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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0.11.14 19:07:12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멀리 파르나쏘스산의 아폴론 신전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나는 영화 감상은 그만 두고 신화 답사단 일원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하고자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데 점입가경이라 했던가. 산 중턱의 아폴론 신전 앞에 서니 그 마주 보이는 언덕 자락에 이번에는 신성치 못하게도 갱영화가 펼쳐지는 것이었다.

<대부 3>, 알 파치노가 고향 시실리에 돌아와 아들의 노래를 들으며 지난 일을 회상한다. 정말이지 지금도 못 견딜 것은, 제 가슴에 파인 묘혈을 들여다 보는 듯하던 알 파치노의 눈빛, 공동(空洞)과도 같던 그 눈동자…. 이어 그는, 갓 결혼하자마자 자신을 대신하여 차량 폭파 사고로 죽은 옛 사랑의 여자를 딸에게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뒤이어 가슴 저미는 음악의 여운을 이끌며 올라가던, 산자락에 Z자 모양으로 나 있던 그 길, 바로 저기였다.(지금도 나는 그 장면의 촬영 장소가 델포이의 산자락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태리와는 지리상으로도 가까우니까).

이제 델포이에서 영화는 다시 시작되고, 음악은 저 길 따라 흐르며, 알 파치노는 아폴론의 목소리로 나지막히 고백하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여자였지……다프네, 월계수로 변해 버린 나의 사랑'

올림픽 성화가 채화되는 헤라 신전.

가이드 분의 설명에 귀기울이려 애썼지만 아폴론 역시 오히려 나의 회상을 더욱 부추기는 것이었다. 그의 신전에 서서 나는, 늙은 갱스터가 추억하는 옛 사랑의 회한에 한없이 젖어 있었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서 나는 앞으로 '더욱 더 영화를 사랑하라'는 신탁을 받고 내려 왔다.

제 2일 코린토스, 비로소 그리스다운 햇빛을 만났다. 아프로디테의 살처럼 농염한 듯 투명한 햇빛…. 코린토스로 가는 길, 에게해의 바다를 느긋이 즐기며 달리다 보니 테바이의 왕자로서 코린토스에서 자라난 오이디푸스가 떠올랐다. 가열한 운명에 휩쓸린 자로서 영원히 기억될 안쓰러운 이름 오이디푸스, 그 이름의 뜻이 '부은 발'이라 하였지. 장님이 되어 그리스 전역을 떠돌 때, 내가 지금 차체의 진동으로 느끼는 이 대지를 그의 피투성이 발은, 흙먼지 속에서 쓰러질 듯 천천히 그의 몸을 이끌며 지나갔겠지. 따가운 햇볕 아래 볼 수 없는 눈에서도 눈물은 흘렀을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친어머니와 결혼했던 남자……. 어떤 섭리가 있어, 인간의 삶이 이토록 우롱되어지는 것인가.

코린토스의 박물관은 소박하고 아름다웠다. 가까운 지인이 자신의 집에서 애장품을 보여 주는 듯 편안한 모습이라 마음에 들었다. 청람빛 바다와 어울린 아폴론 신전은 활달하고 남자다웠던 아폴론, 뮤즈들을 거느리고 리라를 켜던 낭만적인 아폴론의 이미지가 부조되어 있는 듯 눈부셨다.

에피다브로스로 가는 하오의 길 위, 지중해 바다와 조르바 음악과 이윤기 작가의 휘파람 연주-선생님은 입 속에 몇 개의 현을 감춰 두고 있는 것 같았다-가 있어 아름다웠다. 나프폴리 노천 카페 발치에서 바람 불며 일렁이던 바다, 열대의 섬처럼 반짝이던 켄그리아 해변, 괌의 풍치와 흡사한 어느 휴게소에서 마시던 커피, 연록의 바닷물이 자꾸 발치까지 따라오던 아르테미스 산을 넘으며 부르던 일행들의 가을 노래 역시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주를 연상케 하는 에피다브로스에 도착하여 저녁 산책하듯 한유롭게 거닐었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유적이 남아 있는 이곳은 다른 곳보다 소나무가 많아서 어쩐지 익숙한 느낌을 주었다. 내 시골 옛 집의 뒤란에 서서 마을과 산을 둘러보듯 낯익은 풍경이었다. 환자를 위한 모노드라마가 공연되었다는 원형 극장을 비롯하여 치료를 위한 각종 시설이 여기 저기 산재해 있었다. 자연과 스포츠, 예술로 병을 치료 받은 고대인들이 오늘날의 우리보다 더 사람 대접을 받았다는 부러움이 일었다.

아폴로 신전에서 오른쪽이 이윤기 선생.

저녁 늦게 도착한 올림피아는 작은 시골 마을 같은 정겨운 분위기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 주변을 산책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고 있는데 일행 중의 사진작가 심선생님이 컵에 담긴 무언가를 건넨다. 곤충 매니아인 아들 녀석이 아주 좋아할 선물이다. 물장군이라는 곤충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멸종되고 없다고 한다. 이 녀석이 임시로 살 집에는 창문까지 나 있었다. 무척 감사했다. 무사히 잘 살려서 집에 잘 가져가야 할텐데 공항을 잘 통과할까 모르겠다고 주변에서 한 마디씩 걱정해 주었다.

이른 아침의 올림피아 경기장, 퇴적된 시간과 아침 햇살로 빛나는 현재의 시간이 맞물려 그지없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흩어진 건물들의 돌들마저 이 순간 나와 각별히 눈을 맞추기 위해 오랫동안 그 자리에 가장 맞춤한 모습으로 굴러 떨어져 있었던 듯 했다. 이 온기와 숨결을 머금은 나이 든 돌들이 제 몸에서 여린 야생화들을 피워 아이처럼 해말간 꽃의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아이 같은 눈을 뜨고 있는 신의 돌들…….

올림픽 성화가 채화되는 헤라 신전의 바닥에 점화의 불씨처럼 피어나 반짝이고 있는 조그만 들풀들, 햇살이 여울져 흐르는 유록빛 들판, 유모차를 밀며 산책하는 젊은 부부, 수천 년의 세월을 이리저리 건너뛰는 방아깨비를 잡으러 폴짝대는 아이들……. 이 올림피아의 정경은, 시간이란 과거 현재 미래로 분절된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커다란 지체로 존재하며, 인간은 그 속에서 그저 흘러가는 것일 뿐이라는 느낌을 갖게 했다.

아테네로 돌아온 다음 날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올랐다. 내게 그리스와 이방과 이속의 세계로 상징되어졌던 파르테논에 간 것이다. 오르는 도중 비극만 공연한다는 온데온 극장이 내려다 보였다. 군데군데 허물어진 그대로, 그것이 원래의 의도인 듯 아름답고 멋스럽다. 어제도 이곳에서 공연이 있었다는데 이런 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영위하는 아테네 시민들이 부러웠다.

파르테논의 햇살은 예상대로 강렬하고 뜨거웠으나 끈적임은 없었다. 보수 공사를 하고 있었지만 앞 쪽의 정면에서는 그 장치가 별로 보이지 않아 그래도 다행이었다. 신전을 한참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어른대는 햇살의 입자들이 한데 모여 어떤 상(像)이라도 만들어 낼 듯 했다. 그러고 보면 그 많은 조각품들 중 어떤 것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고, 그저 햇빛과 바람과 대기로 빚어진 것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이 파르테논에 서 있는 나의 실재감을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었으나, 그 공간에 막상 들어서니 오히려 내 몸이 이물스럽고 기이하게 느껴졌다. 이제 겨우 생성된 지 수십 년밖에 안 된 존재와 수천 년 이어져온 존재의 마찰 속에서, 내 영혼은 깃들인 육체의 집을 마다하고 그 신전의 열주 속으로 스러지려는 것이었다. 이 돌의 호흡에 내 생명과 유사한 인자가 있어 나를 끌어 들이는 것이라면, 나의 존재는 얼마나 먼 여정으로부터 발원되어 지금 이 순간의 생에 동참하고 있는 것인가.

아테네 시내에 있는 올림픽 스타디움, 무명용사의 비 등을 둘러보고 로마로 가기 위해 아테네 공항으로 갔다. 로마에 도착한 것은 밤 8시쯤, 그리스의 물장군도 주위의 우려와는 달리 로마 시에 무사히 입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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