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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정 동행취재…그리움, 만남, 행복, 그리고 아쉬움

음성 최기룡·기웅 형제와 母 마릴로씨, 필리핀 방문
충북도교육청 '다문화가정 엄마나라 방문하기' 지원
"꿈에 그리던 가족… 눈 앞에서 만나니 '행복'"

  • 웹출고시간2016.09.12 18:35:33
  • 최종수정2016.09.12 18:35:33

알리가도 마릴로(왼쪽부터)씨와 어머니 그리셀다씨, 이모, 아버지 미켈리오씨.

ⓒ 성홍규기자
[충북일보=음성] 음성군 금왕읍에 사는 최기룡(10·무극초 4년)과 기웅(9·무극초 3년) 형제는 두 개의 모국을 갖고 있다.

그들의 아버지인 최인중(64)씨가 태어나 자란 대한민국과 어머니인 알리가도 마릴로(31)씨가 스무살때까지 살아 온 필리핀, 그렇게 두 곳이다.

기룡, 기웅 형제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란 영락없는 한국의 어린이지만, 다문화가정의 특성상 사고방식과 생활방식, 언어 문제는 두 나라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다.

이는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는 청소년기에 스트레스로 작용될 수도 있는 문제다.

마릴로(가운데)씨와 최기룡(왼쪽), 기웅 형제가 필리핀의 명소인 팍상한 폭포를 방문해 폭포체험을 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성홍규기자
충북도교육청은 다문화가정 학생들이 한국의 문화와 함께 각 어머니 나라의 문화에 대한 이해를 통해 올바른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신의 몫'을 해낼 수 있는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다문화가정과 함께하는 엄마나라 방문하기'를 운영하고 있다.

기룡, 기웅 형제와 그들의 어머니 마릴로씨는 이번 '다문화가정과 함께하는 엄마나라 방문하기' 행사의 지원을 받아 지난 4~9일 필리핀을 다녀왔다.

마릴로씨는 필리핀 북부의 타를라크(Tarlac) 출생이다.

가정형편은 넉넉한 편이 아니었고, 그가 20여년 생활한 마을은 빈민촌에 가까운 마을이었다.

마릴로씨는 농사를 지어 근근이 생활하는 가정에 도움이 되고자 10대 중반부터 마을 공장 이곳저곳에서 일을 했다.

필리핀 일터의 직원들은 마릴로씨와 같은 20~30대의 현지 여성이 대부분이다.

마릴로씨는 "필리핀 남자들은 게을러요. 한국 남자들과 다릅니다"라며 "게으른 필리핀 남자와 결혼하기 싫었어요. 그래서 지금의 남편을 소개받았을 때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05년 한국에서 생활중인 사촌언니 씨리밀라스코(45)의 소개로 남편 최씨를 알게 됐다. 최씨는 트럭운전기사로 현재도 그 일을 계속하고 있다.

마릴로씨는 "남편은 생활력도 강해보였고 무엇보다 잘 생겨서 한 눈에 반했다"며 "남편도 내가 마음에 드는 눈치였고, 우리는 곧 결혼 결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마릴로씨와 최씨는 2006년 결혼해 최씨가 살고 있던 음성군 금왕읍(무극)에서 함께 생활하게 됐다.

그 해 첫 아들 기룡군을 낳았고 다음해에는 둘째 기웅군을 낳았다.

마릴로씨는 "최씨의 급여만으로 두 아들을 키우기에는 힘든 점이 많았다"며 "생활비에 보태고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얼마전부터 원남산단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육아와 아르바이트에 치이다보니 마릴로씨는 필리핀 고향마을에 자주 갈 형편이 되지 못했다.

지난 2012년 두 아들과 함께 다녀 온 것이 가장 최근이었다고 했다.

4년 만인 지난 4일 오전 필리핀 마닐라의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에 발을 디딘 마릴로씨는 감정이 벅차오르는 눈치였다.

마릴로씨의 고향 집은 마닐라 공항에서 3~4시간을 차로 더 이동해야만 했다.

후텁지근한 필리핀의 늦여름을 시원하게 적셔주는 단비가 내리는 마닐라 공항에서 마릴로씨와 두 아들은 승합차에 몸을 실었다.

마천루가 뒤덮은 마닐라 시내의 거리는 일본산 자동차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북쪽으로 향할수록 고급차량은 사라지고 필리핀 '서민들의 발'이라 불리는 지프니(Jeepney)가 눈에 띄게 늘었다.

지프니마저 보기 귀해지고 맨발을 한 사람들만이 눈에 띌 때 쯤 마릴로씨가 어렴풋이 잠든 두 아들에게 말을 건넸다.

"기룡아, 기웅아. 저기 저 학교가 엄마가 다닌 초등학교야. 산타마리아 초등학교. 집에 거의 다 왔어. 일어나"

마릴로씨의 얘기에 부스스 일어난 아이들은 4년 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응. 지난 번에도 봤던 것 같아. 저기 다리 건너면 도착하는 거지?"

승합차는 아이들이 창 밖으로 가리킨 작은 돌다리를 건너 멈춰섰다.

음성군 금왕읍에 거주하는 결혼이주여성 알리가도 마릴로씨의 두 아들 최기룡, 기웅군이 마릴로씨의 고향인 필리핀 타를라크시를 방문했다. 마릴로씨의 가족들이 맨발로 뛰어나와 일행을 맞이하고 있다.

ⓒ 성홍규기자
승합차 소리에 마릴로씨의 아버지 미켈리오(65)씨와 어머니 그리셀다(57)씨가 맨발로 뛰어나와 딸과 손자를 맞았다.

미켈리오씨와 그리셀다씨에게는 마릴로씨 외에도 3명의 아들이 있었다고 했다. 아들은 모두 마릴로씨의 오빠다.

그 중 아들 한 명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고, 2명의 아들과 마릴로씨만 남았는데 1명의 아들은 부인과 이혼한 뒤 소식이 끊긴지 오래란다.

소식이 끊긴 아들이 미켈리오씨의 집에 남겨둔 아이들만 3명.

미켈리오씨의 또다른 아들의 아이들이 또 3명으로, 미켈리오의 씨의 작은 집에는 10명 정도 되는 가족들이 생활하고 있다.

마릴로씨가 오는 소리에 맨 발로 뛰어 나온 그리셀다씨는 눈시울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딸을 끌어안고는 놓을 줄 몰랐고, 미켈리오씨는 깡마른 팔로 두 손자를 부여잡고 수 많은 말을 건넸다.

마릴로씨와 기룡, 기웅 형제가 집 안으로 들어서자 그리셀다씨는 그제서야 집 안의 붉을 밝혔다.

민영화 탓에 전기요금이 비싼 필리핀은 웬만해서는 전깃불을 켜지 않는다. 큰 손님이 오거나 경조사가 있을 때만 켠다고 한다. 이 날은 딸과 손자들이 찾아 온 경사날이었다.

미켈리오씨는 "딸과 손자들을 본 게 참 오래됐다. 항상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눈 앞에서 보게 되니 정말 기쁘다"며 밝은 미소를 보였다.

하얀 틀니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미켈리오씨. 그의 틀니는 얼마 전 마릴로씨가 해 준 것이라고 했다.

마릴로씨는 "오빠들이 두 명 있는데 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못하는 것 같다. 나라도 자주 와서 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슬프다"며 "눈 앞에서 실제로 부모님을 만나서 정말 행복하다. 감사하다"고 연신 감사를 표했다.

기룡, 기웅 형제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낯선 눈치였지만, 그 곳에서 생활하는 사촌 아이들과는 금세 어울렸다.

두 형제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렸을 때 보고 오랜만에 보는 거라 낯설어요. 아직은 잘 모르겠다"며 사촌 아이들과 함께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마릴로(오른쪽)씨와 그의 부모가 마릴로씨의 결혼식 사진에 친구들이 남겨준 메시지를 보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 성홍규기자
마릴로씨와 기룡, 기웅 형제는 필리핀에서의 첫날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에게 선물을 건네고 담소를 나누며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부터 마릴로씨와 기룡, 기웅 형제는 필리핀의 명소를 탐방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의 문화 못지 않게 필리핀의 문화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팍상한 폭포와 따가이따이 화산지대를 찾아 마릴로씨와 두 아들은 필리핀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오랜만에 '어머니와 아들'의 정을 나눴다.

또 마닐라 시내의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성 어거스틴성당'과 필리핀의 독립운동가 호세 리잘을 추모하기 위한 '리잘 공원', '산티아고 요새' 등을 돌아봤다.

우리나라에서의 생활은 집과 일터, 집과 학교·학원을 오가는 시간들 뿐이라 어머니와 아들들이 얼굴을 마주보며 함께 대화를 할 시간이 부족했다.

마릴로씨와 최기룡, 기웅 형제가 필리핀의 화산지대를 방문해 승마체험을 하고 있다.

ⓒ 성홍규기자
필리핀에서 마릴로씨와 두 아들은 한 방에서 자고, 같이 삼시세끼를 해결하며 그 어느때보다 진한 가족간의 사랑을 느끼는 시간을 보냈다.

필리핀에서의 일정 마지막 날, 도착하던 첫 날처럼 또 비가 내렸다.

굵은 비가 내리는 마닐라의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까지 마릴로씨의 어머니와 큰 오빠 위니(34)씨가 배웅을 나왔다.

마릴로씨와 두 아들은 떨어지지 않는 발자국을 한 발자국씩 떼며 공항으로 들어갔다.

가족들은 그들이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필리핀 방문을 마친 마릴로씨는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볼 수 있도록 필리핀에 보내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두 아들에게 한국의 문화와 함께 필리핀 문화도 많이 알려주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기룡, 기웅 형제는 "필리핀 또 가고 싶어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낯설기도 하지만 필리핀에서 어머니와 함께 보낸 시간은 정말 즐거웠어요. 다음에 또 필리핀에 오기 전까지는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아요"라고 입을 모았다.

/ 성홍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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