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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윤기 선생을 추모하며… 신화 답사기 3

사람살이 즐거움 느끼게 해준 폼페이 유적
포로 로마노·바티칸 돌아보며 일정 마무리

  • 웹출고시간2010.11.21 17:49:32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로마 첫날 나폴리로 향했다. 이름만으로도 아름다운 나폴리, 하지만 내가 본 나폴리 시내는 정말 기대를 배반하는 것이었다. 쓰레기 넘치는 더러운 거리, 지저분하게 늘어놓은 노점의 물건들- 내가 사는 청주만 해도 거리에서 미적 감성을 발휘한 전시로 조잡한 상품들의 예술적 승화를 종종 목도할 수 있는데, 노점상의 패션 감각은 이탈리아가 한국을 따르지 못하는 것 같다- 아무렇지 않게 밖으로 빨아 걸어 놓은 칙칙한 빛깔의 속옷들….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 괴테가 <이탈리아 기행>에서 한 말이다. 아마 내가 가보지 못한 인근의 섬 카프리를 보고 한 얘기가 아닐까· 여고 시절 합창대회 때 카프리 섬에 관한 노래를 부른 적이 있었다. '카프리, 카프리'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음을 높일 때마다 우리 조그만 처녀애들 주변에는 미지의 신비로운 반짝임이 날아다녔다. 그 카프리를 못 보고 가는 아쉬움이 컸다. 그러나 폼페이 유적지는 그런 아쉬움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어쩐지 폼페이의 허물어진 건물들은 내가 어릴 적 냇가에서 친구들과 쌓으며 놀던 모래성을 자꾸 연상케 하는 것이었다. 이 방 저 방 수많은 용도의 방들을 가득 만들어 놓고, 다른 집으로 길도 내고, 자신만의 집에 들어 앉아 있을 때의 안온함과 다른 집들과의 소통에 재미를 느끼던, 그 소꿉장난하던 기분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하나의 마을, 하나의 도시가 갖는 미학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런 닫힘의 아늑함과 열림의 소통 구조에서 오는 즐거움 아닐까. 고립무원의 무인도에서는 그 두 가지 모두 즐길 수 없을 터이니. 폼페이의 유적지는 그런 사람살이의 즐거움을 잘 느끼게 해 주었다. 오밀조밀한 가정집들, 선술집, 빵공장, 목욕탕, 시장터, 원형극장, 당시의 마차 바퀴가 패여 있는 거리와 골목길들, 하다못해 색주가까지도 사람의 체취를 흠뻑 느끼게 하는 정겨움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곳의 어느 방에서였을까. <폼페이 최후의 날>이란 소설에서 여주인공이 짝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사랑의 묘약을 만들던 곳은. 중학교 때쯤 그 책을 읽으며 그 약의 재료들을 나도 적어 두었는데, 그 사랑의 비법을 간직한 종이 또한 지금쯤 어느 폐허의 자리에서 쓸쓸히 날리고 있을까.

콜로세움 내부

로마로 다시 돌아오는 길, 왼쪽으로 나폴리 앞바다는 지는 해에 물들고, 오른쪽 베수비오 산은 그 바다와 노을빛의 조명을 받아 신비스런 자태로 눈길을 붙잡았다. 화산 폭발로 품페이 사람들을 삼킨 산치고는 고혹적인 모습이었다. 나무도 거의 없이 부드러운 선으로 데생된 주변의 산들 또한 아무 것도 걸치지 않고 몸의 굴곡을 그대로 드러낸 여자의 몸처럼 선정적이었다. 거기다 그 매끄러운 산의 능선을 핥고 있는 살구빛 저녁 햇살이라니…….

포로 로마노(왼쪽) 나폴리 박물관의 아프로디테와 어린 에로스 (오른쪽)

로마에 다시 돌아온 이튿날, 콜롯세움, 포로 로마노, 로마 국립 박물관, 산타 마리아 성당, 트레비 분수, 스페인 광장, 나보나 광장 등을 돌아보았다. 포로 로마노, 나는 왜 이리 옛 사람들이 일상을 움직이던 폐허의 자리에 이다지도 마음이 쏠리는지 모르겠다. 예전의 어느 눈물 많던 사람이 그의 전 생애를 다하여 나의 옷깃을 이토록 잡아당기는 것인지.

트레비 분수하면 동전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다. 동전 하나를 던지면 로마로 돌아오고, 두 개 던지면 로마에서 사랑이 이루어지고, 세 개 던지면 가정이 화목해진다고 한다. 과감히 동전 두 개를 던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대신 그 동전으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사랑보다도 감미로운 맛이었다.

나보나 광장의 '피노키오'

'피노키오의 모험'은 이탈리아 소설가 콜로디의 작품이다. 피노키오 옆은 퍼포먼스 중인 한남자.

뉘엿해지는 저녁 빛 속의 나보나 광장을 거닐다가 일행들과 노천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내일이면 돌아가야 하는 아쉬움이 쌉사레한 커피맛 속에 함께 떠돌았다.

마지막날, 옥타곤과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 판테온, 진실의 입 등의 일정이 잡혀 있었다. 좋다는 것을 하도 보니 이제 무감각할 지경이다. 특히 바티칸에서는 인파에 밀려 앞길을 도모하는 것이 급급한지라, 제대로 본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시스티나 성당에서의 천지창조 그림, 최후의 만찬, 라파엘 방에서의 아테네 학당 등은 그저 정신을 얼얼하게 할 뿐이었다. 저 작품들을 미감을 열어 주는 예술품이라기보다 감각을 마비시키는 향정신성 의약품 계열로 분류한다면 신성모독일까. 바티칸에서 나는 원석을 손에 쥔 무뢰한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성베드로 성당, 그곳에서 그레고리안 성가나 오르간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동안 여러 곳의 성당을 잠깐씩 들러 보았지만 아무 곳에서도 청각적인 경건함을 느낄 기회를 갖지 못했다.

성베드로 성당에서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미켈란젤로가 스물다섯 살 때 만들었다는 <피에타>이다. 그런데 방탄 유리 너머로 보이는 성모의 얼굴이 비탄스럽기에는 너무 청순하고 아름다웠다.

내게는 매끄럽고 완벽한 구조의 <피에타>보다 비록 미술책으로만 접해 본 것이지만, 미켈란젤로가 죽기 전 날까지 몰두했다는 <론다니니 피에타>의 고졸한 느낌이 더 마음에 와 닿는다. 말년의 완당 글씨도 졸(拙한) 것이 그 정점이라는데, 예술에 있어서는 동서양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산타 마리아 교회 앞 '진실의 입'에서 헵번의 포즈를 취하고 기념 촬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간발의 차이로 먼저 도착한 수십 명의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진실의 입'에 한 명씩 손을 넣고 차례대로 사진을 찍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다리기에는 그 사진 공정의 가동률이 만만치 않아서 포기하고, 맞은 편에 있는 작고 고풍스런 가게에서 동료 선생님에게 줄 선물을 하나 샀다. 석고로 만든 것 같은 하얗고 조그만 함인데, 뚜껑에는 오케아노스인지 프로테우스인지 모르지만 노인의 얼굴이 부조되어 있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처럼 생긴 주인 할아버지는 셈도 철학적으로 하는 것인지 산술적 계산에 영 서툴러서, 나는 노인의 얼굴을 모시고 나오는데 무척 애를 먹었다.

"세상에는 '진실의 입'을 단지 하수도 뚜껑이라는 사실적 시각으로 치부하는 부류와 그것에 손을 넣으면 정말 손을 뺄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믿는 부류가 공존한다. 우리는 후자에 속하지 않겠는가."

대단한 전리품이라도 노획한 양 금방 사 들고 온 '진실의 입'을 손에 들고 버스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이윤기 선생의 말씀이 들려 왔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살아 있는 신화를 손에 쥐고 있는 것인가.

'최상의 미래를 갖춘 사람은 장구한 기억을 가진 자.'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끝자락의 시간, 어느 프랑스인의 말이 떠오른다. 인류의 '장구한 기억을 가진' 그리스 로마 신화……. 그 현장을 둘러 본 영성의 시간들, 이 쟁여진 기억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곰삭은 맛으로 내 생을 발효시켜 나갈 것이다. <끝>

* 그리스 물장군은 한국에 들어와 이십 여 일을 살았다. 장군의 죽음이 천수를 다한 것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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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