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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보름달 지면, 한국식 접대문화도 막 내린다

28일 김영란법 시행… 굿바이 '甲의 질서'
식사비 3만원·선물 5만원·경조사 10만원
부패공화국 청산·농축산인 피해 양면성도
충북 지자체·기업 TF 운영 등 대책 분주

  • 웹출고시간2016.09.12 18:39:06
  • 최종수정2016.09.12 18:39:21

아직은 법 시행이 되지 않아 이번 추석명절에는 고가의 선물세트도 다량 팔리고 있다. 현대백화점 충청점에 등장한 64만원 고급한우선물세트.

ⓒ 임장규기자
[충북일보] 한국식 접대 문화가 막을 내린다. 그동안 '상부상조'라는 미명 아래 자행됐던 낡은 악습이 철퇴를 맞게 된 거다. 때는 다가왔다. 헌법재판소도 합헌 판결을 내렸다. 이제 시행만 남았다.

9월28일.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왔던 갑(甲)의 질서는 '김영란법' 시행에 따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앞으로는 투명하고, 깨끗한 선진사회가 열릴 일만 남았다. 적어도 법 취지만 놓고 보면 그렇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법 시행을 앞둔 지금, 상당한 혼돈 속에 빠져 있다. 법 규정 자체가 모호한데다 아직까지 적용 기준도 명확하게 확립되지 않은 탓이다.

일각에선 농어민, 나아가 국가경제를 마비시키는 정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공직자 부패와 직접적 관련성이 없는 농림·축산·수산·화훼 농가가 피해를 볼 것이란 우려도 많다. 그만큼 이 법이 끼칠 영향력은 막강하다. 하루 빨리 명쾌하고,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확립돼야 하는 이유다.

◇김영란법 탄생 배경

김영란법 탄생부터 시행까지 -

ⓒ 뉴시스
정식 명칭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지난 2011년 6월 김영란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이 처음 제안한 뒤 2015년 3월3일 법안이 통과됐다. 같은 달 27일 공포된 이 법안은 1년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이달 28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김영란법의 탄생하게 된 배경은 2010년과 2011년 차례로 터진 '스폰서 검사 사건'과 '벤츠 여검사 사건'이다. 당시 피의자들이 거액의 금품을 받아놓고도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혐의를 벗게 되자 국민권익위원회가 재발 방지에 나선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오명을 쓰고 있는 공직사회 부패를 막기 위해 탄생한 김영란법은 수차례 수정 작업을 거쳐 지난해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처음에는 공직자에 한정됐던 법 적용 대상도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으로 확대됐다. 이들 역시 막강한 '공공성'을 지닌다는 이유에서였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7월28일 이 법에 대한 합헙 결정을 하면서 적용대상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로써 공직자등의 범위에는 △공무원, 공직유관단체·공공기관의 장과 임직원 △각급 학교의 장과 교직원 및 학교법인의 임직원 △언론사의 대표자와 그 임직원이 모두 포함됐다.

이들과 그 배우자들이 동일인으로부터 100만원을 초과하거나 매년 합계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으면 제공자와 수령자 모두 최고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 금액에선 직무 관련 여부는 묻지 않는다. 금액만 넘으면 무조건 처벌된다.

반대로 100만원 이하일 때는 직무 관련성을 따진다. 관련성이 있으면 제공자와 수령자 모두 금액 가액의 2배 이상 5배 이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대가성이 없어도 직무와 연관되면 처벌 대상이다.

◇'부정청탁'과 '금품 수수' 처벌 대상은?

김영란법이 금지하고 있는 행위는 크게 '부정청탁'과 '금품 수수'다. 먼저 부정청탁의 유형은 사실상 공공부문의 모든 분야라고 보면 된다. 김영란법에 예시된 14가지 유형에 해당하지 않더라고 15번째 포괄조항을 통해 업무의 모든 영역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부정청탁을 하면 금품 수수 여부와 관계없이 처벌된다.

다만, 예외규정도 있다. 각종 법률에 따라 국회의원, 정당, 시민단체 등이 공익적인 목적으로 시민의 고충민원을 전달하는 행위 등은 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 또 어떠한 청탁이 '사회상규'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예외로 인정될 수 있다. 법 규정 자체가 불명확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법조계에서는 법 적용에 대한 '판례'가 쌓여야 명확한 기준을 확립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영란법의 두 번째 핵심인 '금품 수수'는 그동안 관행처럼 여겨졌던 스폰서, 떡값, 촌지, 전별금 등을 모두 포함한다. 대가성이 없더라도 공직자에게 전해지는 모든 금품을 대상으로 한다. 처벌 여부는 직무 관련성과 가액에 따라 나뉘는데 직무 관련성이 있으면 100만원 이하, 없더라도 100만원 내지 1년 합계 300만원 초과면 처벌된다.

물론, 여기서도 예외는 있다. '다른 법령, 기준 또는 사회상규'에서 인정하는 범위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가액'은 주거나 받을 수 있다. 여기서도 사회상규의 모호성에 대해 논란이 일었으나 헌재는 이를 명확성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현대백화점 충청점이 추석 선물세트로 판매 중인 수입산 저가 과일.

ⓒ 임장규기자
이에 따라 최근 정부가 확정한 가액은 이른바 '3·5·10'이다. 원활한 직무수행이나 사교·의례 또는 부조의 목적으로 제공되는 금품 중 인정되는 범위로서 음식물은 3만원, 선물은 5만원, 경조사비는 10만원이 각각 상한선이다.

◇공직사회·기업 매뉴얼 마련 '분주'

김영란법을 적용 받는 공직자등은 약 400만명으로 추산된다. 행위자 쌍방을 처벌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과 얽히는 모든 국민이 사실상 법 적용 대상이다.

특히,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공직사회는 즉각 대응마련에 돌입했다. 소관 부처인 국민권익위는 이미 공무원·공직 유관단체·사학 관계자·언론인 등 법 적용 대상별로 '청탁금지법 매뉴얼'을 마련 중이며, 검경 등 수사기관도 관련 수사 매뉴얼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충북도 역시 농림축산물 수요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달부터 지원협의체와 태스크포스(TF)를 각각 구성, 대응 마련에 나섰다.

법 시행 이후 경제적 타격을 우려한 도내 기업들의 발걸음도 부쩍 바빠졌다. SK하이닉스 등 50여개 도내 기업인 80여명은 지난달 31일 청주상공회의소가 마련한 김영란법 설명회에 참석, 기업 경영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칠 법 내용에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하지만 실망감도 적잖았다. 법 규정 자체가 모호한데다 변호사들의 답변 또한 애매한 선에 그쳤기 때문이다. 일부 참석자들은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법조계도 정확히 모르는 내용을 기업인들이 어떻게 숙지하겠느냐는 의문 섞인 목소리였다.

행사를 주관한 청주상공회의소 측은 "하루 빨리 세부적인 지침이 나와 도내 기업인이 피해를 입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이대로라면 경제활동 위축이 우려된다"고 했다.

◇농축산·유통업계 '비명'

법 시행을 앞두고 가장 우려되는 건 농수축산물과 가공품의 소비 위축으로 농축어민들과 유통업자들이 직격탄을 맞게 된다는 점이다. 업계에선 입법예고안대로 시행되면 농축수산업 피해액이 연간 1조8천억원~2조3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역시 허용금액 기준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정부 스스로도 농축수산인들의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단 얘기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법 시행에 따른 농축산물 선물 수요 위축으로 농산생산액이 최대 9천569억원, 소매매출액이 1조3천878억원가량 감소할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뭘 사야 하나'. 김영란법 시행을 2주일가량 앞둔 12일, 현대백화점 충청점 추석선물세트 판매코너에서 고객들이 저가 위주의 상품을 살펴보고 있다.

ⓒ 임장규기자
소매 부문별로는 한우 2천939억~3천433억원, 인삼 4천573억~5천341억원, 사과 1천402억~1천637억원, 배 610억~713억원, 화훼 1천407억~1천644억원, 임산물 951억~1천111억원 등이다.

특히, 한우의 경우 벌써부터 직격탄을 맞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매년 추석 한 달 전부터 선물세트 증가로 명절 특수를 누리던 한우 가격이 올해 추석에는 8%나 급락했다는 게 전국한우협회의 설명. 실제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추락폭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우 선물세트 90% 이상이 법에서 규정한 5만원을 훌쩍 뛰어넘는 까닭이다.

이와 함께 굴비와 인삼, 배 같은 고가 상품의 피해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반면, 5만원이 넘지 않는 저가 농수산품과 가공식품이 도리어 반사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통조림, 햄, 김, 귤, 멸치 등이 앞날을 내다보는 대표 품목이다.

도내 농축산업계 관계자들은 "아직 법 시행이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며 "일부 부패한 고위 공직자들을 잡으려다 농민들이 다 죽게 생겼다"고 하소연했다.

이시종 충북도지사는 최근 법 시행을 앞두고 "소득 재분배 대책 없는 법과 경제 정의는 불평등과 빈익빈부익부 현상만 가중시킬 것"이라며 "법 시행에 앞서 농민과 자영업자를 위한 어떤 대책을 세울지를 대한민국은 먼저 검토해야 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부패 공화국'의 오명을 벗기 위한 첫 갈림길에 선 김영란법. 과연 갑(甲)의 질서를 무너트릴지, 아니면 또 다른 을(乙)의 피해를 양산해낼지 지켜볼 일이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한가위 윷처럼 '청렴 주사위'도 대한민국 공직사회에 던져졌다.

/ 임장규기자 imgiz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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