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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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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코끝에 닿는 바람이 차갑게 느껴지던 날 이른 새벽 큰시누이의 부고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먼저 떠오른 생각은 시누이님이 사시던 아파트 베란다였다. 넓지 않은 공간에는 박물관처럼 소쿠리, 광주리, 체, 키와 목기 등이 겹쳐 있거나 쌓여 있었다.

 슬하에 두 아들을 뒀지만 키를 쓰거나 체로 걸러 낼 일이 없는 시대, 쓸모 있었던 멀쩡한 세간들이 주인과 함께 버려질 것을 생각하니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졌다.

 아침이면 논밭으로 나가 한낮이 기울어야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던 시절, 가을날 알알이 거둬들인 곡식들이 있는 곳간 선반에 얹어 있거나 흙벽의 못에 걸려 있어야 어울려 보이는 생활도구들이다. 요즘에는 전혀 쓰일 일이 없는 것을 바라보며 시어머니께서 맏딸을 시집보내면서 바리바리 챙겨주셨을 모습이 그려졌다.

 과연 시누이님은 어머니의 이런 정성을 간직하고, 환경이 많이 다르고 밤낮없이 불빛이 훤한 서울생활에서 제대로 한번이라도 쓸모 있게 사용해 보셨을까.

 몇 해 전 컴퓨터에 이상이 생겨 AS기사를 불렀다. 그런데 그가 신고 온 운동화를 보고 놀랐다. 벗어놓은 신발은 뒤축이 해져 세워지지 않았고 옆은 많이 닳아서 비오는 날은 물이 새어 들어올 것이 분명 하였다. 내심 '요즘에도 이런 청년이 있나' 하는 생각을 하니 그 알뜰하고 소탈한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 왔다.

 거리에 나가보면 허벅지가 찢겨진 바지를 사서 입고, 새파란 젊은이가 머리를 하얗게 염색 하고 다니는 모습과 대조 되어 보였다. 조금은 누추할 것 같다는 나의 생각에는 아랑 곳 없이 그는 컴퓨터 수리에 열중하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그의 등 뒤에 '청년의 앞날에 반드시 좋은날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자처럼 말해 주었다. 속으로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될 것 이라는 말을 에둘러서 표현 했다.

 어른들이 하는 말에 '한 가지를 보면 열 가지를 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날 그 말이 청년에게 꼭 맞는 말인 거 같았다. 옛 어른들은 아끼고 사는 생활이 몸에 배어있어 심지어는 자기육신이 편치 않음에도 참아가며 병원에를 쉬 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손들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고 당부하며 쓸모 있는 물건을 하나라도 더 보태 주려고 애를 태웠다.

 한번은 충분히 먹을 수 있는 먹을거리들이 버려지는 것을 보고 또 놀란 일 있다. 어느 날 뷔페에서 행사를 치른 뒤 남은 음식, 손도 안 댄 맛있는 음식들이 마구 쓰레기통으로 버려지고 있었다. 농사를 지어 본적이 없는 내가 이러한데 한 톨의 알곡이라도 귀하게 여기는 농부가 보았으면 아마도 크게 노(怒)하였을 거다.

 고속도로 휴게소나 음식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몇 해 전 중국을 여행했을 때의 일이다. 유명한 음식점에서 금이 간 그릇을 쓰고 있어서 물었더니 '그 정도는 개의치 않고 사용 한다' 는 말 이었다. 과연, 대국의 기(氣)에 눌려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나에게 상당히 호의적이었던 시누이님은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담아온 비닐봉지를 씻어 말린 후 모아서 노점상 아주머니들에게 도로 갖다 주는 것을 보고 "자네가 하는 일 중에 잘못하는 일"이라고 말씀 하신 적이 있다.

 아마 생전의 시누이님은 베란다에서 이 물건들을 보며 고향생각에 잠기기도 하셨으리라.

 지난 세월에 별 관심 없이 요긴하게 쓰였던 생활 속의 물건들, 이제는 쓸모가 없는데도 귀중품이 되어 민속 박물관에 모셔져있는 아이러니(irony)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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