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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수

수필가, 딩아돌하문예원 이사장

지난 봄 멀리서 날아 든 편지 한통을 받고 참으로 마음이 홀가분했다.. 오래 전 결혼식 주례를 서 주었던 k군이 지구의 남쪽 끝자락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서 보내온 편지였다.

안도의 한숨을 내 쉬며 읽어 내려간 편지에는 그동안 어려움이 많아 우여곡절을 겪었던 저간의 사연과 "이제 자리를 잡았으니 내외분이 꼭 한 번 오시라"는 초청의 말이 적혀 있었다. 함께 읽던 아내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폈다.

까맣게 잊고 살아 온 아름다운 추억 한 자락, 수필의 소재로까지 삼았던 k군과의 주례에 얽힌 사연은 이러하다.

10년 전 k군은 내가 즐겨 찾던 어느 음식점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면 '당신은 유명인 누구와 닮았다'며 호의를 표시하는 나의 화법이 또 하나의 인연을 만들었다. 청년의 넉넉한 몸매와 여유만만한 표정이 믿음직스러워 서부 영화의 주인공 '존 웨인'이란 닉네임을 붙여 주고 다독였더니 어느 날 불쑥 찾아와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는 것이었다.

나는 주말 등산에 심취하여 주례를 잘 서지 않던 터라 적당히 거절을 했으나 존 웨인은 물러서지 않았다. 사정을 들어 보니 딱하기도 했다. 고향 광주를 떠나와 잠시 선배를 도와주고 있던 처지여서 딱히 부탁드릴만한 분이 없다는 거였다. 거기다 내 수필집을 읽고 감명을 받았다고까지 하는 바람에 약속을 하고 말았다.

허지만 의례적이고 판에 박힌 주례사는 하지 않는 나로서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생각다 못해 녀석의 닉네임을 붙여주던 일에서부터 주례를 맡게 된 경위를 솔직히 털어놓고, 도전과 개척정신을 일깨워 주기로 했다.

예상과 달리 결혼직장에 하객들이 넘쳐났다. 외톨이란 혼자 청주로 왔다는 뜻이었다. 나는 준비했던 대로 신랑과의 인연을 털어놓고 "서부영화에서 보여주던 그 불굴의 투지와 용기로 넓은 세상에 도전장을 던지는 진짜 존 웨인 같은 사람이 되어 달라."는 당부를 했다.

헌데 이 말이 뜻밖에도 신랑의 의표를 찔러 어떤 결심을 굳히는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한 달쯤 뒤 우리 집을 찾아온 신랑 신부는 큰 절을 하고 나더니 느닷없이 남아프리카로 떠나게 되었다며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놀라는 표정을 짓자

"주례님 가르침대로 새로운 세계에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잘못되면 어르신이 책임 져 주셔야죠·"

알고 보니 그곳에 먼저 정착한 집안 형으로부터 '사진관을 함께 해보자'는 제의를 받고 망설이다가 신혼여행 삼아 직접 현지를 다녀와서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곳에서는 사진관이 잘 된다는 얘기였다. 나는 손을 꼭 잡고 장도를 축원해 주었다.

"잘 했어. 좋은 소식 기다릴게."

그들은 '자리를 잡으면 연락드리겠다.'는 말을 남기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 후 존 웨인으로 부터 아무런 소식도 전해지지 않았다. 머나먼 이국에서의 도전과 개척이 어찌 쉬운 일인가. 나의 주례사 한마디가 그들을 고난의 길로 이끈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한동안 마음을 어둡게 했으나 세월이 마구 흐르면서 기억 저 편으로 잊혀져갔다.

실로 10년 만에야 전해진 낭보, 가슴이 탁 트이는 듯했다. 무엇보다도 잠시 스쳤던 인연을 오랜 세월 잊지 않고 소식을 전해 왔다는 그 사실이 고맙기 그지없었다.

초청의 말은 인사치레라도 좋았다. 나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회신을 보내면서 건강상 그 곳에 갈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화답했다. 허지만 그 편지에 실려 내 마음은 희망봉이 있는 지구의 남쪽 끝자락으로 훨훨 날아가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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