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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3.06.25 16:37:0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송시열의 아버지는 송갑조(宋甲祚·1574~1628)라는 인물이다. 그는 선조~인조 연간을 살면서 광해군대에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한 수재형 인물이었다. 조선시대 소과의 일종인 생원시는 지금으로 치면 논술, 진사시는 경전해석을 묻는 시험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과거에 합격한 직후 송갑조는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그는 같이 합격한 동과생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목대비를 찾아 혼자 배알, 즉 인사를 했다. 당시 인목대비는 영창대군의 친모이나 광해군이 집권하면서 서궁에 유폐된 상태였다.

이같은 분위기에서 인목대비를 찾았다는 것은 여간한 강골이 아니고서는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즉각 파문이 일어났다. 이영구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과거합격 동기생들이 그를 유적(儒籍)에서 삭제하는 운동에 나섰다. 실록은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송갑조(宋甲祚)가 정사년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고 나서 혼자서 서궁에 숙배를 하였습니다. 그 당시 흉도들이 폐모론(廢母論)을 주장하며 많은 선비들을 협박하였는데, 갑조가 옷자락을 뿌리치고 가버리므로, 흉도들이 그의 성명을 탐문하여 중상할 계획을 쓰자….'-<효종실록>

송갑조는 이같은 분위기에 고분고분할 성격은 아니었다. 그도 즉시 '강대 강'으로 맞섰다. 벼슬에 추호의 미련도 두지 않고 명분에 맞는 바를 행동으로 옮겼다. 송갑조는 자기 이름을 대문짝만 하게 써 이를 반대자들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송갑조가 드디어 분연히 말하기를 '이 상소는 도대체 무슨 의리인가.' 하였다. 흉도들이 그 이름을 캐묻자 송갑조가 붓을 꺼내어 성명을 크게 써서 보여주고는…'-<인조실록>

그러나 끝내 그 과거에 합격하자마자 유적에서 제명됐다. 이는 벼슬길이 끊기는 것을 의미했으나 그는 그같은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대신 고향 우리고장으로 내려와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다.

송갑조의 묘.

1623년 서인이 주도하고 남인이 묵시적으로 협력한 인조반정이 일어났다. 그 결과, 광해군은 서인으로 강등돼 강화도로 유배됐고 대신 능양군이 등극했다. 그가 바로 인조다. 정국이 반전됐다는 것은 세상이 바뀐 것을 의미한다. 인조는 그를 강릉참봉에 임명했다.

요즘도 촌로들이 "알아야 면장을 하지"라는 말과 함께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 "아무개 참봉"이다. 그만큼 참봉은 흔한 벼슬로 품관이 종9품으로 최말단직이었다. 조선시대 '양송'(兩宋)은 송시열과 송준길(宋浚吉·1606~1672)을 지칭하는 말이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양송의 한 명인 송준길이 상소를 올렸다.

"윤기(倫紀)를 부지시킨 그의 기절은 숭상할 만한데도, 인조 반정 이후 벼슬이라고는 봉사(奉事)에 그쳤고, 증직 역시 내려지지 않았으니, 이는 부족한 은전이라 하겠습니다."-<효종실록>

인용문의 윤기는 윤리와 기강을 말한다. 이어지는 대화가 더욱 재미있다. '이에 승지 서필원이 아뢰기를, "송갑조는 바로 시열(時烈)의 아비입니다" 하니 상이 탄식하기를, "송시열은 그의 아비부터 보통 사람이 아니었으니, 그의 어짊은 유래가 있는 것이로다" 하였다.'-<효종실록>

그는 영조 대에 이르러 영의정에 추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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