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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08.09.09 10:41:5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 제례의 유래와 변천

제사의 근원은 먼 옛날에는 천재지변이나 맹수, 질병 등의 재난을 막기 위한 수단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러나 근세에 이르러서는 유교사상으로 조상에 대한 존경과 효도의 표시로 변하게 되어 가정마다 제사를 드리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수백 년 동안 4대봉사(四代奉祀)로 종손(宗孫)이 조상의 제사를 지내왔고, 이것이 예의의 나라라 불리어 온 우리 민족의 자랑이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조에 이르러서부터는 유교, 불교 등의 종교와 토속신앙 등의 영향으로 제례가 복잡다단하게 되어 지방마다 학파마다 집안마다 다른 의식을 따름으로 더욱더 복잡해지고 형식에 얽매이는 경우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제사를 올리는 본뜻은 사라지고 형식이나 절차문제로 서로 다투는 경우도 많았다. 오죽하면 “남의 제사에 감 놔라 대추 놔라”라는 속담이 생겼겠는가. 근대에 와서는 형식도 많이 간소화 되고 제사의 종류도 기제(忌祭),묘제(墓祭),절사(節祀)로 압축되었다. 4대봉사도 이젠 조부모와 부모의 2대봉사만 올리는 경향이 많은 것은 권장할만한 일이라 생각된다.

◇전통제례의 종류와 문제점

전통제례에는 기제(忌祭),차례(茶禮),사시제(四時祭),묘제(墓祭),이제(爾祭),사당(祠堂),등이 있고 필요에 따라 지내는 수많은 종류의 제사가 있다. 산신제 기우제 당산제 등 그 이름을 다 헤아릴 수가 없다. 제사의 의식은 주로 <주자가례>,<사례편람>등에 따르고 있는데 이는 오래전 옛날의 사상이나 이념에 근거한 것이므로, 현대에서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은 거의 미신에 가까울 정도로 버려야할 부분이 많다고 여겨진다.

일일이 다 짚어 말하기가 어려워 간단히 한두 가지만 언급 한다면, 제삿날은 반드시 음력을 쓴다든가, 제사지내는 시간은 꼭 한밤중이라야 한다든가, 제물은 무엇 무엇을 올려야하고 차림순서와 요령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등의 제약은 그 근거도 희박하고 그럴 필요도 없는 것들이 많다.

기제의 경우 고인의 작고한 날을 기준으로 만 일 년 마다 지낸다는 원칙이지만, 양력을 쓰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에 비추어보면 만 일 년이 아니라 음력은 일 년이 355일 정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음력으로 제삿날을 쓴다면 결국 약 19년 만에 한번 꼴로 제 날짜에 가까운 제사를 지내는 꼴이 된다. 뿐만 아니라 계절을 무시한 제물도 비위생적일 경우가 많고, 제사지내는 시간도 집안이 모여 살던 농경시대에는 무리가 없지만 현대인들의 생활에는 불편한 점이 많다.

◇ 전통제례의 개선과 실례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제사의 시초는 천재지변이나 사고의 예방을 위하여 지내게 되었으나 차츰 기복과 충효라는 이름으로 정권유지의 도구로도 사용되었음을 역사는 증명한다. 그러나 이제는 제사를 지내는 목적과 시행절차 형식 등을 현세에 맞게 개선할 필요가 절실하다. 조상의 영령이 배 곺을가 두려워 많은 음식을 차리고 복을 달라고 빈다면 그건 큰 오해이다. 어떤 영령도 음식을 먹지 않으며 복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조상의 영령이 음식을 먹고 싶으면 굳이 일 년이나 기다리다가 자식 집을 찾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무 때나 뷔페식당에 가서 먹기만 하면 된다. 만약 복을 지어 내릴 수 있다면 어떤 조상이 자손에게 복을 듬뿍 주지 않겠는가? 제사를 지내는 목적이 조상 대접이나 기복이여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조상의 영령들이 있어 그들에게 간절한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후손들의 건강과 화합과 번창일 것이다. 자손들이 부모나 조상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효도는 조상들이 바라는 바를 충실히 실천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기위해서는 제례는 당장 현실에 맞게 고쳐져야 할 것이다.

필자는 약 16~17년 전부터 기제는 물론 근년에는 시제 까지도 집안의 이해를 얻어 많이 개선했다. 그 실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제삿날은 양력으로 지내며 휴일이나 가족원이 편리한 날로 정해 지낸다. 대략 제삿날이 드는 주일의 토요일이나 일요일 또는 공휴일로 잡아 모든 구성원이 생활에 지장을 받지 않도록 한다. 제사를 지내는 목적은 조상에 대한 예를 올리고 가족 간의 화합을 도모하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꼭 그 날짜를 지킬 필요는 없다. 전통제례에서도 시제와 사시제는 날을 따로 잡아 지낸다. 저의 집안에서는 시제는 음력 10월이 되는 첫째 일요일 오전 11시를 원칙으로 하고 경우에 따라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2. 제사지내는 시간은 대략 점심때를 원칙으로 하고 형편에 따라 저녁시간이나 편리한 시간으로 한다. 전통제례에서는 자(子)시(밤 11시반~새벽 1시반사이)에 지내야 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는 그 날의 가장 첫 시간이고 귀신은 어둡고 조용한 것을 좋아한다는 속설에서 비롯된 것인바, 이제는 귀신 위주가 아닌 산 사람 위주이므로 가장 빛나는 한낮이나 구성원이 좋은 시간을 선택한다는 이유이다.

3. 제물은 맑고 깨끗한 물 한 그릇으로 만 하고 나머지는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한다. 대개 제철의 그 지방에서 생산된 음식재료를 쓴다. 옛날식의 탕이나 건어물 등 비 위생적이거나 실속 없이 비싼 것들은 쓰지 않는다. 촛불이나 제기를 쓰지 않으며 기타 불편한 일체의 의식은 행하지 않는다.

4. 지방이나 신주 사진 등에다 대고 절하지 않는다. 조상의 영령이 어찌 신주나 지방이나 사진 속에 있겠는가? 조상의 영령은 자손들의 몸에 그대로 유전되어 있을 뿐 사진이나 신주나 묘지 속에 들어있지 않다. 그러므로 예는 온 가족이 빙 둘러서서 서로에게 절한다. 가족들의 뼈와 피와 살과 정신 속에 오늘 제사모시는 조상님의 육체와 영혼과 뜻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깨달아 행하는 것이 아니라 100여 년 전 동학의 2세 교조이신 해월 최시형(1827~1898)선생의 향아설위(向我設位)에서 유래한 것임을 밝혀둔다. “향아설위”란 “벽에다 대고 절하지 말고 나에게다 절하라”는 뜻이다.
5. 의례는 개식, 약력소개, 심고(기도), 제문낭독, 예배, 심고, 청수분작, 식사 등으로 진행되며 꼭 일정한 형식을 강요하지 않고 형편에 따라 가감할 수 있다.

6. 전통제례에서는 종가나 장손이 지냈으나 새 제례에서는 큰아들 작은아들은 물론 딸도 희망에 따라 돌려가며 지낸다. 집이 좁거나 멀어 불편하면 식당이나 야외 등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정성들이고 경건하며 화목하고 건전하다면 그 어떤 제약도 용납하지 않는다.

“뿌리 없는 나무가 없고 조상 없는 자손이 있을 수 없다”는 옛사람들의 교훈에 따라, 나를 낳고 길러주신 부모와 조상에 대하여 정성들이고 예를 올리는 것은 자손의 당연한 도리이다. 그러나 그것이 시대정신이나 그 시대에 맞지 않는다면 하루속히 시대와 생활에 맞게 고쳐져야 할 것이다. 옛것을 지키고 효도를 한답시고 무덤 옆에 여막을 짓고 삼년상을 고집한다거나 종가집이라고 일 년 내내 제사만 지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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