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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산성 동쪽의 신천영, 왜 반란에 가담했나

1728년 무신란

  • 웹출고시간2015.03.17 14:00:08
  • 최종수정2015.03.17 14:00:08

조혁연 대기자

1728년(영조 4) 무신란을 가리켜 청주지역에서는 '신천영의 난'이라고도 부른다. 신천영(申天永·?-1728)의 당시 역할과 비중이 크다는 의미다. 무신란이 일어나기 전 이인좌와 신천영이 내통했거나 사전 공모했는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다만 이인좌는 청주읍성과 상당산성을 점령한 후 곧바로 신천영을 가병사(假兵使), 즉 임시 충청도 병마절도사로 임명했다. "권서봉을 청주 원으로 삼고 안성에 왔고, 가병사는 신경제의 손자 ·신천영으로 정했습니다."-<영조실록 4년 3월 26일자>

고령신씨 신숙주의 후손인 신천영 가문은 연산군 무렵에 청주 상당산성 동쪽인 낭성면과 가덕면 일대로 낙향, 대과급제 24명·진사 80명을 배출한 명문 사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728년 무신년의 난에 신천영 뿐만 아니라 아버지 신은, 숙부 신필회, 동생 신석영, 신익영, 사촌 신필대 등 문중 구성원 대부분이 가담, 영조와 노론세력 타도를 외쳤다.

신천영 문중은 청주 상당산성 동쪽에 살아 '산동신씨'라고도 불렸다. 조선후기 해동지도.

무신란과 관련해 의외로 자주 거론되는 인물이 한때 남인의 거두였던 윤휴(1617- 1680)다. 그는 신천영의 5대 조부인 신식(申湜·1551-1623)의 외손자가 된다. 이는 신천영 문중이 선대로부터 남인의 당색을 지녔음을 의미한다.

숙종대 청주지역의 남인세력들은 사사건건 노론의 영수 송시열과 반복하고 갈등했다. 이는 숙종대 발생했던 경신, 기사, 갑술환국 등 중앙 정치사건이 청주지역에도 영향을 미친 결과였다.

신천영의 할아버지인 신경제(申慶濟·1644-?)는 남인과 노론이 권력을 둘러싸고 엎치락 뒤치락하는 과정에서 같은 청주목이지만 당색이 달랐던 노론의 영수 송시열을 '악하고 부도덕한 난역자'라는 맹비난했다.

우암의 제자들도 이때 가슴에 못이 밖혔는지 송자대전에 '휴의 당 신경제가 제일 먼저 흉소(凶疏)를 올려 선생의 관작을 추탈하기를 청하였다'고 기록했다. 인용문의 휴는 윤휴를 일컫는다.

영조의 등극으로 노론이 집권하자 김택현을 비롯한 전라도 유생 1천여명이 우암을 헐뜯은 죄를 물으라는 상소문을 올렸고, 여기에는 신천영의 조부 신경제도 포함돼 있었다.

'전라도 유생 김택현(金宅賢) 등 1천여 인이 상소하여 청하기를, (…) 선정신 송시열을 무함하여 헐뜯은 죄를 바로잡으소서." 하고, 또 말하기를, "신경제는 바로 기사년의 흉얼로 임인년의 흉소를 문득 하나의 급서로 하였는데, 거기에 말하기를, '송시열은 불만스런 뜻으로 앞에서 창도하여 화기를 빚어내다가 신축년에 이르러 탄로된 것이다.'라고 한 것은 선정을 악역부도의 죄로 몰아넣었습니다.'-<영조실록 1년 2월 8일자>

신경제는 관직박탈과 함께 유배를 가야했고, 이때 신천영 가문은 과거시험을 볼 수 없는 정거(停擧) 처분을 당한 것으로 보여진다. 무신란 때 신천영 외에 부친, 숙부, 동생, 사촌 등 청주 상당산성 동쪽의 산동신씨 구성원 상당수가 참여한 것은 이같은 좌절감 때문이었다.

당시 노론계 사람들은 "노론이 되지 않으면 남쪽 越이나 북쪽 湖로 달아나는 밖에 방책이 없다"고 절망할 때였다. 신천영은 상당산성에서 목이 베어져 서울로 보내졌다. 또 《추안급국안》이라는 사료를 보면 아내 강차(姜次)와 큰 아들 신항(15세), 딸 신지애, 아들 신선이(5세), 신관이(4세)는 모두 함경도 경원부 관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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