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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

메타커뮤니케이션 사업총괄대표

일본 문학의 정형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긴 여운을 준다는 하이쿠(俳句)가 있다. 기본적으로 5.7.5의 글자 수를 기본으로 17자 안에 인생의 희로애락과 허무함에서 자연을 대하는 감성, 삶에서 느끼는 깨달음까지 문학적 표현의 정수가 들어있다. 대표적인 하이쿠 작가인 마쓰오 바쇼 [松尾芭蕉] (1644~1694)의 '우리 두 사람의 생애 / 그 사이에 벚꽃의 생애가 있다.' 마사오카 시키 [正岡子規] (1867~1902)의 '한밤중 / 소리에 놀라 잠을 깨니 / 달꽃이 떨어졌다.'와 같은 하이쿠들은 그 짧은 17자 안에서 일본 문학의 감성을 오롯이 전해주고 있다. 짧지만 강한 여운이 현대인들의 감성마저 자극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짧은 글귀의 시작은 '광화문 글판'이 아닐까 싶다. 대한민국의 심장부인 광화문에 위치한 교보생명 사옥 외부에 내걸린 대형 글판이 대중의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이다. 1991년 교보생명 창립자인 신용호 회장의 제안으로 처음 등장하였고, 매년 계절마다 총 네 차례씩 문구를 변경하며, 유명 시인들의 작품 중 한 구절을 인용해 꾸며낸 식으로 제작되어 왔다. 처음으로 걸린 글귀는 '우리 모두 함께 뭉쳐 경제활력 다시 찾자'였으며, 초창기에는 불법 광고물로 간주되어 벌금이 부과되기도 했다고 한다. 1998년 IMF 이후부터 감성적 색채를 띠기 시작했으며, '광화문글판 문안 선정위원회'가 있어 매번 면밀한 선정 과정을 밟고 있으며, 문안선정위원을 역임한 문학가로는 소설가 한강·은희경, 시인 장석남·안도현·정호승 등 유명인들이 있다. 서른 자도 안 되는 짧은 글 속에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고 지친 일상 속의 옹달샘같은 감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 중에서, 2012년 봄)' 어느 날 축 쳐진 어깨로 광화문 사거리 건널목을 건너다 이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한 번 더 용기 내라고, 누군가는 너를 지켜보고 있다고.

우리나라 시문학 분야에서도 짤막한 시 경향은 이미 대중으로부터 폭발적 지지를 얻고 있다. 하상욱 시인의 등장은 그를 B급의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하기엔 대중들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의 시에 열광하고 공유하며 스스로 이 짧은 시에 대해 나름의 경외를 보내고 있다. 그의 시를 보면, '똑같은 걸 / 뭐하러 또 (셀카표정)', '있어줘서 고마워 / 이제부터 잘할게 (내일)' 과 같이 네 다섯 글자로 구성돼 있다. 하상욱 시인의 팬들은 이런 싯귀를 자신들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에 올리며 스스로의 감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학적 간결함이 자연스런 진화의 과정 때문인지 스마트폰이라는 첨단 디지털기기의 대중적 확대로 인한 현상인지 그 선후를 따지기 어렵지만, 서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분명하다. 특히 사진과 간명한 글귀로 대변되는 인스타그램의 인기는 이런 현상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해시태그(hashtag)로 대변되는 일련의 간결한 문장들이 그 대표적 예이다. 해시태그(hashtag)는 게시물에 일종의 꼬리표를 다는 기능으로 특정 단어나 문구 앞에 해시('#')를 붙여 연관된 정보를 한데 묶을 때 사용하는 기호이다. 처음에는 관련 정보를 묶는 정도의 기능으로 쓰였지만, 최근에는 검색뿐 만 아니라, 공감과 공유를 위한 주장이나 공공캠페인의 브랜드로 확장돼 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해시태그를 가장 활발하게 사용하는 곳은 홍보업계다. 홍보캠페인은 많은 대중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 내야 하므로, 사용자들의 이목을 모으는 효과적 수단으로 해시태그를 활용하고 있다.

해시태그가 마케팅 수단으로만 쓰이는 건 아니다. 누리꾼이 자발적으로 뜻을 모으는 구심점 이자 사회공론의 장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유엔 내의 여성 권익 총괄기구인 유엔여성(UN Women)이라는 조직이 남성들에게 성평등 지지자로 나서달라는 바람을 담아 글로벌 성평등 캠페인을 벌인 '히포시(He for She)' 캠페인의 중요한 확산 방식은 해시태그를 통해서 이다. 해시태그 형태의 '#heforshe'는 히포시 캠페인의 대표 이름이자 슬로건인 셈이다. 이처럼 유행처럼 번지는 해시태그(#)의 키워드들은 마치 하나의 시 같기도 하다.

때로는 길고 화려한 말보다는, 간결하고 검소한 한 문장이 사람들의 가슴에 더 깊이 와 닿는 법이다. 바쁜 현대 사회 속에서 모바일 스마트폰이 일상의 소통 도구로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짧은 경구에 대한 가치는 더욱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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