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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9.02.12 16:31:54
  • 최종수정2019.02.12 18:11:04
[충북일보] 1592년 임진왜란과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조선을 구한 이순신 장군.

이순신이 경흥부 소속 조산보 만호로 봉직했던 선조 20년(1587년) 녹둔도 전투가 벌어졌다. 당시 조선군 11명이 죽고 160여 명이 포로로 잡혀가면서 이순신은 패장이 됐다.

이순신은 이 일로 백의종군(白衣從軍)의 길을 걸었다. 4개월 뒤인 선조 21년(1588년) 1월 일명 '시전부락 전투'로 불리는 여진족 토벌작전에서 추장을 생포하는 공을 세우고 백의종군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북·러의 경계 녹둔도

녹둔도는 함경북도 선봉군 조산리에서 약 4㎞ 거리에 있는 섬이었다. 조선 초기 4군6진 정책의 일환으로 1437년(세종) 김종서가 개척했다. 고려말 이성계의 동북면보다 훨씬 더 북쪽으로 넓혀진 우리의 영토였다.

둘레 8㎞의 녹둔도는 1800년대 이후 두만강 상류의 모래가 유속에 밀려 내려와 퇴적해 육지와 연결된 곳으로 알려진다. 1990년 무렵 100세대가 거주하면서 벼·조·옥수수·보리 등을 재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녹둔도는 철종 11년(1860년) 청나라와 러시아의 베이징조약(北京條約) 체결로 러시아 영토가 됐다. 이후 고종 26년(1889년) 청나라 측에 반환을 요구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리고 1984년 11월 북한과 소련 당국자 간 평양회담에서 이 문제가 거론됐지만, 해결되지 못했다. 1990년 서울 주재 러시아 공사에게 섬의 반환을 요구했지만, 이 역시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녹둔도가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8년 북·러 합작법인인 라선콘트랜스(RasonConTrans)가 추진한 나진·하산 간 철도 연계, 항만 및 터미널 건설 프로젝트다.

이후 박근혜 정부 시절 나진·하산 프로젝트가 국가적 담론으로 부상했다. 이 프로젝트는 시베리아 광산에서 채굴된 석탄을 철도로 나진항까지 수송하고, 터미널에서 수송선을 통해 제3국으로 보내는 내용이다.

2014년 사업을 시작했을 때 한국도 참가했다. 자원의 도착지는 포항제철소와 화력발전소 등이었다. 그러나 대북압박 기조와 맞물려 한국 측은 2016년 철수했다.

지난해 4월 27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이후 문재인 정부는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재가동하기로 협의했다. 이를 위해 송영길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장이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하기도 했다.

나진·하산의 지정학적 위치를 따져보면 개성공단 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역사적 가치 역시 비교대상이 아닐 만큼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던져준다.

우선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H자축 신경제지도에서 러시아 하산지역은 꼭짓점이 될 수 있다. 이시종 충북지사의 강호축 개발 역시 러시아 하산지역은 매우 중요하다.

하산에서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신(新) 실크레일'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반면,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조기에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나진·하산 프로젝트

나진·하산은 남북만 참여하는 개성공단에 비해 남북과 중·러, 나아가 미·일 등 한반도 6자국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지정학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통일부는 최근 이순신 장군의 두만강 유적을 조사하기 위한 남·북·러 공동용역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럴 경우 녹둔도는 남북은 물론,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장소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 하산시의 일부인 녹둔도가 나진·하산 경협의 산물이 철도와 함께 항구를 통해 태평양으로 운반될 수도 있다.

강호대륙의 원대한 꿈을 꾸고 있는 충청북도는 녹둔도 연구·개발에 동참해야 한다. 동해안축 남북 철도와 함께 중·장기적으로는 항공교통의 요충지로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432년 전, 이순신 장군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녹둔도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교두보로 삼아야 한다. 이는 조선시대 율곡 이이의 '10만 양병설'에 버금가는 역사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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