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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8.19 18:01:0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한자 '表'(표)는 그것이 명사로 사용되면 '겉', '바깥' 등의 뜻을 지닌다. 반면 동사로 사용되면 '밝히다', '드러내다'로 쓰인다. 따라서 사당 '表忠祠'(표충사)에는 '충성심을 밝힌다'라는 뜻이 들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고장 옥천군 안남면 도농리에 의병장 조헌 선생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표충사'가 자리하고 있다. 조헌의 영정을 모신 표충사는 충남 금산군 복수면에도 위치하고 있다. 두 사당은 명칭은 같으나 다른 점이 있다.

옥천 안남의 표충사에는 조헌 뿐만 아니라 아들 완기(完基·1570∼1592)의 위패도 함께 모셔져 있다. 조헌은 슬하에 4남2녀를 뒀다. 지금은 정실과 소실 관계가 거의 성립하지 않고 또 구분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그러나 굳이 따진다면 완기만이 정실 신씨 사이에서 태어났고, 나머지 3남2녀는 측실이다. 적자 완기는 22살에 사망했기 때문에 자식을 두지 못했다. 나머지 3남2녀는 대부분 장성했다.

'조완도는 강음현감이고, 조완제는 전옥서 봉사이며, 다음은 조완배이다. 맏딸은 김노에게, 다음은 김성룡에게 시집갔다. 조완기는 자식이 없다.'-<신독재전서>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완기는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킨 아버지 조헌을 따라 종군하였다. 그는 아버지 조헌의 지극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항상 그 곁을 떠나지 않은 것으로 돼 있다. 실록에 그의 마지막 모습이 숙연하게 표현돼 있다.

'적이 퇴각한 뒤에 문생들이 가서 7백 명의 시체를 거두어 무덤 하나를 만들고 칠백의사총(七百義士塚)이라고 표시하였다. 조헌의 아들 조완기(趙完基)는 신체가 장대하고 성품과 도량 역시 절륜하였다. 군사가 패하게 되자 일부러 관복(冠服)을 화려하게 입었으니 그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죽고자 한 것이다. 이에 적이 그를 주장(主將)으로 오인하고 그 시체를 찢었다.'-<선조수정실록>

이번 인용문의 앞 부분에는 전회에 밝힌 '이튿날 동생 조범(趙範)이 몰래 전쟁터에 들어가서 시체를 거두었는데, 조헌은 깃발 아래에서 전사하였고 장졸들이 모두 곁에서 빙둘러 전사해 있었다'라는 표현이 있다.

임진왜란 금산전투의 모습으로, 흐름도를 그리면 전투가 끝나자 동생 조범이 형 조헌의 시신을 먼저 거뒀고 이어 조헌의 문하생들이 나머지 7백여명의 시신을 거두어 집단묘지를 만든 것이 된다.

조헌 부자의 금산에서의 슬픈 소식이 알려지자 당시 조정은 바로 벼슬을 추증하고 임용하는 등 은전을 베풀었다.

'일(금산전투 지칭)이 알려지자 조헌에게 이조 참판이 추증되고 그의 아들 조완도(趙完堵)를 녹용(錄用)하였으며 그 집에 월름(곡식 급여 일종)을 지급하였다. 이광륜은 사헌부 집의에 추증되었다.'-<선조수정실록>

광해군 때에는 사당 표충사도 세워졌다. 그러나 이때는 아들 완기의 위패는 모셔지지 않았다. 그의 위패가 봉안된 것은 훨씬 후대인 영조 때였다. 그것도 옥천 한 유생의 상소에서 비롯됐다.

'충청도 옥천 유생 홍계연(洪啓淵) 등이 상소하여 문렬공 조헌의 표충사를 조헌의 신영(新塋) 아래에 옮기고 또 조헌의 아들 조완기로써 배향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해조로 하여금 품처하게 하였다.'-<영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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