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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숨은 산책길 - 청주 금천동 산책로

아파트 사이로 난 사유(思惟)의 산책길

  • 웹출고시간2013.12.08 18:08:52
  • 최종수정2013.12.08 18:08:52

해가 막 질 무렵 초겨울 도심의 거리는 어쩐지 스산하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잔뜩 몸을 움츠리고 저마다의 집으로 종종걸음을 친다. 하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사람들이 어깨를 펴고 걷는다. 깊은 산속의 울창함과는 거리가 먼, 아파트 틈새에 만들어진 산책길이지만 사람들은 걸으며 달콤한 공기를 흠향한다.


지난 2009년 칙칙하던 금천동 거리가 화사하게 바뀌었다. 주민들이 마음을 모아 거리에 꽃을 그렸고, 아파트 사이에 난 길을 산책길로 예쁘게 단장했다. 금천동 롯데리아 사거리에서 부영아파트 9단지 입구까지 장자로 인도 바닥 250m에 꽃 그림을 그려 넣었다. 당시 금천동 주민센터는 사회적 취약계층에 일자리를, 주민들에게는 즐거움을 제공하기 위해 희망근로 사업 참여자 20명에게 페인트로 채색하는 일을 맡겼다.


밑그림은 주민센터와 자매결연한 충북 구상작가회 회원들이 그렸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주민들 통행이 많은 금천고 입구에서 장자마을 5단지 구간의 차 없는 거리 800m를 예술 작품들로 가득 채우는 '테마의 거리'로 조성했다. 양쪽 아파트 벽면에는 그림이 들어간 타일과 대형 인물초상화, 바다풍경으로 장식했다.


타일 벽화는 금천동내 초등학생 500명과 청주시와 자매결연한 목포시 학생 30명이 그린 그림을 타일에 새겨 넣어 벽에 부착했다. 한편 약 50m 정도의 '예술의 거리' 벽면에는 '한국을 빛낸 사람들'을 주제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피겨의 김연아, 수영의 박태환, 역도의 장미란, 영화배우 배용준의 초상화를 그려 넣었다. 2009년 당시 금천동장은 "주민들 스스로 앞장서 직접 그림을 그리는 등 주민들의 화합과 노력으로 일구어낸 거리"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4년이 지난, 현재의 모습은 과거에 비해 몇 가지 아쉬운 부분이 많다. 지속적인 관리가 안 된 탓이다. 산책길 입구에 세워놓은 구조물에는 광고용지가 제멋대로 붙어 있고, 안내 팻말의 글씨는 군데군데 떨어져 우스꽝스런 형태로 놓여 있다. 때로는 사람들이 다니는 산책길에 느닷없이 오토바이가 나타나 요란한 굉음을 내고 달아나기도 한다. 금천동에 사는 문영진(78)씨는 "처음 시작만 요란했지 제대로 관리가 안 되고 있다. 세월이 흘러 나무가 무성해지면 그나마 다닐만한 길로 될 것이다. 청주시에서 좀 더 신경 써서 관리해주면 더 좋은 산책길이 될 텐데…."라며 아쉬워한다.

금천동주민센터 송재천 동장은 "금천동 예술의 거리로 이어지는 산책길은 동네주민들이 즐겨 찾는 장소다. 시의원과 협력해 예산을 세워 2014년 봄부터 본격적으로 정비를 할 계"이라며 "예전처럼 밝고 쾌적한 산책길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예산이 편성되면 관련 시설물을 점검해 새롭게 꾸밀 예정"이라고 말한다.

금천동 광장 입구부터 시작된 산책길은 예술의 거리까지 약 200m다. 청(靑)과 홍(紅)이 어우러진 형상의 산책로 입구의 문(門)은 도심의 일주문이다. 사찰로 들어서는 산문 가운데 첫 번째 문이 일주문(一柱門)이다. 이는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금천동 산책길로 들어서는 문은 색다르게 두 가지 형상으로 된 하나의 문(門)을 통과해야 한다. 세상에서 복잡해진 두 마음을, 걸으면서 하나의 마음으로 다스리고 오라는 의미였을까. 걷다보면 그저 마음이 편안해진다.

맞은편에 유모차를 몰고 들어오는 젊은 일가족, 팝콘 같은 웃음이 터진다. 가지들은 잎을 대부분 떨구고 빈 몸으로 바람을 맞는다. 누가 그랬던가. 꽃의 시절은 짧고, 잎의 시절은 길다고.


하얀 아파트 건물은 낙엽송처럼 하늘로 쭉쭉 솟아 있고, 그 틈새에 난 샛길은 아늑한 공간이다. 바람도 막고, 때론 햇살도 걸러줘 온전히 평온한 길이다. 붉은 색의 바닥은 딱딱하지만, 걷기에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 걷기가 지루할 즈음 만나는 그림들은 한번쯤 생각하게 만든다. 벽을 등진 채, 독서를 하고 있는 아이들 뒤로 공룡이 쑥 튀어나와 함께 책을 보는 상상력의 그림은 지나는 이들에게 슬쩍 미소를 짓게 만든다. 아파트 담벼락에 그려 넣은 바다그림은 어떤가. 바다를 볼 수 없는 동네에서 시리도록 푸른 동해의 바다가 벽면에 가득하니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다.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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