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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순

수필가·한국어강사

다니던 직장에 사직서를 냈다. 올해 6월 말이면 정년퇴직이라 더이상 일을 할 수도 없지만 고민 끝에 3개월을 앞당겼다. 햇수로 15년째 다니던 직장이고 그동안 몇 번이고 이직해야 하나 갈등도 많았는데 정작 사직서를 낼 때는 담담했다. 그동안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했는데 막상 그만두려니 서운함도 크지만 후련함도 있었다. 내 나름대로 많이 지쳐 있기도 했나 보다.

나는 다문화가족센터에서 한국어 방문지도사로 근무했다. 한국어 방문지도사는 결혼이주여성을 대상으로 그녀들의 가정에 직접 방문해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그녀들이 한국 생활에 안정적으로 적응하고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다. 낯선 곳에서 힘든 일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먼저 가족과의 의사소통 단절에서 오는 불편함을 조금이라고 해소하고 가족 구성원으로 잘 살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서 자부심과 긍지도 있었다.

다문화가족센터는 특정 대상자만을 위한 곳으로 인식되어 지금은 '가족센터'로 명칭이 변경됐다. 다양한 유형의 가족들이 모두 이용할 수 있으며, 가족의 건강한 변화와 성장을 돕는 기관이다. 가족센터로 명칭이 변경된 것은 다문화가족도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가족의 한 형태로 정착됐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국어 방문지도사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경험도 없었고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이라 어떻게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막연했다. 한국 생활이 어설픈 이주여성들과 나 역시 어설프기 짝이 없는 초보 지도사로 열정만 넘쳤다. 하지만 내 첫 대상자였던 베트남 이주여성의 가정에 방문했을 때 나보다 더 긴장된 순수한 눈망울의 대상자를 보면서 내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작은 희망을 보았고 봉사의 마음을 더해 지금까지 이 일을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동안 수많은 결혼이주여성들과 함께하며 기쁜 일, 슬픈 일을 함께 나눴다. 그들의 기쁨과 슬픔은 내게도 그대로 전이되어 내가 그 가정에 방문하는 동안은 그녀들의 친정 가족처럼 교감을 나눴는데 그것이 내게는 보람이었고 지금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돌아보면 이 일을 하며 아쉬움도 컸다. 다문화가족을 위한 수많은 사업이 수립되고 시행됐지만 십 년이 훨씬 넘는 동안 전국적으로 활동하는 방문지도사들의 처우는 개선되지 않았다. 봉사의 마음 없이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처우는 너무도 열악했다. 우리 센터에서도 내가 마지막까지 남았지만 폭풍처럼 밀려온 하얀 파도가 바위에 부서지며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 한국어 방문지도 사업도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찾아가는 방문 서비스는 교통이 불편한 농촌 지역에서 대상 가정에는 더없이 좋은 서비스고 다문화 가정에는 특히 더 필요한 사업이었다.

마지막 수업을 끝내고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대상자와 함께 점심을 먹은 후 산길을 걸었다. 한국에 와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없었기에 모처럼의 산행을 아주 즐거워하며 너무 좋다는 말을 반복한다. 곳곳의 아름다움을 카메라 속에 담으며 행복해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그동안 내가 해 온 일이 참으로 보람 있는 일이었구나 새삼 깨달았다. 길 끝에 서서 그동안 걸어 온 길을 돌아보니 짧지 않은 길이다. 앞으로 한국에서 행복하게 잘 살아갈 결혼이주여성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동안 내가 해 온 일들이 의미있고 값진 일이었다고 스스로를 토닥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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