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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여중 '사제동행독서동아리' 여름방학 독서 캠프

고전의 세계로 떠나는 달빛 여정(旅程)

  • 웹출고시간2013.08.25 19:27:20
  • 최종수정2013.08.25 19:27:20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길을 갈 수 있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풍요로웠나."

헝가리의 미학자 루카치의 말처럼 문학이란 별이 청소년에게도 찬연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중장년 시대의 학창시절에는 '문학의 밤'이 있어 문학에 나타난 삶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이 있었지만, 요즘은 학교에서 그런 행사를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이 입시 용도로만 변질된 탓이다.


그러던 차 보은여중(교장 김흥렬) '사제동행 독서 동아리'의 여름방학 밤샘 독서캠프를 지켜보게 되었다. 보은여중 독서동아리 '더불어숲'은 2013년 7월 출판사 다산북스가 주최한 제 2회 전국 청소년 문학감상문 대회에서 단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3년 8월 1일, 독서동아리 학생 열다섯 명은 학교 도서관에서 오후 2시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고전과 다채로운 문학작품 속으로 '달빛 여정'을 떠났다.

셰익스피어와 보내는 여름날 오후 -고전 깊이 읽기

시작은 셰익스피어였다. 소녀들의 감성이 셰익스피어와 어떻게 만나게 될 지 기대가 되었다.

박미선 지도교사

"요즘 아이들의 언어는 직설적이거나 줄임말 투성이입니다. 다소 어려워도 고급스럽고 기품 있는 언어의 세계를 열어 보이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의 연극 무대에 가장 많이 올리는 고전 중의 고전을 읽혀 보고 싶었죠. '로미오와 줄리엣'은 주인공 나이가 열넷, 열여섯이니 또래 이야기라 어려워도 흥미를 가질 것 같았고, 희곡이니까 연극하는 것처럼 배역을 정해 소리 내어 윤독을 시켜 보고 싶었습니다." 지도교사(박미선)의 말이다.

아이들은 정통 연극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이크 앞에서 자신의 배역 읽기에 열심이다. 워낙 비유적 표현이 많은 탓에 대사 전달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아이들의 진지한 열기는 갈수록 극적 상황에 몰입되어 갔다.

4시간에 가까운 윤독이 끝나고 저녁 식사 후 같은 제목의 영화감상이 이어졌다. 1968년 프랑코 제페렐리가 감독하고 올리비아 핫세와 레오나르도 위팅이 주연한 명작이다. 영화가 끝나고 책과 영상을 비교해보는 토론회가 열렸다. 아무래도 아이들은 자신이 읽었던 배역을 더 눈여겨 본 듯했다.

로미오를 맡았던 3학년 최다연 학생은 "책으로 읽을 때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생각이 무척 깊고 어른처럼 느껴졌는데, 영화에서는 더 어린애 같고 가볍게 느껴졌어요."라고 말했고, 로미오의 친구 머큐쇼를 실감나게 읽었던 3학년 박은미 학생은 "책에서는 시적인 철학자 같았는데 영화에서는 약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보였어요."라고 말하며 웃는다.

여름밤 학교도서관에서 서로 배역을 나누어 읽고, 빔 프로젝트 영상으로 느꼈던 셰익스피어의 문향은 오래도록 아이들의 가슴에 머물리라.

애송시로 깊어가는 밤 - 나의 애송시 갖기

자정이 가까워지는 11시경, 학생들은 이제 시(詩)의 세계로 고요히 침잠했다.

요즈음 아이들은 거의 시집을 읽지 않는다. 그나마 국어 교과서로 접하는 시가 대부분이다. 이 '뒤적뒤적 시집 넘기기' 프로그램은 이러한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두 편을 골라도 돼요·" 물어보는 아이들의 눈빛이 별빛보다 더 예쁘게 반짝였다.

자신이 선택한 시를 소개하고 낭송하는 시간, 누가 낭송한 어떤 시가 가장 좋았느냐 물으니 많은 학생들이 3학년 엄혜경 학생이 낭송한 김지하의 '숲 속의 공터'를 꼽았다.

왠지 그럴 것 같아 숲 속의 작은 공터에 갔다.

거기 잃어버린 할아버지 계실 것 같아//
고즈넉하고 소슬한 자리
홀로 울고 계실 것 같아//
바람 불고/비오는 날
사랑도 꿈도 모두/나를 떠난 날

"길목이나 공원을 지나다보면 혼자 앉아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 보이거든요. 친구들과 떠들며 가다가도 그런 모습을 보면 갑자기 마음이 이상해질 때가 있어요. 늙는 것은 무척 쓸쓸하고 외로운 일인 것 같아요."

엄혜경 학생의 말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장 내밀하고 고도로 응축된 언어의 세계에 몸담았던 아이들의 마음은 부쩍 자랄 것이다.

영혼이 자라는 푸른 새벽 - 성장소설 읽기

자정이 훌쩍 넘어 새벽 1시가 가까운 시각, 가장 깊은 한밤중에 아이들은 <중학생이 읽어야 할 소설>을 집어 들었다. 이 프로그램에 붙은 부제는 '뒹굴뒹굴 책 읽기'이다. 꼬박 테이블에서 긴 시간을 보낸 아이들은 이제 각자 제일 편한 자세로 자리를 잡는다. 청소년 시절 접하면 좋을 세계의 명 단편들이 실려 있는 더없이 멋진 책이지만, 평소라면 곤히 잠잘 시간에 과연 이 책을 몇 명이나 끝까지 읽어낼까 싶다.

하지만 두어 시간이 지난 새벽 3시경 잠든 아이들은 고작 3명, 나머지 학생들은 오히려 밤이 깊어질수록 눈동자에서 빛이 나는 것 같다.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어보니 외국에서도 아이들이 공부에 시달리는 것 우리랑 똑같네요. 중압감에 시달리다 결국 삶을 버리는 것도.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었을 것 같은데요." 2학년 김민영 학생의 제법 어른스러운 말이었다.
소설은, 그 중에서도 성장소설은 아이들에게 또래의 갈등 상황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치유케 하는 힘을 준다. 아이들은 동터 오는 푸른 새벽에 그러한 독서의 이치를 터득하고 있었다.

생명력으로 충만한 아침 - 생명 존중 의식과 진취적 정신 갖기


이제 완연히 밝아온 아침, 최재천의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와 한비야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에 실린 수필 2편씩을 읽었다. 동물행동학자인 최재천의 책은 에세이식으로 쓴 곤충이야기라 재미에 학습의 실용성을 더했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오지 여행가이자 유엔자문위원인 한비야는 청소년 뿐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가슴을 뛰게 하는 장본인이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중 '독수리도 기는 법부터 배운다' '누구에게나 패자부활전은 있다'를 읽으며, 아프리카 지역에서 구호 활동을 벌이는 지은이의 모습과 어려운 처지의 아이들 모습에서, 자신의 생활을 다시 한 번 성찰하고 세계로 시야를 넓혀 이웃의 개념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독서로 한 여름 밤의 더위를 물리친 아이들은 학교에서 준비한 푸짐한 상을 받았다. 12명이 밤샘상을 받고 독서 퀴즈로 8명이 상을 받았다. 낭송상은 각자 고른 시에 우열을 매길 수 없고, 저마다 자신의 음색으로 잘 전달했기에 모두 상을 받았다. 부상은 도서상품권이었다.

아이들은 남은 방학 동안 마저 읽어올 최재천과 한비야의 책을 들고 도서관을 나섰다. 책과 함께 밤을 지샌 아이들의 얼굴에 어른거리는 아침 햇살이 영롱했다.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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