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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8.28 16:08:1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영규(靈圭·?∼1592) 대사는 공주 청련암에서 수도생활을 하던 중 임진왜란을 만나 청주성과 금산전투에 잇따라 참전했다.

속향이 공주인 영규대사와 옥천에 기거하고 있던 조헌은 '공주'라는 지역성을 매개로 만났다. 선조수정실록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승려 영규는 당초 공주 산사에 있었는데, (공주)목사 허욱(許頊)이 불러 승장을 삼았으나, 하려 하지 않다가, 강권한 뒤에야 응하였다. 일단 무리를 모아 군대를 만들고 나서는 오직 조헌만을 따라 진퇴하였다."

영규대사는 조헌과 더불어 청주성 탈환의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그러나 조헌과 마찬가지로 승리 후에 관군이 공다툼 시비를 걸어온다.

"충청병사 이옥(李沃)은 영규가 성을 함락시킨 뒤에야 비로소 들어가 웅거하였는데 적이 되돌아올까 두려워하여 즉시 성을 헐고 곡식을 태우게 하고 버리고 지키지 않았으므로 청주의 사람들이 그(곡식)의 살점을 먹으려고 하였는데 마침내는 적을 물리친 것을 자기의 공으로 삼아 거짓으로 보고하여, 상을 받았으니…"-<선조실록>

영규대사 영정 부분

후에 충청병사 이옥은 이같은 사실이 발각돼 삭탈관직을 당했다. 영규대사와 조헌은 청주성 전투 후 선조를 보위하기 위해 북쪽으로 가려했으나 방향을 바꿔 금산으로 향했다. 이때도 관의 술수가 있었다. 선조수정실록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순찰사의 의도는 단지 그들이 북쪽으로 가는 것을 막는 데 있었을 뿐이었고 또 그의 군대를 저지시킴으로써 사졸(의병)이 점차 분산될 것을 계산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조헌의 휘하에는 단지 7백 의사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당초부터 생사를 같이하기를 맹세하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떠나지 않고 마침내 영규와 함께 금산으로 달려갔다."

이때의 충청도 순찰사는 윤국형이라는 인물이었다. 임란 금산전투는 청주성 전투 18일 후에 일어났다. 그러나 금산으로 달려간 영규대사는 처음에는 조헌에게 '즉각적인 전투'를 만류했다, 싸울 준비가 너무 안 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규가 간곡한 말로 만류하기를 '반드시 관군이 뒤에서 지원을 해 주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 하였으나 조헌은 울면서 말하기를 '군부(君父)가 어디에 계신가. 군주가 치욕을 당하면 신하는 목숨을 버려야 하니 그때가 바로 지금이다. 성패와 이해 관계를 어떻게 돌아볼 수 있겠는가' 하고 북을 치며 행군하였다."-<선조수정실록>

인용문은 영규대사가 패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조헌과 행동을 함께 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의리정신 때문이었다. 선조수정실록은 이렇게 썼다.

"영규도 '조공(조헌 지칭)을 혼자 죽게 할 수는 없다' 하고 이에 거느린 승려 수백 명과 진을 합하였다. (…) 군사들은 맨 주먹으로 육박전을 벌였는데 한 사람도 자리를 떠나는 자가 없이 모두 조헌과 함께 전사하였으며 영규도 전사하였다."

선조 임금은 영규대사의 청주성 전공을 보고받고 당상관 벼슬과 함께 옷을 하사하지만 영규대사는 이 옷을 받지 못한다. 옷이 도착하기 전에 금산전투에서 전사했기 때문이다.

"당상관에 승진시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명하고 비단옷 한 벌을 내려 주었다. 영규가 금산에서 죽었으므로 비단옷은 중도에서 되돌아갔다."-<연려실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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