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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3.02.14 16:33:16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조선왕조실록은 많이 알려졌으나 고려실록은 다소 생소하다. 그러나 고려실록도 임진왜란 직전까지 분명히 존재했다. 그것도 우리고장 충주에 존재했다. 고려 조정도 조선과 마찬가지로 역대왕의 실록을 만들어 처음에는 수도인 개성에만 보관했다.

그러다가 이자겸난 때, 보관해 오던 실록이 소실되자, 이때부터 개성에 한 벌, 그리고 외사고로 불리는 지방에 한 벌씩 나눠서 보관했다. 당시 고려실록의 지방사고가 처음 들어선 곳은 개성에서 먼 남쪽인 가야산 해인사였다.

이 해인사에는 관리인을 별도로 주둔시키지 않고 스님들로 하여금 실록을 자체 보관토록 했다. 그러나 고려실록을 이후 전국 여러 곳으로 옮겨다니게 된다. 책은 무게가 많이 나가 운반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고려실록은 자주 옮긴 것은 왜구의 잦은 출현 때문이었다. 해인사에 보관돼 있던 고려실록은 이후 전국 여러 곳을 전전하던 끝에 우리고장 충주 개천사로 옮겨지게 된다. 이때가 고려 우왕 7년, 그러니까 서기 1381년이 된다. 고려사에는 이런 표현이 보인다.

'7월에 왜적이 김해부에 침입하였다. 경상소 안렴사가 보고하기를 "(…) 왜적이 안동 등지를 침공하려 하니, 보주(경북 예천) 보문사에 장서한 역사서적들을 내지로 옮기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였으므로, 사관을 보내 역사 서적들을 충주 개천사로 옮겨두었다.'-<고려사 권134 열전47>

충주 개천사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사찰이다. 대신 정토사지라는 이름은 많이 알려져 있다. 바로 정토사 전에, 그 자리에 존재했던 절이 개천사다. 지금의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일대가 되나, 안타깝게도 충주댐이 건설되면서 완전 수몰됐다.

현재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국보 제 102호인 홍법국사 실상탑과 보물 제 359호인 홍법구사 탑비는 바로 우리고장 충주 정토사지에서 옮겨간 것이다. 그러나 고려실록은 충주 개천사에 계속 보관되지는 않았다.

'왜적이 함부로 내지로 침입하므로, 충주 개천사에 두었던 역사 서적들을, 죽주 칠장사로 옮겨다 두었다.-<고려사 권 135 열전 47> 위와 지금의 열전은 모두 고려 제 32대 임금인 우왕을 의미하고 있다.

지금은 사라진 충주읍성 성문 모습.

그러나 이후 왜적이 이웃 안성, 음성까지 침입하자 이번에는 드디어 우리고장 충주읍성안(지금의 충주 성내동)으로 옮겨진다. 이때부터 고려실록은 더 이상 옮겨다니지 않고, 고려사와 각종 역사서를 편찬하는데 가장 중요한 사료로 활용됐다. 이때가 조선 태종 12년, 그러니까 1412년 이다. 실록에 이런 표현이 보인다.

'지금 고려음악의 대강은 중국에서 제정한 것입니다. 지금 신 등이 충주사고의 형지안(形止案)을 상고하여 보면….'-<태종실록>

인용문 중 '형지안'은 원적부를 의미하고 있다. 형지기라고도 불렸던 형지안은 전근대 사회에 공·사용으로 널리 쓰이던 용어로 사건의 전후사정을 기록한 전말이나 상황보고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인용한 문장을 풀어서 설명하면, '지금 충주사고에 중국에서 건너온 음악 원본이 보관데 있는데, 그것을 살펴보면….'라는 정도가 된다. 이처럼 충주사고에는 국내서 발간된 서적뿐만 아니라 중국서 건너온 외국 서적도 많이 보관돼 있었다. 고려의 정보 저장소 역할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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