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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서

괴산군청 예산계장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유교교육을 위한 향교를 설치하였고, 그로부터 150여년이 지나 사림파가 중앙정계에 진출한 중종(재위 1488~1544) 말기부터 사학인 서원(書院)이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서원의 기원을 조선초기부터 시작된 사림의 향촌활동으로 보기도 하지만, 본격적으로 설치된 계기는 사림파가 정책으로 제시했던 문묘종사(文廟從祀)와 교학혁신(敎學革新)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었다.

최초의 서원은 1543년(중종38)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안향(安珦)을 제향하고 유생을 교육하기 위하여 경상도 순흥면에 창건한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고, 관인사학격인 사액(賜額)서원은 1550년(명종5) 이황(李滉)의 건의로 왕명으로 서원을 건립하고 어필현판과 전·답·노비를 하사한 소수서원(紹修書院)이 처음이다.

초기에는 선현숭배와 인재양성을 통한 유교적 향촌질서유지와 유교이상실현을 위한 공론형성 등 긍정적인 기능을 하였으나, 점차 양반층의 집단이익을 추구하고 급기야는 서원을 구심점으로 하는 붕당에 가담하여 당쟁을 가속화하는 요인이 되었으며, 면세(免稅)·면역(免役) 특권으로 국가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폐단을 없애기 위하여 1703년(숙종29)의 서원금령(書院禁令), 1741년(영조17)의 1714년 이후 건립된 서원철폐가 시행되었고, 1864년(고종1) 집권한 흥선대원군에 의해 전국 650여개의 서원 중 47개만 남기고 모두 철폐되기에 이른다. 괴산에는 현재 계담서원(桂潭書院), 화암서원(花巖書院), 화양서원(華陽書院)이 있다. 계담서원은 1824년(순조24)에 창건하여 1865년(고종2)에 철폐되었고 1991년 복원하였다. 안향·이황 등 18위의 선현을 모시고 있으며, 1992년부터 충(忠)·효(孝)·예(禮)·신(信)·경(敬)·성(誠) 등 6대 덕목을 교육이념으로 6개월 과정으로 교양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위치는 감물면 감물로이담5길 19이다.

화암서원은 1622년(광해군14)에 이황·이문건(李文楗)·노수신(盧守愼)·김제갑(金悌甲) 등 선현의 학덕을 추모하는 지방유림이 창건하였다. 1871년(고종8)에 철폐되었고 1956년에 복원하였다. 칠성면 송동리에서 2004년에 괴산읍 괴강로 313으로 옮겨지었다.

화양서원은 1695년(숙종21)에 노론(老論)의 영수 송시열(宋時烈)을 제향하기 위하여 문인 권상하(權尙夏)를 비롯한 노론관료와 유생들이 세운 전국 44개 송시열 제향 서원 중 대표적인 곳이다. 영조 때 송시열이 문묘에 배향되면서 서원의 위상이 높아져 국가의 물질적 지원과 노론관료 및 유생들의 기부로 서원소유 토지가 크게 늘어났고, 제수전(祭需錢), 화양묵패(華陽墨牌)로 대변되는 폐단으로 일설에는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구상의 단초를 제공했다고도 알려져 있다. 1871년(고종8)에 철폐되었고 2006년 복원하였으며 1716년(숙종42)에 건립한 화양서원묘정비(충청북도기념물 제107호)만이 옛 영화를 대변하고 있다. 청천면 화양동길 188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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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