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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

충북여고 교장

지금까지 다양성의 개념은 주로 긍정의 대상이었다. 자연 생태계의 다양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문화의 다양성과 언어의 다양성을 왜 지켜가야 하는지, 가치의 다양성이라든가 실천의 다양성이 사회를 어떻게 풍성하게 하는지에 대한 생각들이 그 이유였다. 문득 떠난 여행지에서 만나는 온갖 풍경에 매료되고 몰두하는 이유도 낯섦 즉 새로움으로써의 다양성에 끌리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요즘에는 단순하게 다양성 자체만으로는 뭔가 아쉽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끊이지 않는 갈등과 다툼의 소식들,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정도를 넘어 아예 지워버리는 비극의 소식들을 접하는 빈도가 늘어날수록 더욱 그렇다. 갈등이 생겨나는 원인 중 하나가 서로의 다름에 의한 것이고 그 다름의 내용이 곧 다양성이라면. 그것에도 일정한 조건이 붙어야 하지 않을까. 다양성에 따른 혼란과 어지러움까지 살아감의 한 과정이라며 받아들일 여지는 있다지만, 일정한 정도를 넘어서는 것들까지 수용할 정도로 공간이 무한하지는 않다.

조화로움은 다양성을 지속하기 위한 기본 조건 중 하나다. 어떤 규모든 일정한 단위에 속하는 구성원들 사이에 제도적이거나 규범적 형태, 암묵적인 무엇이라도 좋은 질서와 조화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오래되고 폭넓게 퍼진 발상이다. 지속가능성은 다양함과 조화로움이 어우러지는 상태에서 비로소 확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몇몇의 의견으로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조화롭지 않은 다양성의 영향과 결과는 반목과 혼란, 어지러움 쪽에 더욱 가깝기 때문이다.

문제는 조화로움을 어떻게 만들고 유지해가느냐에 있다. 이 대목에서 생각은 원점으로 회귀한다. 조화로움을 만들어야 할 당사자들조차 다양해서 그 내부에서 이미 다양성의 어두운 그림자들이 양산되는 현상을 꾸준히 목격하는 중이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즉, 서로의 공통분모를 확인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가깝게는 가족으로서의 공통점과 공동의 지향을, 크고 작은 사회 조직과 넓게는 국가에 포함된 구성원으로서의 공통분모들을, 범위를 넓혀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인정하고 존중해야 할 공공의 가치와 기준들을, 함께 공유할 수밖에 없는 삶의 기본 터전으로서의 지구라는 공통분모 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누구나 주인공이 되는 때가 있는가 하면 주인공이 된 다른 사람 옆에서 박수를 쳐 줘야 하는 때도 있다. 자신의 이익을 내세울 때와 더불어 다른 존재의 필요를 인정하고 부각시킬 때를 확인하고 실행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혹은 그가 속한 조직의 욕망과 필요만을 앞세우고 따져가며 다투는 모습으로는 조화로움과 지속가능성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자신과 더불어 자신을 둘러싼 다른 다양한 존재들의 소중함에 대하여, 그들과 공유하는 공통분모의 소중함에 대하여 꾸준하게 인정하는 모습이 결국 균형 잡힌 다양성을 향하는 길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완벽한 존재가 아니어서, 이론적 방향과 실제적인 삶의 여정이 어긋나는 장면 또한 피할 수 없다. 그렇기에 쉬지 않고 들려오는 비극들로 인한 부대낌과 흔들림 또한 피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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