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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날 - 증평장의 어제와 오늘

부슬부슬 가을비에 발걸음 뚝… 장꾼들 한숨만
현지 상설시장 상인들도 '일일 장돌림' 변신
경쟁과 공존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

  • 웹출고시간2013.09.08 17:53:41
  • 최종수정2013.09.08 17:53:41
◇1983년 어느 날

증평(曾坪)은 원래 청안군(淸安郡)에 속해 있었다. 청안읍내 서쪽 가까이 있다해 근서면(近西面)이라 했다. 선비의 고장 청안에 속해 있던 작은 마을이 행정구역 개편으로 괴산군에 편입된 후 커지기 시작, 1948년 8월에는 읍으로 승격됐다.

인구 3만2천명의 신흥도시로 행정구역은 괴산에 속해 있으나 오히려 경제권은 군 소재지와 청안, 도안, 초평 등지를 포용하고 있는 곳이다. 읍으로 승격되기 이전에는 괴산이나 청안장을 보러 다녔는데 오늘날에는 그 반대로 증평으로 장꾼들이 몰려든다.

집 앞 텃밭에서 기른 채소류를 바리바리 싸들고 온 촌로가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 임병무
청주~충주 간의 국도상에 우뚝 선 증평은 소백산맥의 협곡 사이에 형성된 분지이긴 하나 기름진 벌판은 오창, 진천까지 연이어져 있다. 현지 주민들은 이 벌판을 '장뜰'이라 부른다.

그 벌판에서 연초, 고추, 인삼, 마늘을 재배하고 누에를 쳐서 1년에 자그마치 20여억원의 농가소득을 올리는 곳이 바로 여기다. 호당 평균 농가소득도 288만6천원이나 된다. 소득이 많게 되면 구매력 또한 촉진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증평장은 언제나 호경기를 누리며 북새통을 치른다.

한 젊은 아낙이 절구 방망이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 임병무
증평읍사무소에서 한 발치 떨어진 채소전에는 논에서 막 캐어낸 논 마늘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30여m에 달하는 좁다란 골목 양편으로 마늘 행상이 연이어 진을 치고 있다.

"자, 육쪽 마늘 사시오. 이 마늘로 말할 것 같으면 맵기가 그만이요, 절대로 썩는 법이 없다 이겁니다. 밤톨만한 것은 한 접에 3천500원이고, 호두알 크기는 딱 잘라 5천원만 내시오."

마늘 행상의 육성을 뒤로하면서 오른쪽으로 꺾어들면 싸전이 펼쳐진다. 싸전에는 마질을 해주는 말감고(監考)들이 곡식의 부패 여부나 뒷거래 등을 단속하기도 했는데 1950년대부터 자취를 감춰 버렸다.

지금이야 ㎏에 의해 그 양을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지만 한창 미곡상의 행패가 심할 때는 어수룩한 촌뜨기쯤 속여먹기야 자반뒤집기 보다 더 쉬웠다.

곡식을 말에 담는 것(마질) 또한 미곡상의 기술(?)이었다. 천천히 쌀을 됫박에 담으면 오죽 좋으련만 둥그렇게 생긴 용기(容器)를 옆으로 제쳐 놓고 후다닥 쓸어 담으니 양은 가득 차오르게 되지만 실제 무게는 그만 못했다. 즉, 쌀알을 곤두세워야 적은 양으로 용기를 가득 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쌀을 담아 놓고 홍두깨 같은 밀대로 싹 깎아 내리는데 그것 또한 기술 중의 하나였다 한다.

목물전에 머리를 맞댄 어물전에서는 갯바닥의 비린 냄새가 코를 찌른다. 멸치, 미역, 청태 등 건어물에서부터 새우젓, 육젓, 조개젓이 함석으로 만들어진 젓동이를 가득 채우고 있다. 원래 젓동이는 투박한 옹기 항아리에 담아두어야 제 맛을 내는 법이지만, 냉장시설이 잘 갖춰진 오늘날에는 거의가 함석으로 만든 네모난 그릇이나 드럼통을 이용하고 있는 게 변모된 어물전의 모습이다.

인천에서 새벽차를 타고 왔다는 40대 아낙이 조막손만한 방게를 플라스틱 함지박에 가득 담고 있는데 오뉴월 뙤약볕에 견디기가 힘들었던지 그릇 밖으로 슬금슬금 도망을 치는 놈도 있다.

그 옆으로는 잘 영근 강원도 옥수수가 껍질 채 선을 보이는데 성미 급한 아낙은 흥정도 하기 전에 하모니카 불 듯 아래 위를 열불나게 훑어 내린다. 초여름 기호식품으로는 수박, 참외, 딸기 등을 꼽지만 노구솥에 넣고 한나절을 쪄서 먹는 옥수수의 맛 또한 그만이다.

불볕더위가 벌써부터 기승을 부린다. 북적대던 난전 바닥도 한나절이 지나자 고객의 행렬이 뜸해진다.

솥점말에 사는 삼베바지 차림의 촌로가 고추 열 근을 내고 산 선풍기를 들고 귀갓길을 서두른다. 장뜰 벌판에서 이따금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이마의 땀을 씻어 주지만 초하(初夏)의 무더위는 숨이 막힐 정도로 열기를 뿜어 댄다.

/ 임병무 전 충북일보 논설위원

◇2013년 9월의 어느 날

한 이름 모를 상인이 비가 오자 아예 비닐로 물건을 덮은 뒤 자리를 비웠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처마 밑으로 들어가면 되나 장터에도 정해진 자리가 있어 제 마음대로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다.

ⓒ 임장규기자
올 들어 처음 내리는 가을비가 증평의 장뜰을 적신다. 진천·음성·괴산 등지에서 몰려든 장돌림들은 '추석대목'을 잔뜩 기대하고 왔건만 이게 웬걸, 한낮이 되도록 봇짐에서 풀어놓은 물건의 반의 반도 못 팔았다.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대목을 앞둔 장(場)에 하필 비가 내릴 줄이야. 가뜩이나 손님이 없어 속상해 죽겠는데 현장학습을 나왔다는 여중생들의 깔깔대는 수다에 참았던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그래도 심심한 입이나 놀려야겠다고 생각했는지 한 젓갈장수가 물건을 살 리 만무한 여중생 몇몇을 앞에다 앉혀놓고 나름 지갑 공략을 한다.

"니네, 조개젓 좋아하지? 아저씨가 서해 앞바다 가서 직접 잡아온 겨. 한 번 먹어봐. 맛있지? 집에 가서 엄마한테 사 달라고 해. 꼭!" 뻘겋게 양념된 조개젓과 새우젓을 번갈아 빨아먹은 여중생들이 배시시 웃으며 자리를 뜬다.

늦은 오후 비가 서서히 걷히면서 구름 속 햇살이 장뜰시장을 환하게 비춘다. 그제야 메가폰을 잡은 장돌림의 입과 손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매월 1일과 6일 증평장뜰시장(상설 전통시장) 안에 들어서는 증평 5일장은 지역의 인구가 워낙 적다보니 인근 시·군보다 그 규모가 작다. 길게 일자형으로 뻗어 있는데 줄잡아 250m, 노점 매대는 70~80개 정도 된다.

추석 대목을 앞둔 증평5일장. 비가 와서인지 평소보다 손님이 절반가량 줄어든 모습이다.

ⓒ 임장규기자
이 중 30여개는 현지 상설시장 점주들이 내놓은 매대다. 다른 지역은 장돌림의 80~90%가 외지인임에 반해 증평장은 현지 상인들이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외지 장돌림의 노점 매대에 가려 바로 옆 상설시장의 매기(買氣)가 바닥을 치자 현지 상인들이 장날 때마다 '일일 장돌뱅이'로 변신하고 나선 거다. 수십, 수백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경쟁과 공존 관계가 돼 버린 둘 사이에서는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자연적으로 발생하고 있었다.

잡곡전 옆엔 목물전, 그 옆엔 어물전, 또 그 옆엔 포목전 같이 품목별·공간별로 나뉘었던 모습은 이미 역사의 한 페이지가 돼 버렸다. 2000년대 중반 현대화 사업을 거치면서 장뜰시장은 상설점포와 노점, 이런 정도로만 구분지어 졌다.

굳이 더 분류하자면 그럴싸한 점포를 가진 부유(?) 상인과 길바닥에 돗자리 펴고 쭈그려 앉은 영세 상인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장돌림 사이에서도 능력과 노력 여하에 따라 엄청난 빈부격차가 발생할 수 있단 얘기다.

증평5일장에서 잔뼈가 굵은 임청운 할머니가 직접 기른 고추와 뒷동산에서 따온 솔잎을 팔고 있다.

ⓒ 임장규기자
증평읍 율리에서 왔다는 토종 장돌뱅이 임청운(77) 할머니가 조금만 함지박에 고추와 솔잎을 담아 놓은 채 손님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고추는 텃밭에서 기른 것이요, 솔잎은 뒷동산에서 직접 따온 거라고 한다.

평생 고사리를 팔아 자식들을 먹여 키웠다는 임 할머니는 자식들의 만류에도 구태여 또 저자거리로 나오고 말았다. "집에만 있으면 뭐해. 여기가 직장인데. 오늘은 아직 1천원 어치 밖에 못 팔았는데 그래도 괜찮아. 친구도 만나고, 사람 구경도 하고 좋잖아?"

그녀가 뒷동산에 올라 따온 솔잎은 추석 송편 빚을 때 쓰이는 조선소나무(적송) 솔잎이다. 솔가지를 하나 뽑아보면 정확히 솔이 2개씩 달렸다. 외송 또는 왜송이라 불리는 리기다소나무의 경우 한 개가 더 많은 3겹이다.

저자거리에서 잔뼈가 굵은 임씨지만 가을 부슬비에 자라목 감추듯 사라진 장꾼들을 불러들일 재주는 없나보다. "아무래도 간단한 추석상이라도 차리려면 다음 파수에도 나와야 할 것 같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임씨가 직접 길렀다는 '아삭이 고추'를 입에 넣어줬는데 그다지 매운 맛은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어디선가 참기름, 들기름 볶는 냄새가 강하게 코를 자극한다. 추석을 앞두고 신나게 돌아가는 방앗간 기계 소리에 다른 장돌림들이 시샘의 눈초리를 보낸다.

/ 임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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