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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3.20 14:04:32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진천군의 지명변화는 세종실록지리지에 자세히 실려 있다.

'본래 고구려의 금물노군, 만노군이었는데 신라가 흑양군으로 고쳤고, 고려가 진주(鎭州)로 고쳤다. 1259년(고려 고종 46)에 위사공신 임연(林衍)의 내향(內鄕)이라 하여 창의현(彰義縣)으로 승격시켰다.'-<세종실록지리지>

영조 때 쓰여진 여지도서(1757)는 이후에 지명 변화에 대해 '임연이 죽자, 다시 진주현으로 하였고, 태종 때 진천현으로 고쳤다. 연산군대 경기도에 이속되었다가, 중종 초에 다시 충청도로 복원되었다'라고 적었다.

인용문의 내용은 지금의 진천이라는 지명이 고려 때 지명이 진주(鎭州에서 비롯됨 것임을 알게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일부 지역 사학자는 '진천의 호족이 왕건에 대항한 반란군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워 '진(鎭)'자가 유래하였다'라고 밝혔다.

이 주장의 대칭점에 위치하는 것이 청주의 '청'(淸) 자이다. 방금 전에 '왕건에 대항한 반란군'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바 있다. 이때의 반란군은 분명히 청주사람을 지칭하고 있다. 당시 청주는 왕건이 아닌 궁예에게 매우 우호적이었다.

이를 뒷받침하듯 궁예는 '철원에 성을 쌓는데 청주사람 1천여명을 데려갔다'고 사료는 적고 있다. 일설에는 궁예가 유년시절에 청주에 살았고, 그래서 청주가 반왕건의 고장에 됐다는 얘기도 있으나 확인은 잘 안 되고 있다.

918년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 태조로 즉위하자 청주 사람 대부분이 이에 불만을 갖게 되었다. 청주 재지세력이 반발하였고, 재경 청주세력들이 반란을 꾀하였다.

이와 관련, 고려사는 '왕건이 즉위하자 9월에 청주 출신의 순군리 임춘길(林春吉)이 동향출신의 배총규(裵悤規) 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고, 10월에는 청주수(淸州帥) 진선(陳瑄), 선장(宣長) 형제가 모반을 꾀하였다'고 적었다.

이때 청주의 반란군을 진압할 왕건의 군대는 지금의 진천에 주둔했다. 이후 청주 반란군이 진천 주둔군에 의해 진압되고 그래서 진천이 '진압할 鎭) 자를 얻게 됐다는 유력한 설이 있다.

방향의 다소 다르지만 궁예의 측근으로 아지태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분명이 청주 인물로 궁예와는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고려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궁예가 아첨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같은 고을(청주) 사람인 입전과 신방 그리고 관서 등을 참소하였다. 이 참소를 해당관리가 심리하였으나, 수년 동안이나 판결이 나지 않자 고려 태조가 그 흑백을 분간하여 판결을 내리니 아지태는 복고됐다.'

참소는 남을 헐뜯어서 죄가 있는 것처럼 꾸며 윗사람에게 고하여 바치는 것을 일컫는다. 반란이 더이상 일어나지 않는 등 청주가 조용한 지역이 됐다. 그래서 '푸를 淸'이 아닌, '맑을 淸' 자를 쓰게 됐다는 설 함께 제기돼 있다. 흔히 전라도 광주를 가리켜 '빛고을'이라고 한다.

그러나 청주를 글자대로 '물고을'로 부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면이 있다. 청주는 물이 그리 풍족한 도시는 아니다. 미호천과 무심천이 도심과 주변을 흐르나 두 하천은 금강의 지류다. 이처럼 청주가 '淸' 자를 얻은 데는 다소 복잡한 사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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