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12.08.07 15:57:59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임진왜란 청주성 전투의 시작에 대해서는 음력 8월 1일과 2일로 약간은 엇갈린다. 그러나 1일 시작됐다는 내용이 보다 많다. 이날의 의병 공격은 3개 방향에서 동시에 시작됐다. 조헌과 영규대사의 연합 의병은 서문을 공격했다.

반면 청주 부모산에 진을 치고 있었던 박춘무 의병군은 남문을 공격했다. 그리고 연기 쪽으로 퇴각해 있었던 방어사 이옥의 관군은 미호천을 건너와 청주읍성 북문을 공격했다.

이날 전투가 치열했는지 여부는 사료마다 표현이 다소 엇갈린다. 선조실록은 "이날 밤 적이 화톳불을 피우고 기(旗)를 세워 군사가 있는 것처럼 위장하고 진영을 비우고 달아났다"고 적었다.

반면 이긍익(李肯翊·1736∼1806)은 연려실기술에서 "이날 밤에 적이 저희들의 시체를 불태웠는데, 3일 동안이나 꺼지지 않았다. 적은 북문(北門)으로 빠져 도망쳐 달아났다"라고 서술했다.

임란 발발 직후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한 윤국형(尹國馨·1543~1611)은 문소만록에서 "이리하여 8월 1일에 크게 싸워서 비록 적의 머리를 베는 공은 세우지 못했지만 적도들이 화살과 총탄에 많이 맞아 그 형세가 매우 고립되었다. 이튿날 새벽에 적은 무리들을 다 이끌고 도망했다"라고 표현했다.

전과가 다소 엇갈리나 한 가지 공통적인 표현이 있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세 사료 모두에서 '왜군이 청주성 전투가 있던 그날 밤에 야음을 틈타 도주했다'는 내용이 공통적으로 관찰되고 있다.

의병과 관군은 청주성 전투가 끝난 후에도 또 다시 티격태격 해야만 했다. 청주성 안에 남겨져 있던 군량미 때문이었다. 조헌은 굶주리고 있는 청주 백성들에게 나눠주자고 했으나 방어사 이옥은 이를 반대했다. 선조실록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조헌이 성에 들어가니 창고의 곡식이 그대로 있었다. 방어사 이옥(李沃)이 와서 보고 말하기를 '이것을 남겨두어 적이 다시 점거하게 할 수 없다.' 하고 모두 태워버렸다."

비록 청주성을 탈환했으나 충청도를 포함한 전국민의 생활상은 처참함 그 자체였다. 당시 충청도관찰사로 있었던 윤국형은 문소만록을 또 이렇게 적었다.

"임진년 난리 후로 백성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비록 대가 세족이라도 모두 생업을 잃고 거지가 되어 돌아다녔으며, 여자들은 신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적들에게 몸이 더럽혀진 자가 몹시 많았다. 시체는 들에 가득하고 매장된 것은 거의 없었다. 아비가 자식을 팔고 남편이 아내를 팔았으며…'

문소만록은 계속 해서 "계사년 봄에는 사람들끼리 서로 잡아먹고 시체를 쪼개어 앞을 다투어 먹었으며, 골육지간끼리도 서로 죽이는 자도 있었으니, 우리 동방 변란의 참혹함이 오늘과 같은 때는 없었다"라고 기술했다.

계사년은 임진왜란 발발 1년 후인 1593년을 말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임란 후의 농토는 거의 황폐화됐다. 역시 문소만록은 이렇게 적었다.

"중외의 들판에는 쑥대만 우북하고, 모 심은 곳이 3분의 1도 안 되어 흉년이나 다름이 없었다. 굶주리고 병들어 죽은 자가 반이 넘었기 때문에 김을 맬 사람이 없어서 가을에 수확할 것이 없었지, 하늘이 풍년이 들지 않게 한 것은 아니었다."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