쉐마미술관장)

사진 /송봉화 다큐멘터리 작가

최충웅 교수 약력

1939년 청주 낭성면 인경리가 고향이며, 충주에서 출생 청주에서 성장함.
1957년 청주공업고등학교 졸업
1957~1963년 서울미대 조각과 입학 및 졸업
1982년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1963~1990년 경기중학, 서울고, 경기상고에서 미술교사
1990~2004년 서울산업대학교 조형예술학과 교수
1990~1999년 개인전 5회 개최
2000년 미국 로드 아일랜드 주립대학 연구교수
국전초대작가, 낙우회, 현대공간회 회원.
2002년 이후 건강상 문제로 작업을 중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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