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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맛, 스토리텔링 식탁에 오르다 - 도토리 관련 식품

고려 충숙왕 "내가 적접 맛보겠다" 처음 등장
세종은 줍는 것 뿐만 아니라 나무심기도 권장
과거 흉년구제는 도토리뿐…최고의 구황식품
구황식품 넘어 지금은 별미+건강식으로 각광

  • 웹출고시간2013.07.08 18:29:1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도토리묵밥과 도토리전.

ⓒ 사진 제공=충북도농업기술원
도토리묵밥과 도토리전. 도토리와 관련된 식품은 지금은 별미내지 다이어트식으로 많이 찾지만 전통시대에는 달랐다. 도토리는 우리나라 전통시대 때 굶주림을 면하게 하는 대표적인 구황식품이었다.

문헌상 도토리가 구황식품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14세기 후반의 고려 충선왕 때이다. 충선왕은 흉년이 들자 반찬수를 줄이고 손수 도토리 맛을 봤다.

'이달에 왕이 흉년에 백성이 굶주림으로 반찬을 줄이고 내주(內廚)에 명령하여 도토리를 바치게 하여 맛보았다.(是月 王以歲凶民飢 減膳 命內廚進橡實 嘗之)'-<고려사 신우 5년 1월 을해조>

고려 후기를 산 인물로 윤여형(尹汝衡·?~?)이 있다. 그는 벼슬이 높지 않았으나 고려후기의 부조리한 사회상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의 시 '橡栗歌'(상율가)에 그같은 일면이 잘 드러나 있다. '상율'은 직역하면 '상수리 밤'이라는 뜻으로, 도토리를 지칭한다.

'상율가'는 서거정이 지는 동문선에 실려 있다.

'촌집 늙은이 마른 밥 싸 가지고(村家父老裏O糧) / 새벽에 수탉 소리 듣고 도톨밤 주으러 가네(曉起O取雄鷄聲) /…/ 온종일 주워도 광주리에 차지 않는데(崇朝O拾不盈筐) / 두 다리는 동여놓은 듯 주린 창자 쪼르륵(兩股束縛飢腸鳴) / 날 차고 해 저물어 빈 골짜기에 자네(天寒日暮宿空谷)'-<동문선 제 7권>

칠언고시 형식인 이 한시에는 '살을 긁고 뼈를 쳐도 아무 것도 없으니(剝膚槌髓掃地空) / 국가의 조세는 어떻게 낼꼬(官家租稅奚由出) / 노약만 남아서 거꾸로 달린 종처럼 빈집을 지키누나(老弱獨守懸磬室) /… / 차마 몸을 시궁창에 박고 죽을 수 없어(未忍將身轉溝壑) / 마을을 비우고 산에 올라 도토리며 밤이며 줍는다(空巷登山拾橡栗)'라는 내용이 이어진다.

도토리는 조선시대로 오면서 구황식품의 위치가 더욱 강화됐다. 세종실록에 "구황(救荒)하는 물건으로는 도토리 첫번째이고, 소나무 껍질이 그 다음입니다"(9년 2월 27일자)라는 표현이 보인다.

조선 조정은 도토리를 줍는 것 뿐만 아니라 도토리나무 심기도 적극 권장했다. 그 모습은 마치 지금의 식목일을 연상케 하고 있다. 세종 때 충청도 순무사 안순(安純)이 아뢰는 말이다.

'흉년을 구제하는 물건으로는 도토리가 제일이오니 (…) 도토리나무가 없는 곳은 심어서 키우게 하옵소서.'-<세종실록>

조선 명종 때 당시 단양군수 황준량(黃俊良·1517~1563)이 올린 '민폐 10조 상소문'은 진정한 목민관의 자세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명문장으로도 유명하다.

단양은 산이 많은 지역으로 예나 지금이나 식량수급이 원할한 곳은 아니다. 황준량도 그 점을 지적하면서 역시 구황식품 도토리를 언급했다.

'신이 삼가 살피건대, 단양 고을은(…) 삼면이 산으로 막혀 있고 한쪽은 큰 강이 흐르고 있는데 (…) 전지는 본래 척박해서 수재와 한재가 제일 먼저 들기 때문에 (…) 풍년이 들어도 반쯤은 콩을 먹어야 하는 실정이고 흉년이 들면 도토리를 주워모아야 연명할 수가 있습니다.'-<명종실록>

전통시대가 막을 내리고 20세기가 도래한 시점에도 구황식품으로서의 도토리 위상은 변하지 않았다. 일제가 한반도에서 수탈경제 정책을 펴면서 오히려 심화된 측면이 있다.

'요즈음 충북 진천군 일대에는 도토리따러 산으로 들어간 부녀자가 매일 평균 오백명 내지 이천명의 다수에 달한다는데 도토리를 따러 다니는 것은 의례 있는 일이나 금년같이 수효가 많은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고 한다.'-<동아일보 1930년 10월 10일자>

대중화된 도토리는 충북도내 고개문화에도 더러 등장했다. 대표적인 것이 박달도령과 금봉낭자의 사랑이 노랫말로 등장하는 제천의 '울고 넘는 박달재'다.

작사자 반야월(1917~2012)은 박달재 전설을 바탕으로 해서 가수 박재홍이 1948년에 처음으로 부른 '울고 넘는 박달재'의 가사 일부를 다음과 같이 적었다.

'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가는 님아 / 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가소 / 도토리 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 / 한사코 우는 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역시 금봉낭자가 떠나는 님의 허리춤에 달아준 것은 도토리묵이었다. 이 노랫말은 반야월씨가 악극단 지방순회 공연 중 충주에서 제천으로 가는 길에 농부 내외인 듯한 남녀의 이별 장면을 목격하고 작사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상에서 보듯 도토리과 관련된 음식은 구황식품 이미지를 강하게 지녀왔다. 그러나 90년대들어 이같은 이미지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도토리가 떫은 맛을 내는 것은 아코닉산이라는 특수성분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이 아코닉산이 인체내 중금속 해독에 커다란 효과가 있음을 밝혀냈다.

나아가 도토리는 특유의 저칼로리 열량 때문에 근래에는 자연·다이어트 식품으로 애용되고 있다. 이것이 이른바 웰빙바람과 합세했다. 그 결과, 도내 도시 지역에서도 도토리묵과 관련된 음식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자동차 문화가 발달하면서 시내 중심가보다는 근교 도로변에 많이 입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도토리 관련 식품이 다이어트+건강+별미식으로 거듭나고 있다.

/ 조혁연 대기자

도움말: 충북도 농업기술원, 충북도 문화재계, 진천문화원, 김운주 충북대 명예교수.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도토리묵밥 만드는 법

①. 도토리묵을 굵게 채 썬다.(7x1 x1㎝).

②. 김치는 국물을 꼭 짠 후 송송 썰어(0.5㎝) 참기름에 볶아 놓고 김을 구워 부순다.

③. 달걀은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하여 황백지단을 부쳐 채 썬다.

④. 채 썬 묵을 그릇에 담고 양념장으로 간을 한 후 육수를 부은 다음 볶은 김치, 황백지단, 통깨, 김가루를 고명으로 얹는다.

정보제공= 충북도농업기술원

청원남일 효자촌묵집 최천규 씨

"묵맛이 한결같은 것은 식재료 때문"
점은 맛+가격+분위기 3박자 갖춰야


청원군 남일면 효자촌묵집은 맛이 정갈하면서 한결같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주인 최천규(63·사진) 씨는 이곳에서 묵집을 경영한지 올해로 꼭 20년이 됐다.

그 동안 최씨는 화재를 경험하는 등 어려움도 적지 않았지만 지금은 아들 동호(33) 씨에게 가업을 전수 중에 있다.

- 20년 전이면 40이 넘은 나이다. 왜 음식점 운영을 생각하게 됐나.

"이곳에 친구들과 공동으로 땅을 샀었다. 그런데 땅을 그냥 놔두다 보니까 세금이 무척 많이 나왔다. 궁여지책으로 음식점을 시작하게 됐다."

- 많은 음식점 중에 왜 하필 묵밥집이었나.

"대전 묵밥집은 지금도 유명하다. 청주사람들이 집앞 국도를 따라 대전 묵집으로 단체로 오가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때 대전가는 사람을 중간에서 잡자는 마음으로 묵밥집을 시작했다. 어머니가 묵밥집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예비지식은 있었다."

- 중간에 식당에 화재가 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어려움은 없었나.

"많이 어려웠다. 다른 것을 해볼까도 생각하다 다시 묵집을 시작했다. 얼마 후 웰빙바람이 불면서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 음식업을 창업을 많이 하기도 하지만 성공 확률은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식당으로 성공하려면 어떤 것을 갖춰야 한다고 보나.

"맛, 가격, 분위기가 3박자로 맞아야 한다. 맛과 가격이 적정하면 손님들이 많이 올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 특정 음식에는 특정 분위기가 있다. 맛도 분위기와 궁합을 이뤄야 한다."

- 맛이 한결같은 것으로 소문이 나 있다. 비결이 있나.

"식재료를 쓰는데 늘 신경을 쓰고 있다. 좀 비싸더라도 가급적 신선한 것을 우선으로 한다."

- 아들에게 맛을 대물림하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나.

"3년째인데 조금은 더 배워야 한다. 그건 그렇고 내가 실수한 면이 있다. 식당일을 해서 그런지 아들이 장가를 가지 못하고 있다. 좋은 여자있으면 소개 좀 해 달라."

/ 조혁연 대기자

도토리의 어원은 '멧돼지가 먹는 밤'

도토리컷

돝애밤→도톨암→도톨이 순으로 변화

언뜻보면 도토리의 어원은 형용사 '도톨도톨'에서 온 것으로 보여진다. '도톨도톨'은 물체 겉면이 여러 군데에 걸쳐 조금씩 들어가거나 솟아나면서 매끈하지 않는 모습을 나타날 때 쓰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실제 도토리 밑면인 깍정이는 도톨도톨한 모양을 하고 있다. 한때 유행한 도토리컷 헤어스타일(사진)이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도토리의 어원은 보다 재미난 사연을 지니고 있다. 16세기에 발간된 '훈몽자회'를 들춰볼 필요가 있다. 훈몽자회는 지금의 도토리를 '돝애밤'으로 적었다. 아와 관련, 어문학자들은 맨끝말 '밤'을 과일 '밤'(栗)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가운뎃말 '애'는 접속어 기능을 하고 있다.

문제는 앞말 '돝'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의외지만 '돼지'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돌고래의 어원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의 '돌'은 '돝'이 변한 말로 돼지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돌고래는 '돼지고래'라는 뜻이 됨을 알 수 있다. 그래도 잘 이해가 안되면 돌고래의 한자표현을 생각하면 된다. 국어사전을 펴면 '海豚'(해돈)이라는 단어를 만날 수 있다. '바다돼지'라는 뜻으로, 여기에도 돼지의 의미가 들어가 있다.

바로 도토리의 본랫말인 '돝애밤'은 '돼지가 먹는 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물론 산에는 집돼지가 아닌, 멧돼지가 살고 있다. 따라서 더 정확히는 '멧돼지가 먹는 밤'이라는 뜻이다. 학자들은 '돝애밤'이 '도톨암', '도톨이'를 거쳐 지금의 '도토리'가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도토리의 사촌이 '상수리'다. 둘은 비슷한 모양새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우리 지역에서는 도토리는 보다 둥글고, 상수리는 보다 길쭉한 것으로 구분하고 있다.

앞서 서술했듯이 도토리는 순우리말이다. 상수리는 약간 다르다. 고려 의학서인 '향약구급방'은 상수리 나무의 열매를 한자 '橡實'(상실)로 적었다. 전자는 '상수리나무 橡' 자이고, 후자는 '열매 實' 자이다.

어문학자들은 이 '상실'에 접미사 '이' 가 붙어, '상실이'→'상시리'를 거쳐 지금의 '상수리'가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밖에 같은 참나류인 떡갈나무는 떡의 보관 방법과 관련돼 생겨난 말이다.

옛날에는 떡을 보관할 때 낙엽을 까는 경우가 많았다. 바로 떡갈나무는 '떡을 보관할 때 까는 나뭇잎'에서 어원이 유래했다.

/ 조혁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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