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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우석 주필 에베레스트 트레킹 여행기 5

에베레스트 트레킹(고락셉-칼라파타르-고락셉-페리체)
산정에서 생각의 지도를 그린다
기쁨, 슬픔, 분노, 허무가 스친다
느림으로 시작해 느림으로 끝난다

  • 웹출고시간2019.04.28 16:19:35
  • 최종수정2019.04.28 16:28:36

하얀 눈과 갈색의 암석뿐이다. 다른 건 없다. 그런데 선명하다. 고준하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에베레스트가 다른 고봉 사이에서 도도하게 빛난다.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순결하다. 떠가는 구름마저 정백하다. 선계와 속계의 경계를 분명히 알린다. 우주로 통하는 관문처럼 겹겹이 쌓인다. 찬 공기에서 고산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변화하는 속계의 덧없음을 깨닫는다. 칼라파타르의 숨이 내 가슴으로 들어온다. 순간 속세에서 바라던 꿈이 날아간다. 마침내 평화로워진다.

ⓒ 함우석 주필
5. 칼라파타르, 고통이 내민 선물은 값지다

칼라파타르(5554m)를 앞에 두고 묻는다. 누가 나를 이곳까지 부른 걸까. 지금까지 과연 얻은 게 무엇인가. 맹렬하게 뭔가를 구해보긴 했는가.

오후 1시 고락셉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때운다. 맛이 좋다. 지체할 시간 없이 길을 나선다. 장비를 갖추고 하는 등정은 아니다.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힘들기는 등정 수준이다. 고산이 주는 고통이 크다.

칼라파타르 이정표

ⓒ 함우석 주필
오늘의 목적지는 칼라파타르다. 물론 EBC(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 탐사도 있다. 하지만 EBC를 뒤로 미루고 칼라파타르에 집중한다. 벼르고 별러 왔던 일을 다시 감행한다. 심드렁해진 삶에 활력을 주기 위한 작업이다.

히말라야 설산은 내게 그저 그런 산이 아니다. 산 아래 삶에서 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다. 특히 에베레스트가 갖는 상징은 아주 크다. 심연의 고향과 같은 숭고한 귀의처다. 깨어남의 자궁과도 같은 근본이다. 바라만 봐도 심장을 뛰게 한다.

고락셉의 넓은 분지를 지난다. 칼라파타르 이정표를 지난다. 낮에는 건조하고 해만 지면 뼈 시리게 춥다. 산정에 오르기 위해 고난의 땅으로 들어선다. 허락된 시간 안에 올라야 한다. 시공의 의미를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시린 추위와 추운 바람을 견디며 간다. 발밑에서 올라오는 먼지의 고통을 참아낸다. 고산의 산소 부족을 인내로 받아들인다. 고통이 내민 선물을 기꺼이 받는다. 기쁨과 슬픔, 분노, 허무가 스쳐간다. 정확히 말하면 산소부족에서 오는 고통이다.

사위가 눈 부실만큼 신비롭게 빛난다. 황무지 길이 치마폭을 넓게 벌린다. 설산에 걸린 구름이 마지막 남은 하루 햇살을 모은다. 구름 속으로 볕이 몰려든다. 따뜻한 볕에 부는 추운 바람이다. 한 참을 서 그 풍경을 즐긴다.

한기가 몰려온다. 고도 탓이다. 가져간 옷가지들을 최대한 끼워 입는다. 군밤장수 모자에 벙어리장갑까지 낀다. 거센 바람에 닿은 볼이 따갑다. 입술이 벌겋게 터진다. 날씨의 아이러니를 경험한다. 복잡한 상념이 빛을 타고 터져 나온다.

정상을 향해 한발 한발 내딛는다. 잠시 뒤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른다. 예상보다 숨이 가쁘다. 빤히 보여 언덕같이 보이는 산이 너무 멀다. 고도 약 600m, 경사도 30~40도의 가파른 오르막이다. 울고 싶어진다. 강력한 현존을 느낀다.

온몸에 진이 다 빠진다.·스무 걸음도 안 돼 숨이 차오른다. 고통을 견디고 마침내 정상에 선다. 늦은 오후 고산의 바람이 싸늘하다. 눈에 보이는 건 온통 높이 솟은 새하얀 설봉들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이 바로 앞에 서 있다.

선명하다. 고준하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천국의 일부를 엿보는 것 같다. 가까이로 일행 3명이 보인다. 힘든 중에도 사진을 찍어준다. 가쁜 숨을 몰아쉰다. 산정에서 잠시 다리쉼을 한다. 기념촬영도 한다. 잠시 앉아서 에베레스트를 본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을 바라본다. 다른 고봉 사이에서 도도하게 빛난다.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순결하다. 떠가는 구름은 정백하다. 멀리 에베레스트가 선계와 속계의 경계를 알려줄 뿐이다. 우주로 통하는 관문처럼 느껴진다.

제 숨이 돌아온다. 구름마저 꿈속의 정경이다. 변화하는 속계의 덧없음을 깨닫는다. 찬 공기에서 고산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칼라파타르가 숨을 통해 가슴으로 들어온다. 고산의 바람을 다시 느낀다. 이내 고산증에 대한 긴장감이 몰려온다.

인증 샷을 마치고 하산을 결정한다. 숨이 더 가빠진다. 산 아래로 내려오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안전이 최우선이다. 해발고도 5600m에서 산소의 양은 해수면의 50%다. 그래도 인체의 기능은 정상 작동한다. 그 바람에 체내 산소가 부족해지고 고소증이 생긴다.

고락셉 마을 전경

ⓒ 함우석 주필
일찍 찾아온 어둠을 등에 업고 고락셉 롯지에 도착한다. 오후 6시30분 저녁을 먹는다. 고된 여정을 마치고 습관처럼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다. 그리고 익숙하게 '롯지(산장)'에서 새우잠을 청한다. 약간의 감기 증세로 뒤척이는 밤을 보낸다.

히말라야 롯지는 대개 비슷하다. 얇은 합판으로 방이 나눠진다. 시멘트와 돌로 바람막이 벽을 두른다. 난방은 당연히 안 된다. 밤이 되면 영하의 추위에 떨어야 한다. 보온병을 침낭 속에 밀어 넣고 몸을 데워야 한다. 늘 '핫팩'이 그리운 밤이다.

고락셉의 밤은 길고 춥다. 한밤중 로지 밖의 추위는 엄청나다. 저녁을 먹고 롯지 주인에게 천 루피를 준다. 야크 똥이 난로를 데운다. 온기를 느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롯지에서 준비한 가스마저 얼어붙어 제 역할을 못한다.

이래저래 추운 고락셉의 밤이다. 바람이 울부짓듯 롯지 벽을 파고든다. 그래도 밤하늘의 맑고 투명한 별들이 위안을 준다. 어둠 속에서 야크들의 워낭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종소리를 낸다. 너무 추워 별 구경을 멈추고 방으로 들어온다.

칼라파타르에서 충북일보 깃발과 함께

ⓒ 함우석 주필
그렇게 또 하루가 간다. 3월17일, 쿰부 히말라야에 든 지 10일째다. 밤새 울리는 야크들의 워낭소리에 잠을 설친다, 어제 오후 칼라파타르 등정을 미뤘던 일행들이 새벽 3시 출발을 서두른다. 이래저래 잠자기는 틀린 날이다. 일기불순 소식이 들려온다.

새벽 일찍 칼라파타르에 올랐던 일행들이 돌아온다. 오전 8시 아침 식사를 마치고 페리체 쪽으로 내려간다. 내려가는 중에 본 에베레스트와 아마다블람이 오를 때와 느낌이 다르다. 얼음계곡을 따라 조망을 즐기며 내려간다.

일행 중 2명은 고소증세로 말을 타고 내려간다. 히밀라야 여행 중엔 고소증세 때문에 세수조차 어렵다. 대개 물티슈로 대충 얼굴을 닦는다. 수염은 트레킹 내내 한 번도 깎지 못할 때가 많다. 신들의 세계에 들기 위한 과정이다.

도전은 늘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 도전이 없다면 세상은 어땠을까. 변화 없는 지루한 일상으로 가득할 것이다. 위험을 감수해야 성과도 생긴다. 도전의 과정엔 강인한 인내와 열정이 필요하다. 장벽과 장애물을 허무는 도구다.

2019충주무예마스타십을 알리는 깃발

ⓒ 함우석 주필
끝없이 도전하면 어느 순간 바라던 소망을 이룰 수 있다. 오늘 내려갈 길은 도상거리 17km다.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략 10시간 정도를 걸어야 한다. 만만찮은 거리다. 고도를 약 1천m나 낮춰 내려간다.

초입부터 너덜길이 힘을 뺀다. 오를 때도 그랬지만 가슴에 고통을 준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다시 보탠다. 겨우 너덜지대를 벗어난다. 발걸음에 힘이 생긴다. 색다른 풍경이 들어온다. 안부에 도착한다. 오를 때 제대로 보지 못한 초르텐 집단을 본다.

가까이 가서 보니 추모탑들이다. 에베레스트를 오르다 불의 사고를 당한 이들을 추모하는 묘탑들이다. 묘탑에 새겨진 이름들을 보면 꽃다운 청춘들이 많다. 아는 이름도 있다. 히말라야에서 목숨을 잃은 젊은이들을 추모하고 있다.

에베레스트에 영원히 안긴 젊은이들이다. 묘한 감정이 한동안 이어진다. 이들의 안식과 영면을 빌고 내려선다. 오를 때와 방향을 바꿔 페리체 쪽으로 간다. 내려가는 길은 더 넓은 개활지의 연속이다. 먼지가 나고 돌도 많다. 경사도 가파르다.

발바닥에 힘을 주며 한참을 내려간다. 마침내 평화롭다. 바닥돌이 모나지 않고 반들거린다. 걷기에도 편하다. 하늘이 흐려지더니 눈발이 내린다. 지금까지 우호적이던 날씨의 패턴이 바뀐 것 같다. 구름이 일찍 몰려와 예측은 했다.

눈까지 내릴 줄은 몰랐다. 눈 축복이다. 평탄한 길, 평화로운 풍경에 하얀 눈은 감동 그 자체다. 페리체에 닿기 전 계곡길은 그림 같다. 야크와 목동이 사는 집은 아름다움 그 자체다. 눈까지 내리니 풍경이 수묵화로 변한다. 진경산수화가 따로 없다.

페리체 마을풍경

ⓒ 함우석 주필
하산 첫날 풍경이 참 예쁘다. 오후 4시 롯지에 도착한다. 물론 더 늦은 일행도 있다. 2시간 정도 휴식을 취하며 수다를 떤다. 함께 간 일행 중 한 명이 생일을 맞는다. 고산이지만 간단한 맥주 파티로 생일을 축하한다. 그동안 지친 몸과 마음을 섞어 버무린다.

얻는 게 많다. 내딛는다는 게 이렇게 엄청나다는 걸 깨닫는다. 한 발자국 내딛는 게 고개 하나를 넘는 것처럼 힘들 때도 있었다. 생각처럼 몸이 말을 듣지 않을 때도 있었다. 마음과 몸의 불일치도 경험했다.

해발 4240m 페리체에서 트레킹 열흘째를 마무리 한다. 느림으로 시작해 느림으로 끝난 산 여행이다. 내 생애 가장 느린 걸음으로 한 여행이다. 느림의 힘은 여전히 위대하다. '천천히 천천히' '비스타리 비스타리'를 되뇌어 본다.

"신은 여러 방식으로 우리를 외롭게 만들어 결국엔 우리 자신에게로 향하도록 이끈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에서 <계속>

/ 함우석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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