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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울수록 퍼줄수록 행복합니다

청주 상당구 용암1동 주민센터 11년째 '도깨비 뒤주' 운영
용담명암산성동주민센터 지하 무료급식소 '사랑의 행복밥집'

  • 웹출고시간2016.09.12 18:32:34
  • 최종수정2016.09.12 18:32:34
[충북일보] 쌀이 남아돈다.

지난해 정부의 쌀 재고량은 190만t, 민간재고량도 130만t으로 UN 식량농업기구가 제시한 적정 재고량 80t의 네 배에 이른다고 한다.

과거 '부(富)의 상징'이던 흰 쌀밥은 당뇨 등 성인병에 좋지 않다며 꽁보리밥에도 밀리는 시대가 됐다.

쌀이 흔해졌다고들 하나 이런저런 이유로 한 끼 걱정을 해야 하는 이웃들이 여전히 우리 주변에 있다.

형편을 묻지 않고 쌀을 가져갈 수 있는 청주 용암1동 '도깨비 뒤주', 따뜻한 밥과 국을 먹을 수 있는 용담명암산성동 무료급식소 '사랑의 행복밥집'이 십수 년, 수년째 운영되는 이유다.

누군가는 무심코 지나칠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없어선 안 될 곳. 이웃들을 위해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두 곳을 소개한다.

청주시 상당구 용암1동 주민센터 직원들이 기탁받은 쌀을 '도깨비 뒤주'에 붓고 있다.

ⓒ 안순자기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퍼주는 도깨비 뒤주

채우는 사람·퍼가는 사람 '따로'

2005년 10월부터 11년째 운영

최근 경기악화로 쌀 기부량 줄어

"상부상조 전통 이어졌으면"

쌀을 퍼도 퍼도 줄지 않는 신기한 '도깨비 뒤주'.

청주시 상당구 용암1동 주민센터에 있는 도깨비 뒤주는 끼니를 걱정하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지난 2005년 설치돼 올해로 12년째 이어지고 있다.

쌀 뒤주를 처음 만들어보자고 했던 이는 지난 2012년 2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故) 이대성 청주시의원이었다.

당시 용암1동주민센터에 근무하며 주민인 이 의원와 함께 쌀 뒤주를 만들었던 박창희 내덕2동 맞춤형복지팀장은 "출근 길 무단횡단하던 노인을 피하려다 벌어진 사고여서 주민들은 '이 의원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며 노인의 생명을 지켜냈다'며 안타까워했다"고 회상했다.

박 팀장은 "이 의원은 홀몸노인을 부모처럼 생각했다"며 "살아 있었다면 좋은 일을 더 많이 했을 텐데…"라며 말 끝을 흐렸다.

이 의원이 떠난 뒤에도 도깨비 뒤주가 제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뒤주를 채우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쌀을 채우는 기부자는 무영종합건설, 영운새마을금고, 참좋은교회, 익명의 독지가 등 다양하다.

한 달에 한두 포씩 지원하는 기부자도, 통 크게 한 번에 100포씩 기부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우여곡절도 있었다.

양심에 따라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것이 원칙이지만 몇 해 전에는 누군가 쌀을 한 톨도 남겨놓지 않고 가져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올봄에는 불청객인 쥐와 여름에는 쌀벌레와의 한판 대결이 펼쳐지기도 했다.

도깨비 쌀 뒤주가 빈적은 없지만 최근 경기악화, 팍팍해진 살림살이를 반영하듯 쌀 기부량이 줄고 있다. 2014년 8천190㎏이던 기부량은 지난해 5천380㎏으로 떨어졌고 올해는 지난 8일 기준 1천90㎏ 수준에 그치고 있다.

올해 나눠준 쌀은 5천114㎏으로 기부량보다 4~5배 웃돈다. 방명희 용암1동 주민복지팀장은 "지난해 무영종합건설에서 기탁한 100포를 저장해 두지 않았다면 이미 동이 났을 것"이라며 "아직 쌀을 가지러 오는 분들이 계신 만큼 상부상조 정신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청주시 상당구 용담명암산성동주민센터 지하 무료급식소 '사랑의 행복밥집'에서 봉사자들이 밥과 국, 반찬이 담긴 식판을 나르고 있다.

ⓒ 김태훈기자
2010년 10월6일 개소 매주 수요일 운영

행복밥집 대장 연규순씨 사비털어 시작

후원금 차곡차곡·자원봉사 꾸준

"밥·국만이라도 매일했으면"

도깨비 쌀 뒤주처럼 한끼가 걱정인 어려운 이웃들이 찾고 있는 곳이 있다.

매주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밥 집는 냄새를 풍기는 용담명암산성동주민센터 지하 무료급식소 '사랑의 행복밥집(이하 행복밥집)'이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갓 지은 밥에 뜨끈한 국 한 사발, 그리고 제철나물 등을 무쳐 낸 반찬 2~3가지와 떡.

소박한 밥상의 주인공은 무료급식이 있는 수요일 오전 11시 동주민센터 지하 식당에 찾아오는 누구나 될 수 있다.

추석을 앞둔 지난 7일에도 어김없이 289회차 행복밥집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오전 11시부터 배식이 시작되지만 매일 30~40분 전이면 식당을 가득 메운다.

용담명암산성동 뿐아니라 금천동, 용암동 등 인근 지역에서도 찾아온다.

이날 메뉴는 흑미밥, 쇠고기미역국, 잡채, 비름나물무침, 겉절이. 식사를 마친 이들에게는 포장한 송편이 한 봉지씩 손에 쥐어졌다.

청주시 상당구 용담명암산성동주민센터 지하 무료급식소 '사랑의 행복밥집'에서 연규순 사랑의 행복밥집 자원봉사대장과 봉사자들이 밥과 국, 반찬이 담긴 식판을 나르고 있다.

ⓒ 김태훈기자
행복밥집 대표인 연규순(61)씨는 "이따가 배가 고프실 수도 있고 식사가 부족하실 수도 있고 해서 떡을 드리고 있다"고 했다.

수년간 얼굴 봐온 사이인 탓일까.

떡 한봉지를 들고 나간 노인을 한 봉사자가 떡 봉지를 더 챙겨 "할아버지!" 하며 급히 뒤따른다. 돌아온 봉사자는 "저 할아버지는 하나로는 안 돼요"라며 미소를 짓는다.

행복밥집은 올해로 6년째 이어지고 있다. 1월과 8월에는 안전사고를 우려해 홀몸노인 등은 따로 명부를 작성, 집으로 찾아간다.

시작은 행복밥집 대표인 연규순씨가 뜻밖의 보너스를 받으면서다. 당시 보험업에 종사한 연씨는 큰 계약을 하나 성사시켜 보너스로 1천만원을 받았다. 뜻있게 쓰고 싶었던 마음에 쌀을 사서 홀몸노인들에게 나눠줬다.

그러던 중 쌀을 받아간 한 노인들이 쌀을 부식 등으로 바꿔 쌀을 또 달라고 요구하는 일이 있었고 어떤 이는 쌀 대신 다른 후원을 부탁했다.

연씨는 "쌀보다는 직접 밥을 지어 드리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최용한 동장(현 건축디자인과장)에게 무료급식소 운영 계획을 말하자 주민자치프로그램 교육장을 선뜻 내어줬다"고 말했다.

행복밥집 시작은 연씨와 연씨가 다니던 용담동성당 신부와 신도도 함께 했다.

30여 명이 찾던 무료급식소는 점점 사람이 불어났다. 근근이 버티던 행복밥집에도 위기는 2012년 찾아왔다. 100명을 넘기자 예산이나 인력이 감당이 안됐다. 사방팔방 학연, 지연을 총동원해 후원금 모금에 나섰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오랫동안 그를 지켜본 이들이 지갑을 열기 시작했고 한화이글스, 삼성생명 충청지역단, 상당신협에서 후원에 동참했다. 굿모닝약국을 운영하는 한 주민도 매달 30만원씩 행복밥집 살림을 보태고 있다.

후원금은 충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지정기탁)을 통해 수백만 원에서 수십만 원, 몇만 원 형편에 따라 들어오고 있다. 차곡차곡 들어온 후원금은 재료비로 사용하고 있다.

내일이라 여기고 참여하는 자원봉사자들도 행복밥집에 없어선 안될 일등공신이다. 고슬고슬한 밥은 전순호 새마을 부녀회장이 줄곧 맡고 있다. 2013년부터는 '사랑의 행복밥집 자원봉사대'를 별도로 구성할 정도로 자원봉사자들의 참여가 활발해졌다.

지난해에는 청주은하수로타리클럽 지속적 후원과 배식봉사를 약속하며 함께 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고마운 분들께 한 말씀 하세요" 기자의 말이 떨어지자 연씨는 "이성희 상당신협 이사장, 이상은 자원봉사대 부대장 ,노미애 총무 그리고 박정옥, 김현경, 전순호, 박정옥, 민덕희, 유정자, 어명수, 주재화, 남창기, 장홍원, 홍종길, 한병수, 정우철, 이숙애, 천혜숙…. 어디까지 했더라. 고마우신 분들이 너무 많은데 어쩌죠. 하하."

연씨는 "매일 밥과 국만이도 무료급식을 하는 게 바람"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푸드뱅크용 냉동·냉장트럭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형편으로는 먼 얘기다"라고 밝했다.

지난 4년간 행복밥집을 찾은 황모(82·금천동) 할머니는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한 번도 맛이없거나 소홀했던 적이 없었다"며 "고맙다는 말을 수천 번해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올해 지역사회는 아동학대사건(일명 승아양 사건), 지적장애인 무임금 노동사건(일명 만득이 사건)으로 들썩였다.

이는 '나만 아니면 돼' 라는 공동체 의식 붕괴가 보여주는 현대사회의 씁쓸한 단면이다.

'이웃사촌'이란 말도 옛말이 됐지만 누군가는 365일, 36.5도의 자신의 온기로 누군가를 위해 쌀을 채우고 밥을 푸고 정을 나누고 있다.

/ 안순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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