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권영이

증평군청 행정과

겨울 햇살이 마님네 마당을 기웃대다 말고 슬그머니 물러난다. 그 뒤로 스산한 바람이 다가와 낙엽을 걷어찬다. 낙엽은 툴툴대며 이리저리 몸을 피하느라 분주하다.

마님은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삼돌씨가 마님 곁으로 다가와 묻는다.

"마님! 뭘 그렇게 넋 놓고 보고 있어?"

"삼돌씨! 이런 날은 공연히 쓸쓸해지지 않아? 아, 따뜻한 우동 국물을 마시면 좀 나아질 것 같은데…."

삼돌씨가 마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다독거린다.

"그럼 갑시다. 뜨끈한 우동국물 먹으러."

"어디로?"

"왜, 거, 충주에 있는 우동집. 주인이 시인 아줌마였잖아?"

마님 눈과 입이 눈썹달처럼 변하며 반색을 한다.

"와! 맞다. 거기 우동국물이 참 맛있었어. 간판도 없는 우동집이라 내가 '시를 삶는 우동집'이라고 이름도 붙여줬었는데. 그동안 잊고 있었네."

몇 년 전에 삼돌씨 친구 부부와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충주에 가면 시인이 우동집을 하는데 무척 아름답더라는 말을 들었었다.

마님 부부는 시인이 하는 우동집이니까 맛보다는 멋으로 빚은 우동일 거라는 기대를 안고 물어물어 찾아갔었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우동집은 작은 공원 옆에 낡은 건물에 덧붙인 판잣집이었다. 포장마차 수준인 우동집은 벌거벗은 나무처럼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마님 부부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널빤지로 만든 문이 삐거덕 소리를 내며 주인보다 먼저 손님을 맞이해 주었다.

"어서 오세요."

시인 같은 사람은 눈에 띄지 않고 화장기 없는 오십대 아줌마의 퉁퉁 부은 얼굴이 표정 없이 마님 부부를 맞이했다.

마님이 우동 두 그릇을 시키고 나서 사방을 둘러보니 사면의 벽과 천장에 낙서장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마님이 낙서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한 장을 뜯어 주머니에 넣고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동그릇에 코를 박고 후르륵대며 중얼거렸다.

"노력 없이 지속될 사랑이 어디 있으랴? 음, 멋진 말이야."

"뭘 그렇게 실성한 사람마냥 혼자 중얼대?"

"히히, 아무것도 아냐."

우동을 다 먹고 나서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그 푸석한 아줌마가 물었다.

"나, 시인 같지 않죠?"

"네."

마님이 그렇게 묻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다들 그래요. 사람들이 내가 시인이라고 하면 실망하더라고요."

"하하, 뭐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바쁘실 텐데 시는 언제 쓰세요?"

삼돌씨가 눈치 없는 마님을 대신해서 미안함을 감추느라 허허거리며 물었다.

"뭐. 시가 별건가요? 우동 반죽을 할 때나 우동국물 우려내면서도 건져요. 저기 공원에 묵묵히 서 있는 느티나무가 밤새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 본 이야기도 훔쳐다 쓰고요."

마님과 삼돌씨는 고개를 크게 끄떡거렸다.

"시는 별다른데 있지 않아요. 그냥 우리들 생활 속에 있더라고요."

그분은 물어물어 찾아온 마님네 부부에게 고맙다며 당신의 첫 시집 [우동집 아줌마]에 사인을 해서 선물로 주었다. 그 시집은 지금도 마님 책꽂이에 꽂혀 있다.

"들어올 때 보니까 간판이 없던데 '시를 삶는 우동집' 이라고 부르세요."

마님 말에 시인이 손에 묻은 밀가루를 탈탈 털며 환하게 웃었었다.

마님은 그 우동집에 대한 추억을 생각하다 말고 그때 훔친 낙서장이 아직도 들어있기라도 한 것처럼 주머니를 뒤적거린다.

노력 없이 지속될 사랑이 어디 있으랴.

- 천방지축 마님생각 ^^ -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신년>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인터뷰

[충북일보] ◇취임 두 달이 지났다. 그동안의 소회 말씀해 달라 2016년 국회 저출산고령사화특귀 위원장을 하면서 출산율 제고와 고령화 정책에 집중했다. 지난 6년간 대한민국 인구구조는 역피라미드로 갈 수밖에 없는 흐름이다. 2025년 초고령 사회 진입에 따른 인구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큰 틀에서의 인구미래전략이 필요하다. 취임 후 위원회가 해온 일을 살펴보고 관계부처, 관련 전문가, 지자체, 종교계, 경제단체 등 각계각층과 의견을 나눴는데 아직 연계와 협력이 부족하다. 위원회가 정책을 사전에 제안하고 부처 간 조정 역할을 강화해 인구정책 추진에 매진할 계획이다. ◇인구정책 컨트롤타워로서 위원회의 인구미래전략 비전과 방향은 현재 극심한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구구조가 크게 변화하고 있다. 위원회는 피할 수 없는 초고령사회를 대비하는 '미래 100년 준비'를 시작한다. 인구구조에 영향을 받는 산업, 교육, 국방, 지역 등 전 분야의 준비를 통해 사회구성원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탄탄한 미래를 설계하고자 한다. 인구구조 변화를 완화하기 위해 출산율 제고는 반드시 필요하다. 새해에는 '2023년 응애! 응애! 응애!' 구호를 펼친다. 젊은 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