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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4.03.03 15:22:45
  • 최종수정2024.03.03 15:22:45

이명순

점심을 먹고 교실로 가는데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방글라데시 학생이 커피를 줬다. 괜찮다며 사양했는데 세 개나 샀다며 손을 내민다. 고맙다며 받았더니 수줍게 웃으며 다른 교실로 향한다. 지난 학기에 공부한 선생님 반이다. 나중에 들으니 이번 학기에 공부를 시작한 선생님까지 주려고 세 개나 사 온 거였다.

성실하지만 내성적인 학생으로 내 기억 속에 있다. 결석도 없이 꾸준히 출석했는데 드러나게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열심히 공부해서 2단계, 3단계를 통과하고 이번 학기에 4단계를 공부하는 학생인데 그동안 공부했던 선생님들께 나름대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올해 상반기 사회통합프로그램 한국어를 개강했다. 음성군 지역에는 사회통합 운영기관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과정 신청은 1~2분 만에 마감됐다. 이 과정을 신청하기 위해서 보는 사전평가도 신청하기가 쉽지 않은데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과정 신청은 바늘구멍 통과하기만큼 어렵다.

이번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을 고려하여 평일에 신청하지 않고 일요일 아침 9시로 정했다. 인터넷 시계를 보며 9시 정각에 로그인해야 한다고 미리 안내하고 빠르게 신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상대로 인터넷 환경이 익숙한 학생들은 과정 신청에 성공했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했고, 반대로 신청을 못한 학생들은 공부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겠느냐고 문의가 빗발쳤다.

이럴 때는 나도 참 곤란하다. 다 신청해 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입장이다. 그렇기에 이번에 못 했으면 다음 학기에 하라고 안내해도 먼 타국에 와서 일하며 공부하고 싶다는 그들을 외면하기가 쉽지 않다.

학기마다 학생들을 배정받아 살펴보면 다양한 나라의 외국인 학생들이 신청한다. 적게는 7~8개국에서 많게는 10~11개 나라까지도 있었다. 매년 센터를 이용하는 학생들도 모두 합치면 17개국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사회통합 한국어 교육이다. 평일에는 산업 현장에서 노동하고 일요일마다 센터에 나와 치열하게 공부한다.

근무 환경이 좋은 곳만은 아니기에 일요일에는 편히 쉬고 싶겠지만 자신들의 목표와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그들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특하다. 나 역시 일요일마다 센터에 가지만 일주일에 한 번 보는 그들 때문에 보람과 기쁨을 느낀다.

지난 학기에는 24명의 학생이 함께했는데 수업 분위기가 무거웠다. 쉬운 공부가 어디 있겠느냐만 유독 어려워했기에 나 역시 기운이 빠졌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단계평가 결과가 좋아 학생 전원이 승급하니 그동안의 힘듦은 눈 녹듯 사라졌다. 교사로서도 가장 큰 보람 아니겠는가.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며 이번 학기에는 어떤 학생들을 만나게 될지 걱정이 앞섰다. 초급 과정의 학생들이라 소통이 원활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시작은 괜찮다. 가족을 위해, 자신의 꿈을 위해 먼 한국까지 날아와 같은 지역에서 살게 된 소중한 인연의 학생들. 녹녹하지 않은 한국 생활이겠지만 내가 보는 밝은 모습을 잃지 않고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휴식 시간에 마시는 커피잔에 수줍은 미소로 전해주던 방글라데시 학생의 얼굴이 다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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