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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3.04.16 17:08:17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금년은 개화기 때 저온현상이 찾아오면서 청주 무심천 벚꽃이 비교적 오랫동안 만개한 상태를 유지했다. 본보는 4월 8일자 기사에서 무심천 벚꽃의 근현대사를 다룬 적이 있다.

'1914년(대정3) 3월에는 청주에서 생겨난 청년회가 기념으로 벚나무를 식재하게 되었다. 회원들은 집집마다 권장하여 많게는 10주, 적게는 2·3주씩 하여 남으로는 무심천 제방일대에 벚꽃을 식재….'

그러나 당시에는 지면 관계상 청주 연혁지 내용을 모두 소개하지 못했다. 나머지는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서로는 성서정(城西停)의 제방, 동으로는 성동정(城東停)의 성벽 흔적을 따라 식재하였다. 회원들은 상호 감시하여 한국인 어린아이들이 나뭇가지를 꺾지 못하도록 경계하여 그 공로가 헛되지 않아 벚나무는 잘 자라나서 몇 년이 되지 않아 개화를 보게 되었다.'

인용문에 등장한 '성서정'과 '성동정'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지명이다. 성서정은 개명 전에는 청주군 북주내면 서리(西里)와 원리(院里) 지역으로, 지금의 서문동에 해당한다.

성동정은 개명 전에는 청주군 동주내면으로, 지금의 문화동 일대가 된다. 나머지 내용을 계속 소개하면 '만약 그것이 한 꽃이 피는 시기에 접어들게 되면 긴 제방에 많은 가지에서 휘늘어진 꽃송이가 흰 구름이 낀 것과 같고 어떤 때는 눈(雪 ) 같아 보이기도 하였다'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청주연혁지의 말미에는 '1만의 시민은 너도나도 들떠서 취기에 걷는 모양이 비틀비틀 하는 것 같아 무리를 지어 일렬로 꽃 아래를 거닐었다. 원근의 도시인은 증기기간차를 이용하여 와서 감상을 하다가 돌아가는 것을 잊기도 하였다'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일본인들은 청주읍성을 허문 후 이중 동쪽 성벽을 따라 벚나무를 심었다. 여지도서의 청주읍성.

이로 미뤄 1910년대의 청주의 지금의 진해에 버금갈 정도로 벚꽃 도시로 명성을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원근의 도시인은 증기기간차를 이용하여 와서 감상을 하다가 돌아가는 것을 잊기도 하였을' 정도면 멀리 조치원에서도 무심천 벚꽃구경을 왔음을 알 수 있다.

청주연혁지의 무심천 벚꽃 내용은 공부할 대목이 더 남아 있다. 인용문을 보면 당시 '청주 청년회'가 주축이 돼 청주 곳곳의 동서남북 방향에 벚나무를 식재했다. 문제는 청주 청년회가 내국인이가, 아니면 일본인인가 하는 점이다.

여러 정황상 청주사람이 아닌 도래한 일본인으로 보여지고 있다. 만약 이들이 한국인이었다면 '회원들은 상호 감시하여 한국인 어린아이들이 나뭇가지를 꺾지 못하도록 경계하여…'라는 표현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우리 어린이들이' 또는 '우리나라 어린이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었을 가능성이 높다.

자료확인 결과, 일제 강점기에는 '청주 청년회'가 등장한다. 전순동 충북대 전 교수의 논문을 보면 유세면, 김태희, 김영식, 김종원, 정규택 등이 중심이 된 청주 청년회가 1920년 6월 19일 앵좌극장에서 출범식을 가졌다. 그러나 이때는 1920년으로 벚꽃을 식재했다는 1914년과 6년의 시간 편차가 난다.

청주연혁지의 인구와 관련된 내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인회 및 소학교 창시'라는 부분을 보면 1909년 청주에 들어온 일본인은 총 110여호에 3백여명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들이 무심천에 벚꽃을 심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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