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6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장날 - 진천 광혜원장의 어제와 오늘

'썩어도 준치' 교통 요충지 광혜원장 명맥 유지
1980년대 '고추 관광'으로 북적
대소장과 '맞장' 떠 비교적 선방
여성 외국인 근로자 주요 고객

  • 웹출고시간2013.09.29 18:17:08
  • 최종수정2013.09.29 18:17:16
◇1983년 어느 날

광혜원(廣惠院)은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이어지는 길목이다. 삼남(三南)에서 한양으로 길을 재촉하던 과거꾼도, 패랭이에 삼베 옷차림의 등짐장수도 거의가 이 길을 통해 경기도 땅으로 접어들었다.

삼남의 관문인 진천군 만승면. 그래서 이곳에는 오가는 관리들의 숙박소인 광혜원과 동주원(東柱院)이 있었던 터로 지금도 만승(萬升)이라기 보단 광혜원으로 더 잘 통한다.

장터거리 장기(場基, 장이 섰던 곳이라 하여 장기라 부른다) 부락에서 경기도 쪽으로 한마장쯤 가면 충청도관찰사가 이·취임할 때 직인을 주고 받던 교인소(交印所)가 있다.

"자, 간수들 사요, 간수" 두부 만들 때 없어선 안 되는 간수는 아직도 시골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물목이다.

ⓒ / 임병무
지금은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이곳에서 신구 관찰사가 사무를 인계하던 곳으로 그 옛날에는 시냇가 양편에 수양버들이 휘늘어져 만남과 헤어짐의 정취를 더해 주던 곳이다.

한양으로 통하던 대로요, 나그네의 유숙처인 관계로 곳곳에는 '주막거리'라는 지명이 유별나게 많다. 그 중에서 장터거리 한복판에는 '과부주막'이라고 있었는데 독립투사 윤병한씨가 동지들을 불러들이기도 한 곳이다.

삼남(三南)에서 엽전 열닷 냥의 노자를 갖고 청노새를 타고 오던 선비들도, 세코짚신이 닳아빠지고 베잠방이가 흥건히 젖도록 시골의 저자바닥을 중뿔나게 헤매던 상단(商團) 패거리들도 우선 광혜원에서 숨을 돌린 연후에 행보를 떼는 것이 통례였다.

경기도와 충청도를 가로 지르는 차령산맥이 너무도 험해서였을까. 덕성산(德城山) 열 두봉 고개를 혈혈단신으로 단숨에 오르내릴 담력 큰 사내가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등짐장수들은 십수 명씩 떼를 지어 이 고개를 넘었다. 산짐승이 우글대고 때론 화적떼를 만나기 일쑤여서 해거름 녘에는 엄두도 못 냈다.

고개를 넘으면 경기도 죽산땅이 보이고 그곳에서 백암~용인~광주를 거쳐 송파 저자에 이르는 것이 대개의 상로(商路)였으나 소물이 꾼들은 안성으로 빠지는 무티고개를 택해 여주 이천에서 한 파수를 보고 평택이나 수원 우시장에 이르기도 했다.

따라서 이곳은 아랫녘에서 올라온 각종 물건이 풍부했고 인근에서 생산된 고추, 마늘이 넘쳐흘러 한참 흥청댈 때는 웬만한 시골 저자를 방불케 했다.

3일과 8일 열리는 광혜원장은 시골의 정취를 물씬 풍겨준다. "자, 장죽들 사시오. 이 장죽은 담양에서 만든 것인데 장수연이나 시초를 꾹꾹 눌러 담아 피우면 고향에 두고 온 마누라 생각도 금방 잊는다오."

육순을 넘긴 장죽장수의 입담이 쏟아지자 탕건을 쓴 사기막고을의 촌로가 그중 치수가 긴 것을 골라 든다. 장수연을 담배쌈지에서 꺼내 손바닥에 썩썩 비빈 뒤 가래침을 '퇴악' 뱉어 한 모금 빨아대는데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로 담배 연기가 아지랑이처럼 굼실대며 피어오른다.

채소전 어름에는 갖가지 신선한 채소와 풋고추, 마늘이 입맛을 돋운다. 요즘에는 농산물이 도시 근교에서 비닐 재배로 대량 생산돼 오히려 농촌으로 찾아들고 있는 '유통구조의 역(逆)현상'이 일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고추만큼은 이곳을 당할 곳이 별로 없다. 고추는 충북의 특산물로 시·군 어딜 가나 지천으로 널려 있지만 특히 괴산, 음성, 대소, 덕산, 광혜원 지방에서 많이 생산되고 광혜원에서 상당량이 집산돼 전국으로 흩어진다.

"에라, 모르겠다!" 파장 어름에 손님이 뜸하자 숫제 번드싱 누워 단잠에 빠진 고무신가게 장돌림.

ⓒ / 임병무
1980년 고추 파동으로 그 유명했던 '고추 관광'의 주요코스 중 하나가 바로 광혜원이었다. 고추가 금값처럼 솟아오르자 도회지의 부녀자들이 버스를 전세 내 광혜원장을 열불나게 드나들었다. 지금도 고추 출하기가 되면 서울, 안성, 천안, 청주 등지에서 수십대의 트럭이 꼬리를 문다.

아직 출하기가 안 됐지만 방앗간에서는 고추 빻는 소리가 요란하다. "고초 당초 맵다지만 시집살이보다 매울까~." 방아머리에서 50대 아낙의 한 맺힌 방아타령 가락이 울려 퍼지는데 방앗간 밖에선 경운기가 시끄럽게 경적을 울린다.

/ 임병무 전 충북일보 논설위원

◇2013년 9월의 어느 날

1960~70년대 고도 산업화가 이뤄지면서 원(院)은 본래의 기능을 잃고 말았다. 매끈하게 뻗은 고속도로와 국도로 인해 물물교역은 고속화의 길을 걷게 됐고, 하루 온종일 걸어봐야 50리 밖에 못가는 장돌뱅이의 상권은 자연스레 줄고 말았다.

과거 '황금시장'이라 불리던 진천 광혜원장도 원의 소멸과 함께 쇠퇴의 길을 걸었다. 지난 2000년 만승면에서 광혜원면으로 개칭된 뒤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광혜원 오거리를 중심으로 난전이 벌어지고 있으나 그 규모가 예전만치는 못하다.

하지만 옛말에 '물어도 준치 썩어도 생치'라 했다. 제 아무리 과거의 명성을 누리지는 못한다한들 조선왕조 오백년 간 삼남(三南)과 경기도를 연결하던 전국 최대의 교통 요충지 '광혜원'이 아니던가. 비록 과거보단 규모가 줄었어도 광혜원장은 여전히 인근 지역에서 가장 번성한 장(場)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읍(邑)이 아닌 면(面) 단위 장으로는 가히 도내 최대 시장이라 꼽을 만하다.

광혜원 오거리에서 방사형으로 뻗은 광혜원장의 모습.

광혜원 오거리에서 방사형으로 뻗은 난전은 매대 수만 100개를 넘는다. 현지 상인은 거의 없고 대부분 외지에서 온 장돌림들인데 청주와 대전, 경기도 안성과 성남에서 많이 온다고 한다.

광혜원 주민은 물론 바로 옆 음성 대소면 주민들도 장을 보러 많이 오는데, 고객 유출을 막기 위해 2일·7일 열리던 대소장이 3년 전부터 광혜원장과 같은 날인 3일·8일에 '맞장'을 놓고 있다. 장꾼들의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아직까지는 광혜원장이 꽤나 선방하고 있다는 게 현지 상인들의 설명이다.

그 원동력 중 하나가 광혜원에 거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광혜원은 가구, 기계부품을 주로 생산하는 음성지역 산업단지와 달리 동서식품(커피), 동원산업(김치), 비락(식혜) 같은 식료품 제조업체를 12개나 보유하고 있어 유난히 여성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다. 남성이 많은 음성보다 당연히 시장이 잘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유독 '의류업'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패션에 민감한 중·고생들이 '촌티'나는 시장바닥 옷가지 대신 청주나 서울에서 판매되는 유명 브랜드를 선호하는 까닭이다. 35년째 광혜원장에서 양품점을 운영 중인 손종석(67)씨는 "광혜원면 학생들도 떼로 모여 서울 동대문으로 종종 원정 쇼핑을 다녀 온다"며 "우리 어릴 때는 부모님들이 옷만 사다줘도 좋아했는데 지금은 가진 게 없어도 메이커를 찾는 시대가 돼 버렸다"고 씁쓸해했다.

늦은 오후 가느다란 빗방울이 떨어지자 칠장천 둔치에 길게 자리를 편 고추 상인들이 서둘러 행상을 꾸린다. 마른 고추를 파는 장돌림들에게 비는 '파장(罷場)' 선고나 다름없다.

예로부터 광혜원은 진천과 음성, 괴산 등지에서 생산된 고추의 집산지로 유명했는데 지금도 서울 등 수도권에서 고추를 직접 사러올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광혜원장 주변에만 5개의 방앗간이 있다고 하니 유명세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다만 택배의 발달로 어깨에 포대자루를 한가득 매고 관광버스를 낑낑 오르는 아낙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됐으니 왠지 모를 아쉬움이 밀려온다.

겨울 김장에 쓰이는 고추는 두 번째, 세 번째 따는 게 제일 맛있다는 속설이 있어서인지 8월 첫 장이나 둘째 장이면 거의 팔려 나간다. 지금이 9월 막장이니 고추 장사는 끝물을 달리고 있는 셈이다.

장 구경을 나온 오승주(60)씨와 그의 손녀(6)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꽃게를 만져보고 있다.

ⓒ 임장규
"할아버지. 꽃게다!" 6살 난 손녀를 유아용 자전거에 태우고 장 마실을 나온 오승주(60)씨가 발길을 멈춘다. 톱밥에 묻힌 서해산 꽃게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켠다. 호기심 많은 여자아이가 잔뜩 웅크린 등껍질을 건들자 화들짝 놀란 꽃게 한 마리가 함지박 밖으로 탈출을 시도하다 생선장수 손에 붙잡혀 생을 마감한다.

/ 임장규기자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