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12.04.05 18:18:0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호패(號牌)는 조선시대 16세 이상 남성이면 누구나 차고 다녀야 할 물건이었다. 이 호패제도는 호구(戶口) 파악, 유민(流民) 방지, 각종 국역(國役)의 안정적인 조달 등을 위해 도입됐다.

호패에는 착용자의 신분, 지위, 거주지 등 기본적인 인적 사항을 명문으로 새겼다. 따라서 오늘날로 치면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주민등록증과 비슷한 일면을 지녔다.

호패는 2품 이상과 삼사(三司)의 관원인 경우에만 관청에서 제작한 것을 지급받았다. 나머지 대부분의 경우는 백성 각자가 성명, 출생신분, 직역, 거주지 등을 패에 새긴 후 관청에 제출하면 관청이 이의 사실 여부를 확인한 후 낙인을 찍어 발급하는 형식을 취했다.

현재 문신 김희(金憙, 1729∼1800)의 호패가 중앙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그의 호패 앞면에는 '김희(金憙) 기유생(己酉生) 계사문과(癸巳文科)'라고, 뒷면에 '갑진(甲辰)'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를 통해 김희라는 인물은 기유년(영조 5, 1729)에 태어나 계사년(영조 49, 1773, 당년 45세)에 문과에 급제했으며, 갑진년(甲辰年, 정조 8, 1784)에 이 호패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호패법은 조선 전기인 태종 때 처음 도입됐다. 이의 실행을 건의한 인물이 황자후(黃子厚·1363∼1440)다. 그는 서두에 언급한 내용중 특히 유민방지 필요성을 강조, 호패법 실시가 절실하다고 상언했다. 상언은 글 즉 문서 형식으로 상소를 하는 것을 말한다.

'전 인녕부사윤 황자후가 호패의 법을 행하도록 청하였다. 상언하기를, "국가에서 비록 재인(才人)이나 화척(禾尺)의 무리들로 하여금 유이(流移)하지 못하도록 하더라도 호패가 있지 않은 까닭으로 이사하는 것이 무상하고 농업을 일삼지 않습니다. 원컨대, 이제부터 비단 이러한 무리뿐만 아니라, 또 모든 백성들에게 모두 호패를 지급하소서." 하니…'-<태종실록>

황자후의 이같은 상언에 대해 태종은 "이 앞서 호패를 말하는 자가 또한 많았다. 나 또한 항상 이를 행하고자 하였다. 그 시산(時散) 양부(兩府)와 각사로 하여금 그 가부를 의논하여 아뢰어라"라고 답변한다. 이는 호패법 건의가 황자후가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호패법 실시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황자후의 건의였다.

오랫동안 논란이 있었던 호패법은 황자후가 건의를 한 바로 이날 최종적인 결론이 났다. 태종실록은 이 부분에 대해 "(호패법) 이제 시행하고자 하여 백사(百司)로 하여금 가부를 의논하게 하니, 가(可)하다고 하는 자가 많이 있다"하니, 여러 신하들이 모두"예, 예"하였다"라고 썼다.

황자후는 지금의 대전광역시 회덕 사람이다. 그러나 황자후는 전회에도 언급했듯이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하는 등 우리고장과 깊은 인연을 맺었던 인물이다. 이때의 충청감영은 충주나 청주목에 위치했었다. 그가 졸하자 세종은 이례적으로 조문을 내려 깊은 애도의 뜻을 표했다.

"경은 품성이 온량하고 조행(操行)이 충직하였도다. 이름이 사판(仕版)에 올라 빛난 직질(職秩)을 두루 지냈도다. 다섯 번 고을을 맡았는데 백성이 한 해만 더 있어 주기를 원하였도다."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