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신현애

공인중개사

창밖에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면 아파트 지상 주차장에 차들이 꼬리를 물고 들어 온다. 이내 즐비하게 세워진 차를 보며 분명 내일은 날씨가 좋을거라는 예측을 해 본다. 기상이 좋지 않다는 날에는 마치 두더지가 땅굴 속으로 숨어 들어 간 듯이 지상 주차장은 텅 비어 있다. 이곳으로 이사와서 일곱계절을 보내면서 나름대로 터득한 일기예보이다. 도로변 상가 건물에서 살때 주차난은 무척 심각했다. 그때 보다 한결 덜하지만 대기가 불안정한 날이면 이중 주차구역까지 늘어선 차량의 행렬은 명절날, 고속도로 위에 줄지어 서있던 차들을 방불케 했다.

아침에 출근하던 딸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왠일인가 하고 놀라서 받으니 "엄마 1번자리가 비어 있어요" 라고 말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두어 걸음만 걸으면 닿는 첫 번째 블럭, 주차장 앞자리. 그중에서도 1번 자리는 내가 가장 선호하는 자리이다. 내가 좋아하는 자리가 비어 있다는 것이다. 얼른 내려가서 차를 옮겨 놓았다. 이런 날 그 자리에 차를 세워놓고 나면 외출할 일이 생겨도 나가기가 싫다. 하물며 주일날에는, 아침미사를 갈까 저녁미사를 갈까 하며 성당가는 것 조차 망설이게 된다. 드높았던 삶의 집착이었을까. 앞자리를 좋아한 것은 오래 되었고, 선호하는 이유가 있다. 공부 할 때나 듣고싶은 명사의 공개강좌가 있을 때 한결 집중도가 높았고, 연사의 말소리 뿐이 아니고 얼굴 표정과 몸 전체에서 나오는 아우라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습관이 되었는지 하여튼 앞자리가 좋다. 때로는 이런 작은 일에 일희(一喜)하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져 그 구속에서 벗어 나려고 해 보았으나 잘 안되고 있다.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닌것에 집착했다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만….

불가에서는 집착을 만병의 근원이라고 했다. 요즘 집착에서 자유롭지 않은 노인을 만났다. 초등학교 교사로 퇴직하셨고 지금은 화가로 활동을 하신다. 팔순이 넘으신 나이에 부동산에 관심을 보이며 자주 나의 사무실을 들리곤 하셨다. 백발에 단정한 옷차림은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는데, 어느날 전시회를 했다며 '그림을 보여 주겠다'고 해서 노인의 집을 방문했다. 노인의 외양과 달리 허름한 아파트에는 방이 세칸이었다. 그런데 열어 보여주는 방마다 노인 특유인 외로움의 냄새가 맡아졌다. 말끔하게 정돈된 세면실 비누곽에는 쓰다남은 비누조각이 주먹만하게 뭉쳐있었고 베란다에는 곧 어디라도 떠날 듯이 묶여진 짐들이 쌓여 있었다. 한낮 임에도 우중충한 실내 분위기와 협소한 주방은 싱크대와 맞붙은 냉장고 문이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노인은 집안을 둘러보는 내 표정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재개발 계획이 있다기에 이곳으로 이사 왔다"고 하며 아직 짐을 풀지 못했다고 말했다.

'재개발 계획 구역' 이란, 도시계획의 일환으로 토지의 합리적 이용을 위해 공공시설 정비에 따라 도시환경이 현저히 불량하거나, 건축물이 노후되었을 때 지정되는 구역이다. 계획대로 진행이 된다고 해도 지난한 시간을 흘려 보내야한다. 아마 노인은 누군가에게 '재개발 계획구역'에서 얻어지는 '프리미엄'의 달콤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다. 누구나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호기심은 나이를 불문하고 그것이 돈과 관련 된것이라면 관심은 더 커진다. 그래서 노인은 불편을 감수하고 있으리라. 버킷리스트에 '새로운 도전은 삶에 의미를 가져 온다'고 했고, 젊은이의 도전은 청춘을 더욱 빛나게 한다. 하지만 여든이 넘은 노인이 도전하기에는 영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음에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의 남은 여생이 화폭에 군붓질 하는 집착한 삶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했던 하루였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