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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3.07.11 16:07:0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조선시대 내섬시(內贍寺)라는 내직 기구가 있었다. 내섬시는 호조 소속으로 궁중에 공급되는 각종 물품을 관리했다. 세종대 내섬시에 근무하면서 고문헌에 자주 등장했던 인물로 김흔지(金사람인변+完之)가 있다.

세종은 보위에 오른지 20년이 넘으면서 크고 작은 질병에 시달렸다. 이중 안질은 그 정도가 매우 심했다. 때문에 세종은 1444년에는 우리고장 초정약수를 봄·가을에 걸쳐 두번이나 찾게 된다.

이때 초정약수와 관련된 일을 전담한 인물이 바로 앞서 언급한 김흔지이다. 임금이 궁궐을 벗어나 별장식으로 머무는 곳을 행궁, 또는 이궁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임금이 행궁으로 향하는 움직임은 '행차'가 아닌 거둥으로 표현했다. 1444년 음력 1월 27일 우리고장 초정약수가 조선왕조실록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지금의 초정약수 모습.

'어떤 사람이 와서 아뢰기를, "청주(淸州)에 물 맛이 호초(胡椒) 맛과 같은 것이 있어 이름하기를 초수(椒水)라 하는데, 모든 질병을 고칠 수 있고, 목천현(木川縣)과 전의현(全義縣)에도 또한 이러한 물이 있습니다" 하니…'-<세종실록>

그리고 '임금이 이를 듣고 장차 거둥하여 안질(眼疾)을 치료하고자 하여 내섬시 윤 김흔지를 보내어 행궁(行宮)을 세우게 하고, 이 물을 얻어 가지고 와서 아뢴 자에게 목면 10필을 하사하였다'라는 내용이 이어진다.

내섬시윤 할 때의 윤은 으뜸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인용문에 서두에서 언급한 김흔지라는 이름이 보인다. 정황상 그는 세종의 초정약수 거둥보다 미리 내려와 행궁 건축공사를 지휘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이름은 같은 해 2차 초정약수 거둥 때(음력 7월 22일)도 등장한다. 이때는 행궁 건립이 아닌 기존 행궁의 수선이었다.

'내섬시윤 김흔지를 청주에 보내어 초수 행궁(椒水行宮)을 수선하였다.'-<세종실록>

세종은 초정약수 외에도 안질에 효험이 있다고 소문이 난 온천이나 약수터가 있으면 그곳도 찾았다. 이때도 역시 김흔지가 '전담맨'이 됐다. 그는 지금의 충남 전의도 답사했다.

'내섬시윤 김흔지가 전의(全義)에서 돌아와서 아뢰기를, "초수(椒水)는 수원(水源)이 깊고 길며 궁궐을 지을 재목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하니…"'-<세종실록>

인천 지역에 양질의 약수가 존재하는지 여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조선 전기에는 양질의 약수가 있었던 모양이다. 당시 인천에 출장은 나간 인물 역시 약수 전담맨 김흔지였다.

'경기도 도관찰사 허후가 치계하기를, "인천군의 북쪽 돌 가운데 석중(石中)에 작은 샘이 있는데, 약간의 향기가 있으며, 활택(滑澤)하기가 보통 물보다는 다르므로(…) 하니, 내섬시윤 김흔지를 보내어 살펴보게 하였다.'-<세종실록>

이밖에 '내섬시윤 김흔지를 보내어 목천(木川)의 초수를 살펴보게 하였다'라는 표현으로 봐 지금의 천안지역도 방문했던 것으로 보인다. 단종은 그가 졸하자 손수 관까지 내렸다.

'한성부윤 김혼지가 졸하니, 관곽(棺槨)과 부의로 종이 1백 권을 내려 주었다.'-<단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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