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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10.11 14:06:38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이일(李鎰·1538∼1601)의 진영은 힘도 못쓰고 크게 무너졌다. 그러자 그는 전회에 밝힌대로 우리고장 충주로 도피했다. 선조실록은 이 부분을 '이일은 단기(單騎)로 달아나 죽음을 면하였다'라고 짧게 기술했으나 징비록에는 매우 상세히 표현돼 있다.

'이일은 말을 버리고 의복을 벗어 버린 채 머리털을 풀고 알몸뚱이로 달아났다. 문경에 도착한 그는 종이와 붓을 찾았다. 우선 자기가 패한 내력을 임금께 급히 아뢰고, 물러가서 조령을 지키려고 하였다. 그러다가 신립이 마침 충주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로 충주로 달려갔다.'

충주 탄금대 전투 장면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상주가 무너진 것은 1592년 음력 4월 24일이고 이후 왜군은 3일만에 조령, 즉 문경새재를 돌파했다. 탄금대 전투는 하루 뒤인 4월 28일 벌어졌다. 징비록은 신립이 배수진을 친 곳이 탄금대 산이 아니라 그 앞쪽의 진흙벌판이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신입은 탄금대 앞의 두 개천 사이에 진을 쳤다. 이곳은 좌우에 논이 있어 벼가 무성하게 자랐고 또 잡초도 우거져 있어 말과 사람이 달리기에는 몹시 불편한 곳이었다.'

이어 징비록은 '적들은 단월역으로부터 쳐들어왔다. 길을 나누어 진군해 오는데 그 기세란 마치 풍우가 몰려오는 것과도 같았다. 한 길은 산을 넘어 동쪽으로 오고, 한 길은 강을 끼고 내려오고 있었다. 총소리는 땅을 울리고 먼지는 하늘을 가렸다'라고 썼다.

이때 우리고장 충주 백성들도 엄청난 희생을 당했다. 의외로 징비록은 충주 백성들의 희생을 기술하지 않았으나 선조수정실록은 '충주의 사민과 관속(官屬)이 대군이 온 것을 믿고 모두 피난하지 않았으므로 다른 고을보다 심하게 죽음을 당하였다'라고 적었다.

교토 이총(귀무덤)에는 조선인 코와 귀가 12만개 가량 묻혀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임진왜란후 일본에서 출간된 '에혼 타이코기'라는 서사문학 작품은 임진왜란 충주성 전투를 매우 구체적으로 서술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충주성에 들어간 뒤 자른 (사람의) 목 3천여급을 우키타 히데이 경의 진지로 보내 승전의 전말을 나고야 성에 보고했다.'

현재 일본에는 임진왜란 조선인 귀무덤인 이총(耳塚)이 교토의 풍신수길 사당 앞에 존재하고 있고 이곳에는 조선인 약 12만개의 코와 귀가 묻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주의 패장 이일은 신립과 함께 탄금대 전투에도 참가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혼자 살아남아서 도피했다. 징비록은 이에 대해 '이일이 탄금대 동쪽 변두리로 해서 도망쳤다'라고 간단히 기술했다. 반면 선조실록은 이 부분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장사(壯士)로서 빠져나온 사람은 두서너 명에 불과했다. 이일은 사잇길을 따라 산으로 들어갔다가 왜적 두세 명을 만나, 한명을 쏘아죽여, 수급(머리)을 가지고 (남한)강을 건너서 급히 치계했다.'

치계는 달여와 보고하는 것을 일컫는다. 당시 조정은 이렇게 이일이 가져온 왜군 머리를 남대문에 내걸고, '조선군사가 이렇게 잘 싸우고 있다'는 식으로 선전했다.

그러나 선조는 탄금대 패전 이틀후인 4월 30일 비가 와 질척거리는 그믐날 밤에 한양 도성을 빠져나와 북쪽으로 도망쳤다. 실록은 전날 기사를 이렇게 썼다.

'이달 29일 저녁에 상이 충주에서 패전한 보고를 듣고 동상(東廂)에 나아가 서행(西幸)할 계획을 의결하였다.'-<선조수정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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