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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우성종합법무법인’ 박정훈 변호사

“초심잃지 않고 주민과 호흡 성실한 변호사 되도록 최선”

  • 웹출고시간2008.05.15 14:36:3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변호사가 되면 국가에서 50여 가지에 이르는 자격을 동시에 얻게 된다. 결국 변호사는 세무사·변리사 등 우리 생활 전반에 걸친 포괄된 자격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국가로부터 모든 영역을 넘나드는 자격증을 부여받은 변호사에게는 이런 권리와 함께 이를 공공의 이익을 위해 활용해야하는 막중한 의무도 부여받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변호사는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의무가 무엇인가 법정에 설 때마다 되새기고 자신이 법정에서 쓰러질 때까지 지속적으로 책무를 이행할 수 있는 자세로 법률가로서 살아가야 한다”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가 고향인 박정훈 (39·우성종합 법무법인) 변호사는 영동고등학교(36회)와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2002년 사법고시에 합격해 2005년 사법연수원 34기로 연수원을 수료하고 이 해 2월부터 우성종합법무법인 구성변호사로 활동해오고 있다.

그가 법조인이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고려대 법학과를 입학해서가 아니라 대학 3학년 때부터이다.

그는 “법학과에 입학했다고 해서 반드시 법조인이 돼야 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법을 배우면서 그것을 탐구하다보니 자신이 탐구하는 학문이 실생활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가에 호기심을 갖게 됐고 실생활에서 적용되는 법의 영역을 체험하기 위해선 사법고시를 통해 고시의 벽을 넘어 법조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대학 3학년(91년)때부터 사법고시를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처음에는 법학이 딱딱한 학문이라 적응하는데 힘들었다. 공부를 하면서 논리적이고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것을 느끼기 됐지만 논리적사고 방식에 익숙치 못해 적응하데 애를 먹었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선후배들과 어울려 스터디를 만들고 공부하면서 법학이 과거 오랜 기간동안 많은 학자들의 연구의 집합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됐고 교과서 상의 이론과 지식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한 이론구성도 해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시작한 박 변호사의 사법고시 도전기는 순탄하지 마는 않았다.

92년 대학 4학년부터 최종 합격이 된 2002년까지 10여년 동안 박 변호사는 대학고시반에서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피해의식속에 사는 비정상적인 그룹’의 일원으로서 절차탁마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그는 95년 사법고시 1차시험 합격 후 95년과 96년 내리 2차 시험에서 낙마해 결국 97년 사병으로 군 입대를 했으며 99년 3월 제대이후 다시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가 2001년 1차 시험에 합격한 후 2002년 2·3차시험에 합격, 2003년 사법연수원 34기가 됐으며 2년 동안의 사법연수원과정을 수료하고 2005년 우성법무법인 변호사가 됐다.

그는 신림동 고시촌의 모습을 슬리퍼에 트레이닝복이 마치 제복화되어 있고 고시촌 밖과 격리되어 살다보니 정상적인 대인관계를 할 수 없어 피해의식속에 살고 있는 비정상적인 그룹으로 표현한다.

변호사는 국가에서 받은 권리와 의무가 무엇인가 고민하며 법정에서 쓰러질 때까지 지속적으로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법률가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박정훈 변호사가 재판을 위한 변론을 준비하고 있다.

박 변호사는 “고시생은 고시일정에 따른 1년 살이 생활을 한다. 이 일정에 맞춰 살다보면 10년 정도는 웃습게 가기도 한다. 그래서 고시촌 문화에 젖어들다 보면 이곳에서 헤어날 수 없고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고시합격 밖에 없기 때문에 어쩌면 ‘고시합격’보다는 ‘고시촌 탈출’을 목표로 죽기 살기로 공부했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박 변호사는 판사, 검사, 변호사 등 법조인의 세가지 갈림길에서 변호사를 선택하게 된 이유에 대해 “예전에 변호사없이 소송을 해 본적이 있다. 내 자신이 법대를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소송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주민들에게 내 자신이 익히고 배운 법률지식을 제공해 이들이 어려움없이 소송을 감당해 낼 수 있도록 변호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2005년 우성종합법무법인 서울 본사무실 근무를 하고 2006년부터 영동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고 활동해오고 있는 박 변호사는 고향인 영동에 정착하게 된 이유에 대해 “대학 1학년때부터 37세가 될 때까지 근 20년을 타지 생활을 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많았다. 그래서 고향의 공기를 마시고 고향의 흙을 밟으며 고향 주민들을 위해 법률서비스를 제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동은 우리 가족의 흔적이 남아있는 가족박물관이다. 저는 법률서비스를 영동주민들에게 제공하며 가족박물관을 더 풍성하게 만들려보려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박 변호사는 법률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면단위 주민들을 위해 무료 방문 벌률상담과 인터넷 홈페이지를 활용한 법률자문을 계획하고 있으며 현재 영동군 고문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받는 수임료의 일부를 영동군민 장학금으로 기탁할 방침이다.

박 변호사는 사건 의뢰인들이 자신의 재산과 인신에 대해 상담하고 변호를 맡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의뢰인들에게 좀더 전문적인 변호를 해주기 위해 명지대학교 부동산대학원에 입학해 2학기를 마쳤으며 현재 휴학 중이지만 박사학위 취득까지 공부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노자의 도덕경 24장에 나오는 기자불립(企者不立) 과자불행(跨者不行)(발돋움하고 있는 자는 똑바로 서 있을 수 없고 발걸음을 크게 내딛는 자는 제대로 걸어 갈수가 없다)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는 박 변호사는 “기본이 중요하고 성급히 어떤 결과를 도출하려하지 않고 꾸준한 노력과 정성이 있어야만 좋은 결과를 도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항상 초심을 잃지 않고 변호사가 왜 되려고 했는지 처음에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활동했는지 반면교사를 삼아 고향분들에게 작으마나 도움을 줄 수 있는 조력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로 변호사의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법조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일반주민의 이해가 부족한 상황이고 또 법조인들이 일반주민들에게 이것을 제대로 설명해주려는 노력도 부족했다. 따라서 법조계가 일반주민들에게 다가서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입장에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모습의 법조인들이 필요하다. 이런 모습이 갖춰진다면 일반주민들의 법조계에 대한 신뢰가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항상 겸손한 자세로 일반주민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상대하기 힘들고 거북한 변호사가 아닌 주민들 곁에서 주민들과 호흡하며 초심과 기본을 유지하면서 성실한 모습으로 열심히 일하는 변호사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각오”라고 밝혔다.

이것이 의뢰인들의 응어리진 고민을 이해하고 이것을 풀어주는 것에 행복과 만족을 느끼며 이것을 변호사로서의 자부심으로 여기는 박정훈 변호사의 활동에 시선이 모아지는 이유일 것이다.


영동 / 정서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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