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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N포세대지만 포기하지 않아요"

청년실업자 고졸 김현무씨 이야기
스무살때 사회 첫 발…10년간 10번이나 이직
"을의 시련 되풀이 되지 않길"

  • 웹출고시간2016.02.18 18:05:10
  • 최종수정2016.02.18 18:05:10
[충북일보] "흔히들 저보고 'N포세대'라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전 포기하지 않았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김현무(가명·33·청주시 청원구 내덕동)씨는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청년 실업'이라는 말이 새삼스럽지도 않다.

딱히 내세울 만한 것도 없었고, 누군가를 원망할 겨를도 없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고졸이었고, 가난했다. 세상은 김씨와 같은 '별 볼일' 없는 인력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렇게 김씨는 10년 동안 10번이나 이직해야만 했다.
김씨가 처음 사회에 발을 들인 때는 지난 2003년 스무살 때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작은 가게에서 일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장애가 있고 고령인 탓에 김씨는 부모님을 뒷바라지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꿈을 져버리기에는 청춘이 너무 아까웠다.

김씨는 사실 디자인 공부를 하고 싶었다. 지역 전문대에서 짧게나마 전공도 익혔다. 이후 등록금을 모으고자 반년 만에 휴학한 게 그의 학업의 끝이었다.

대형 마트에서 건어물 코너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2년 넘게 하루 10시간 가까이 일했다. 월 수입은 150만원이 조금 넘었다.

김씨는 일하던 마트에서 매니저를 뽑는다고 해 지원했지만 면접도 보지 못하고 3번이나 낙방했다. 나중에 지인을 통해 '전문대 졸 이상을 뽑는다'는 조건을 알았다고 한다.

김씨는 2년 동안 번 돈으로 허름한 승합차 한 대를 샀다. 당시 금액으로 100만원이었다고 한다. 지역 슈퍼마켓을 돌며 건어물을 납품했다. 하지만 이미 촘촘하게 짜인 철통같은 유통구조에 김씨가 비집고 들어갈 여유는 없었다.

그렇게 6개월만에 김씨는 나름대로 준비한 개인 사업을 접어야만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알던 지인의 권유로 청주의 산업연수원에 들어가게 됐다. 김씨는 1년 동안 광통신 분야를 공부하며 3개의 자격증을 땄다.

이후 연수원이 소개해 준 업체는 1년 동안 공부한 분야와 전혀 관련이 없는 일반 전자제품 제조업체였다. 근로 여건도 열악했다. 주·야간 12시간씩 일하고도 월급이 130만원 수준이었다.

다시 김씨는 구직(求職) 시장으로 나왔다.

인터넷 설비 업체를 짧게 거친 뒤 휴대폰 정비·수리를 하는 일을 구하게 됐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유명 대기업 제품을 취급하는 서비스센터에 취업한 것이다.

일한 만큼 벌 수 있는 구조였다. 그러나 그만큼 노동 현장에 박혀있는 부조리는 뿌리가 깊었다.

김씨는 상사의 눈 밖에 났다는 이유로 서비스 콜을 받지 못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경험했다. 센터 여직원의 월급을 엔지니어들의 수당에서 일부 떼어내라는 반(半)강요를 받기도 했다. 부당함을 호소하거나 불만을 들어내면 1~2주 동안 일거리를 주지 않는 게 일쑤였다. 이 같은 '갑(甲)질'은 업계에서 유명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김씨는 다른 업체나 대전 등지를 오가며 일거리를 찾곤 했다.

처음 사회에 진출한 지 13년 째를 맞은 지금은 청주지역의 한 농산품 가공·생산 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그의 10번째 직장이다. 보수는 첫 사회생활 때와 비슷한 수준이다. 10년 동안 김씨는 이렇다 할 경력도 쌓지 못했다. 제자리걸음만 한 것이다.

어린 나이부터 사회의 온갖 '벽'에 부딪혀 온 김씨의 꿈은 하나다.

"인생의 3개, 5개를 포기한 세대라는 것을 느낄 겨를도 없이 살아왔지만 이렇게 자기계발도 못하고 하루하루 급급하게 살아온 게 후회스럽지도, 세상이 원망스럽지도 않아요. 다만 고졸이라는 이유로, '을'이라는 이유로, 약자라는 이유로 겪었던 시련이 되풀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에요."

그리고는 반문했다.

"지금 정부나 지자체가 각종 청년 정책을 쏟아내며 좋은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근본적으로 사회적인 차별이나 부조리를 없애기 위한 대책은 있나요· 이번엔 보여주기용 정책이 아니겠죠?"

/ 최범규기자 calguks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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