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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6.12 15:39:1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조선시대에는 수년마다 기근이 찾아왔고 수십년에 한번씩은 이른바 대기근 현상이 나타났다. 지금도 그렇지만 농사는 기상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

조선 조정은 그때마다 진휼정책을 실시했다. 그 기본은 인접한 도(道)의 진휼미를 기근이 발생한 지역으로 이동시키는 것이었다. 가령 강원도에 기근이 발생했을 경우 충주 경원창의 비축미를 육로를 통해 이동시켰다.

실록은 우리고장 충청도에도 대기근이 심심찮게 찾아왔던 것으로 기록했다.

'전라도의 쌀 5만 석을 충청도에 옮겼다. 이보다 먼저 본도 감사가 아뢰기를, "기민(飢民)의 전후 수효의 총계가 70만 1천 2백 89인인데 (…) 비록 전라도의 쌀 9만 석을 조운(漕運)하더라도 진휼하여 구제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였으므로, 이 명령이 있은 것이다.'

인용문은 세종대에 발생한 기근이 얼마나 심했는가를 수치로 보여주고 있다. 먼저 기민의 숫자가 70만1천여명이라고 쓰고 있다. 당시 인구 규모를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또 이들은 구휼하려면 쌀 9만석이 필요하나 전라도에서 방출되는 것은 고작 5만석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세종대에는 기상재해에 따른 대기근이 자주 발생했다.

'군자감의 묵은 쌀·콩 합하여 1만 석과 유후사(留後司)의 묵은 쌀 1만 석을 충청도의 북쪽에 가까운 각 고을로 조운(漕運)하였다.'-<세종실록>

'명하여 유후사(留後司) 쌀 1만 석과 경강(京江) 창고의 쌀 1만 석과 전라도의 쌀 3만 석을 충청도에 수운(輸運)하여 굶주린 백성을 진휼하게 하였다.'-<〃>

궁금한 대목이 있다. 이들 진휼미는 어떤 루트를 통해 우리고장느로 운송됐을까. 쌀 등 진휼미는 무겁기 때문에 육로 운송은 매우 힘들다. 따라서 물길, 즉 수운을 거의 이용했다.

앞서 서술한 인용문에 '조운하였다', '수운하여'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성에서 출발하는 진휼미는 한강을 거술러 올라와 충주에서 하역됐다.

반면 전라도 구휼미는 금강을 거술러 올라온 후 충북 남부지역에 배급됐다. 그러나 앞서도 언급했듯이 진휼미로는 허기를 면하는 정도였다. 때문에 그 부족량은 구황식품으로 대체해야 했다.

한명회는 대단히 정치적이고 탐욕스런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부황식물을 손수 먹어볼 정도로 애민적인 면도 있었다. 실록에 이같은 장면이 나온다.

'신은 듣건대, 왜인(倭人)이 갈근(葛根)을 먹는다 하기에 시험삼아 갈근을 채취하다가 껍데기를 벗기고 말려서 가루로 만들어 쌀 싸라기와 섞어서 죽(粥)을 만들어 먹었더니 배를 채울 만하였으며…'-<성종실록>

갈근(칡뿌리)은 지금도 즙을 만들어 먹지만 쌀싸라기와 섞어서 죽을 만들어 먹지는 않는다.

한명회는 또 '송자(松子)도 가루를 만들어서 싸라기와 섞어 먹으면 매우 좋습니다. 신이 일찍이 이를 썼었는데, 지금은 이 방법을 써서 흉년을 구제함이 좋겠습니다'(성종실록)라고 아뢰었다.

인용문의 '송자'는 솔잎이 아닌 솔방울을 일컫는다. 이맘 때가 되면 새로 나온 솔방울은 연두색으로 변하며 빠르게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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