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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수필가

바닷가에 물결이 멍석말이하며 여울지는 것처럼 부쩍 시간의 흐름이 빠르게 느껴진다. 오늘같이 고연히 마음이 조급해지고 허둥거려지는 날은 산을 찾는다. 복잡한 도시의 일상을 벗어나 산행을 하다 보면 아날로그 같은 세상을 만난다. 천천히 흐르는 풍경과 느림의 미학이 있는 곳, 광속으로 내닫는 시대의 변두리에서 이방인처럼 주눅이 들곤 하는 내게 산은 언제 찾아와도 평안을 준다. 촐촐거리는 계곡물소리가 땀을 식히고 가란다. 물이 소를 이룬 가장자리 큰 바위에 앉으니, 자연이 내안으로 들어온다. 세상과 동떨어진 별천지다. 한층 짧아진 가을햇살이 나뭇가지사이를 비집고 너름 바위 위로 쏟아졌다. 시간이 정지한 듯, 나는 고요와 하나가 되었다.

그때, 웅덩이 건너편 바위벽에 시선이 머물렀다. 민달팽이다. 손가락 크기의 민달팽이 한 놈이 또 다른 놈을 향하여 천천히 기어간다. 제 살던 집도 벗어 던진 채 살구 색 맨살을 길게 드러내고 기어가는 모습이 하도 진지한 걸 보니, 신혼 방을 차리러 가는가 보라고 누군가 말했다.『저 흘레의 자세가 아름다운 것은 덮어준다는 그 동작 때문은 아닐까』'복효근' 님의 '덮어준다는 것' 이란 시 한 구절이 생각났다. 두 녀석 간격이 두 자는 되니 녀석의 속도로 보아 아직 상거가 멀다.

정말 신혼 방을 차렸을까. 그리움을 향한 몸짓처럼 기어가는 모습이 지극도 하더니만. 비밀현장을 떠나 걷는 내내 그들의 흘레장면이 궁금했다. 어디로부터 왔을까. 달빛을 타고 지루한 여름날을 지나 느릿느릿 다가가 한숨 끝에 얻어진 긴 포옹이려니, 덮는다는 건 상대방에게 맡긴 손에 흐르는 눈물같이 부드럽고 성스러운 일이리. 덮어도 감추어지지 않는 부끄러움이라 해도 그들만의 달콤한 신방이 되었기를….

덮는다는 말이 좋다. 덮어주는 일은 생산이다. 수치를 덮어주면 사람을 앞으로 나가게 하지만 드러내면 주저앉힌다. 아무리 덮어도 위에서 보시면 덮은 사람도 덮인 사람도 모두가 부끄럽다. 그러할지라도, 드러내기 싫은 것들을 안고 사는 부끄러운 사람들일지라도, 서로 덮어준다면 하나님도 미쁘게 보실 게다. 실수가 많은 사람들끼리 서로 덮어주면 좋겠다. 허물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우리는 남의 허물을 덮어주기 보다는 드러내는 일에 익숙하다. 공동체 안에서도 이웃사이에서도 정치판도, 세상은 온통 드러내는데 초점을 맞춘 듯, 투명을 가장으로 낱낱이 파헤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때로는 진실도 덮어야할 것이 있고, 거짓보다 못한 진실도 있다.

덮으므로 위대한 일에 쓰임 받은 사람이 성경에 있다. 정혼한 여인과 동침한 적이 없는데 그녀의 임신사실을 알고 고민하는 청년요셉이야기다. 그 일이 드러나면 여인은 돌에 맞아 죽어야하는 사건이었다. 요셉은 마리아와의 관계를 가만히 덮고자 생각한다. 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임신됐다는 계시를 듣고 기뻐 아내로 맞아드렸지만, 절교까지 생각한걸 보면 계시를 받기까지 그의 고뇌가 짐작된다. 분노와, 배신감을 넘어 덮어주는 인품이 아니었다면, 어찌 예수아버지라는 영광을 얻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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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