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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11.11 14:31:37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당시 경상우수영는 원균(元均·1540∼1597)이 맡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왜수군과의 전력차가 너무 심하자 배를 불태운 후 육지로 도망하려 했다.

'왜병들이 바다를 건너오자 경상 우수사 원균(元均)은 대적할 수 없는 형세임을 알고 전함과 전구를 모두 물에 침몰시키고 수군 1만여 명을 해산시키고 나서 혼자 (…) 육지를 찾아 적을 피하려고 하였다.'-<선조수정실록>

이때 원균을 붙잡아둔 인물이 부하 이운룡이다. 그는 원균의 앞을 가로 막으며 "장수는 경내에서 죽는 것이 마땅하다"며 눈물로 호소했다.

'사또가 나라의 중책을 맡았으니 의리상 관할 경내에서 죽는 것이 마땅하다. 이곳은 바로 양호(兩湖)의 요해처로서 이곳을 잃게 되면 양호가 위태롭다. 지금 우리 군사가 흩어지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모을 수 있으며 호남의 수군도 와서 구원하도록 청할 수 있다.'-<〃>

원균을 결국 경상우수영을 버리지 못했다. 대신 이운룡의 건의대로 이순신의 전라좌수영과 '연합함대'를 구성하기로 했다. 그러나 상대 진영의 전체 동의가 있어여만 가능한 연합함대 구성은 쉽지만은 않았다. 이때 양진영을 오가며 청병사절 역할을 한 인물이 이영남(李英男·1563∼1598)이다.

이영남의 묘소로 진천 덕산면 기전리에 위치하고 있다.

그는 임진왜란 발발 당시 원균 휘하의 율포권관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권관은 조선 시대 변경의 작은 진보(鎭堡)를 맡았던 종9품의 무인 벼슬을 말한다. 그는 인간성과 성품에 매료되어 이미 마음속으로 이순신 충복이 된 상태에 있었다. 물론 두 사람은 구면이었다.

이 점이 연합합대 구성을 가능하게 했다. 이영남의 연합함대 구성 제의를 받은 이순신은 그래도 부하들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다. 이에 대부분의 부하들은 처음에는 반대했다. 그러나 얼마안가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연합함대 구성에 동의하게 된다.

'영남의 말을 듣고 여러 장수들은 대부분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지역을 지키기에도 부족한데 어느 겨를에 다른 도에 가겠는가' 하였다. 그런데 녹도만호 정운과 군관 송희립만은 강개하여 눈물을 흘리며 이순신에게 진격하기를 권하여 말하기를 '적을 토벌하는 데는 우리 도와 남의 도가 따로 없다. 적의 예봉을 먼저 꺾어놓으면 본도도 보전할 수 있다.' 하니 순신이 크게 기뻐하였다.'-<〃>

서로가 인간적으로 통했던 이순신과 이영남은 이승에서의 마지막도 함께 했다. 둘은 패주하는 왜군을 한명이라도 더 수장시키기 위해 노량해역에 진을 쳤고, 그 결과 바닷물이 붉게 물들 정도였다. 이때 왜군의 탄환이 날아왔고 두 사람을 그것을 비키지 못했다. 당시 좌의정 이덕형의 보고 내용이다.

'왜적의 시체와 부서진 배의 나무 판자·무기 또는 의복 등이 바다를 뒤덮고 떠 있어 물이 흐르지 못하였고 바닷물이 온통 붉었습니다. 통제사 이순신과 가리포첨사 이영남 등 10여 명이 탄환을 맞아 죽었습니다. 남은 적선(賊船) 1백여 척은 남해(南海)로 도망쳤고…'-<〃>

이때 이영남의 나이 36살이었다. 이영남은 우리고장 진천군 덕산면 기전리 출신으로, 죽어서도 돌아와 그곳에 묻혔다. 도기념물 제 144호이다. 이영남은 선무공신에 이어 숙종 때 병조판서(오늘날 국방장관)에 추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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