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논제

제시문 (가)와 제시문 (나)는 김부식(金富軾)의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실려 있는 글이다. <삼국사기>를 다시 편찬한다고 가정하고, 제시문 (가)의 사실에 대해서 제시문 (나)와 같은 성격의 글을 작성하라. (단, 아래의 조건을 만족시킬 것) (1600±100자) [2007학년도 서울대 수시 2학기]

○호동과 김부식은 같은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답을 제시하고 있다. 어떠한 가치들이 갈등하는 문제인지 딜레마의 형태로 그 문제를 정의하라.
○호동의 대응과 김부식의 논평에 드러난 양자의 가치관과 가치 실현 방법을 비교 분석하라.
○ 제시문 (나)에 대한 평가를 포함하라.



■ 제시문


(가) 여름 4월에 왕자(王子) 호동(好童)이 옥저(沃沮)에서 유람하고 있는데, 낙랑왕(樂浪王) 최리(崔理)가 길을 나섰다가 마주쳐서 물었다.
“그대의 얼굴을 보니 예사 사람이 아니오. 북국(北國) 신왕(神王)*의 아드님이시지요?”
그러고는 함께 돌아가서 자기 딸을 아내로 삼게 했다. 뒤에 호동이 귀국해서는 사람을 시켜 최리의 딸에게 몰래 전갈했다.
“만약 그대 나라의 무기고에 들어가서 고각(鼓角)을 부숴버리면 내가 혼인의 예(禮)를 갖추어 맞이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두겠소.”
예전부터 낙랑에는 적병이 올 때마다 스스로 소리를 내는 고각이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부수도록 시킨 것이다. 이에 최리의 딸이 예리한 칼을 가지고 무기고 안에 몰래 들어가 고각을 부수어 버리고 호동에게 알려주었다. 호동은 왕에게 권해 낙랑을 기습하게 했다. 최리는 고각이 울리지 않으니 대비하지 못하고 있었다. 고구려 군대가 성 아래까지 엄습해 온 다음에야 고각이 부수어진 것을 알고, 딸을 죽이고, 나와서 항복했다. (다른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 왕이 낙랑을 멸망시키고자 청혼하여 그 딸을 호동의 처로 삼아 데려 왔다가, 뒤에 낙랑에 돌아가서 고각을 부수도록 시켰다고 한다.)
같은 해 겨울 11월에 왕자 호동이 자살했다. 호동은 왕의 차비(次妃)인 갈사왕(曷思王) 손녀의 소생이다. 아주 잘 생겨서 왕이 매우 사랑하고, 그래서 이름을 호동이라 했다. 원비(元妃)는 왕이 적자(嫡子)의 자리를 빼앗아 호동을 태자로 삼을까 염려해 왕에게 참소(讒訴)했다.
“호동이 저를 예(禮)로 대하지 않으니, 왕실을 어지럽히려고 할지 모릅니다.”
왕이 말했다.
“당신은 남의 자식이라고 미워하는 것 아니오?”
원비는 왕이 자기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을 알고는, 장차 화(禍)가 자신에게 미칠까 염려해 눈물을 흘리면서 고했다.
“대왕께서는 은밀하게 조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일이 없으면 제가 죄를 받겠습니다.”
이에 대왕은 호동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장차 죄를 주려고 하였다. 어떤 사람이 호동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어찌 스스로 밝히려고 하지 않는가?”
호동이 대답했다.
“내가 밝히면 어머니의 잘못을 드러내게 되고, 그러면 대왕에게 근심을 끼치게 되니, 효도라 할 수 있겠는가?”
그러고는 칼에 엎어져 죽었다.
* 북국(北國) 신왕(神王) : 고구려 제3대 왕 대무신왕(大武神王)

(나) (나 김부식은) 논(論)하여 말한다. 이 대목에서 왕이 참언(讒言)을 믿어 죄가 없음에도 사랑하던 아들을 죽였으므로 그 어질지 못함은 논할 여지도 없다. 그러나 호동도 죄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어째서 그러한가? 자식으로서 아비의 책망을 받을 때는 마땅히 순(舜) 임금이 아버지 고수에게 하듯** 해야 한다. 작은 매는 맞되 큰 매는 달아나 아버지를 불의(不義)에 빠뜨리지 않게 해야 하는 법인데, 호동은 큰 매를 피해야 함을 미처 깨닫지 못해서 죽지 말아야 할 곳에서 죽었다. 이는 소절(小節)에 집착하다가 대의(大義)에 어둡게 된 경우라 할 수 있다.
** 순(舜) 임금이 아버지 고수에게 하듯 : 순의 아버지 고수와 계모는 순을 학대했다. 고수는 순을 매일같이 때렸는데, 순은 참고 맞다가 큰 몽둥이로 때리면 도망갔다. 그것은 큰 몽둥이에 맞아 죽으면 아버지에게 불효가 될까 해서였다고 한다.
■ 답안작성의 방향

논점에서 <삼국사기>를 다시 편찬한다고 가정하고, 제시문 (가)의 사실에 대해서 제시문 (나)와 같은 성격의 글을 작성하라는 것은 제시문 (가)의 사실에 대해서 김부식과 같은 ‘역사적 논평’을 현재의 관점에서 다시 해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①의 요구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호동과 김부식이 어떤 ‘같은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답’을 제시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먼저 제시문 (나)는 김부식이 혼자 답하는 내용이므로 따로 살필 것은 없고, 제시문 (가)에서는 호동이 답하고 있는 부분이 두 번(“만약 그대의 나라의∼그만두겠소.”, “내가 밝히면∼효도라 할 수 있겠는가?”)나온다. 그런데 김부식은 제시문 (나)의 두 번째 부분에 대해서만 논평하고 있으므로 호동과 김부식이 서로 다른 답을 제시하고 있는 같은 문제란 바로 제시문의 (가)의 “내가 밝히면∼효도라 할 수 있겠는가?”에서 찾아야 한다. 여기서 분명 호동은 효도는 효(孝)를 내세우고 있고, 이에 반해 김부식은 의(義, 不義·大義)를 내세워 호동을 비판하고 있다. 따라서 답안에서는 논제의 이해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를 양자하는 딜레마 형태로 정의하면 된다.

그 다음 ②의 요구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호동의 대응과 김부식의 논평에 드러난 양자의 가치관과 가치 실현 방법을 비교 분석하는 것인데, 김부식의 논평에는 역시 제시문 (가)의 첫 번째 부분에 대한 언급이 없으므로 그 부분에 대한 호동의 대응은 제외하고 호동이 자결하는 두 번째 부분과 관련해서만 살펴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③의 요구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왜 김부식이 제시문 (가)의 첫 번째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두 번째 부분에 이르러서는 역사적 논평을 하게 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춰 서술하면 된다. 참고로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것은 그 부분(호동이 낙랑왕 최리의 딸을 이용하여 낙랑을 멸망시키고 그 딸을 죽게 한 것)에 대해 김부식이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 예시답안

(나 아무개는) 논(論)하여 말한다. 첫 번째 대목[여름 4월에∼시켰다고 한다.]에서 호동의 잘못은 너무나 크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인물됨을 크게 사 딸까지 준 낙랑왕 최리의 신뢰를 무참히 짓밟았다. 만일 호동이 본래부터 낙랑을 치기 위해 염탐하러 간 것이라면 처음부터 최리를 죽이든가 그를 외면했어야 했다. 하지만 호동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이러한 사실을 숨겼다. 더욱 큰 잘못은 아무것도 모르는 최리의 딸을 시켜 고각을 부수도록 사주하여 공주를 무고하게 죽게 했다는 점이다. 혹자는 최리의 딸이 아무런 생각이 없이 호동의 말에 따랐음을 비난할지 모른다. 하지만 출가한 낙랑공주의 입장을 고려해 보면 낙랑공주는 당연히 남편이 될 사람의 말을 따르는 것이 순리이므로 공주를 비난할 수는 없다 할 것이다.

다음 두 번째 대목[같은 해 겨울~엎어져 죽었다.]에서도 호동의 잘못은 너무나 크다고 할 수 있다. 호동은 원비(元妃)가 자신을 참소(讒訴)함을 알고서도 단지 원비의 잘못을 드러내지 않고 아버지인 대왕에게 근심을 끼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자결하였다. 효도를 명분으로 내세워 말이다. 물론 이에 대해 김부식은 이러한 행위가 아버지를 불의에 빠뜨리게 하였기에 잘못되었다고 비판했다. 즉, “만일 부모가 자신에게 의롭지 않은 일을 강요할 때 효를 내세워 그것에 그대로 따라야만 하느냐 아니면 의롭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거부하고 부모의 잘못을 밝혀야만 하느냐” 하는 문제에서 호동은 당연히 효를 중시해야 한다고 본 반면에 김부식은 그것은 대의(大義)에 맞지 않으므로 잘못된 것으로 본 것이다. 여기서 호동과 김부식의 가치관과 가치 실현 방법은 확연히 달라진다.

호동이 보기에 비록 원비가 자신을 참소하였지만 만일 그가 진실을 밝힌다면 원비는 처벌을 면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곧 아버지인 대왕에게 근심을 끼치는 일이 된다. 그런데 대왕에게 근심을 끼치는 일은 곧 국가에 근심을 끼치는 일이 된다. 그러므로 호동은 자결만이 부모에 대한 자신의 효심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는 유일한 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대해 김부식은 호동의 자결이 아버지인 대왕을 불의(不義)에 빠뜨렸기에 진정한 효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진정한 효란 소절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대의(大義)를 살리는 것에 있음을 호동은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물론 호동의 입장에서는 한 가지 다른 길이 있었다. 즉, 김부식이 제안한 대로 ‘도망’으로 ‘큰 매’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수긍할 수 없는 모함을 받았다고 하여 그것을 그대로 감내한다면 불의는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일단은 ‘큰 매’를 피하며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효와 의를 동시에 살리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김부식은 ‘큰 매’를 피해야 하는 이유로 댄 것은 정의를 세우거나 호동의 누명을 벗기는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효나 대의라는 명분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꼴이 되므로 옳지 않다. 더욱이 김부식은 호동이 낙랑왕 최리의 신뢰를 깨버리고 그 딸인 낙랑공주를 죽게 사주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논평을 하지 않고 있는데 이것도 대의명분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사고를 그가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들게 한다. 하지만 어쨌든 호동의 자결은 이를 통해 정의를 세우지도, 참된 효도나 충성도 아니라는 점에서 잘못된 행동이라는 판단에는 변함이 없다.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