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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우리는 그동안 수 많은 외침 속에서 5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부침(浮沈)을 반복하고 있다.

모든 국가는 기본적으로 자주(自主)를 지향해야 한다. 남의 보호나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일을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대원군과 명성황후

조선 말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는 극단적 갈등 관계였다. 정치 노선이나 철학 모두 180도 달랐다.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은 쇄국정책(鎖國政策)을 고집했다. 다른 나라와 관계를 맺지 않고 문호를 굳게 닫아 서로 통상하지 않았다.

근대 구미 자본주의 국가들은 일찍부터 면업을 기축으로 산업혁명을 완료했다. 1820년대 과잉 생산으로 최초의 공황을 맞으면서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게 됐다.

이들 국가들은 아시아 시장에 눈독을 들였다. 원료 공급지를 확보하고 판매시장을 획득하기 위해서였다.

중국과 일본은 개항을 선택했다. 동북아에서 오직 우리나라만 세계 시장에 편입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19세기 초 우리나라 해안지방에 영국·프랑스·미국·러시아의 침범이 잦았다. 쇄국정책의 상징 대원군은 외세의 침략을 저지하려 했다.

대원군은 집권 첫 시기부터 청나라와의 사대적 외교를 제외한 모든 대외관계를 차단했다. 당시 도쿠가와막부(德川幕府)를 타도하고 정권을 장악한 일본의 메이지정부(明治政府)도 서양의 오랑캐와 같은 무리로 규정하고, 기존의 전통적 교린마저 거부했다.

반면, 고종의 아내 명성황후는 대원군의 쇄국을 풀고 일본과 수교했다. 이후 차례로 서양의 열강들과 수교를 맺어나갔다.

그러나 대원군의 강력한 통상수교 거부로 덜 준비된 상태에서 이뤄진 개방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냈다. 명성황후는 잦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외줄타기 같은 위태로운 정국 운영을 극복하지 못했다. 결국 1882년 임오군란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낀 명성황후는 충주(장호원)로 피신하기도 했다.

쇄국과 개방의 길목에서 구한말 조선은 이처럼 집권세력 내 갈등과 국론 분열까지 겹치면서 아쉽게도 멸망의 길에 접어 들었다.

이 문제는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도 자주 회자되는 사례다. 기본적인 통상정책은 물론, 동북아를 둘러싼 외교 문제를 놓고도 좌우 갈등은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또 다시 외교·경제적 위기가 도래했다. 미국의 트럼프, 일본의 아베, 중국의 시진핑, 러시아의 푸틴 등 4개 열강 지도자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정반대의 '외줄타기 외교'를 선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한반도 운전자론을 주장한다. 주권과 관련된 문제를 외세에 맡길 수 없다는 소신이 엿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운전자론과 무관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반도 운전자론

북 핵 위협이 사라지지 않는 상황에서 어쩌면 한반도 운전자론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이 와중에 미국의 거센 통상압박이 본격화 되고 있다. 구한말과 달리 이미 글로벌 경제질서의 주요 국가인 우리나라 입장에서 볼 때 뾰족한 해법을 찾을 수 없을 정도의 난감한 문제다.

글로벌 경제질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거슬를 수 없는 국제적 문제로 보아야 한다. 글로벌 초강대국인 미·일과 중·러 등 4강 관계를 벗어나서는 해결될 수 있는 이슈가 없어 보일 정도다.

사실상 자주의 개념도 고집하기 힘들어 보인다. 그래서 자주를 기본으로 하되 4강 외교를 통한 글로벌 동반자적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북핵 문제는 좌우 양극단의 시각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남북대화 또는 인도적 지원에만 몰두한다면 제2, 제3의 퍼주기 논란에 봉착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명박·박근혜식의 극단적인 대립구도 역시 해법은 아닌 듯 하다.

우선 국론을 통일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치권의 협치(協治)가 매우 중요하다. 상대를 적폐(積弊)로만 규정하면 대한민국은 구한말과 다름없는 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위기의식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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