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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2.19 16:17:28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조선전기 호불군주(好佛君主)로는 세종과 세조가 있다. 세조는 속리산 복천암과 정이품송 전설에서 보듯 초지일관 불교를 사랑했다. 세종은 다소 달랐다. 처음에는 불교에 대해 강압적이고 비판적이었다.

조선전기 여러 종파가 난립하자 선종과 교종 등 두 종단만 남기고 정리한 군주가 바로 세종이었다.

'그러므로 조계·천태·총남 3종을 합쳐서 선종으로, 화엄·자은·중신·시흥 4종을 합쳐서 교종으로 하며, 서울과 지방에 중들이 우거할 만한 곳을 가려서 36개소의 절만을 두어, 양종에 분속시킬 것입니다.'-<세종실록>

당시 예조가 건의한 내용으로, 세종은 이를 모두 수용했다. 그 결과, 지금의 충북에는 보은 속리사와 충주 노은면의 보련사만 남고 모두 산문을 닫아야 했다. 대신 살아 남은 사찰에는 재정지원 규모가 확대됐다.

'충청도 보은 속리사는 원속전이 60결인데, 이번에 1백 40결을 더 주고, 거승은 1백명이며, 충주 보련사는 원속전이 80결인데, 이번에 70결을 더 주고, 거승은 70명입니다.'-<세종실록>

세종은 말년에 가족사에 비운이 잇따르자 불교에 크게 의지했다. 그러나 궁궐 안의 호불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임금이 바뀌자 대신들의 상소가 경향을 가리지 않고 빗발쳤다. 다음은 충청감사를 지냈던 홍흥(洪興)이라는 인물이 올린 상소문이다.

"신이 감사(監司)로 있을 때 보은현 속리사(俗離寺)의 중이 본사의 전세(田稅)를 거두면서 함부로 외람된 짓을 행하므로, 신이 장차 형신(刑訊)하고자 하여 사유를 갖추어 치계하였는데, 도망하여 숨고 나타나지 아니하니, 이 중의 무리가 국법을 업신여기는 것이 매우 심합니다."-<성종실록>

홍흥의 상소는 계속 돼, "속리사(俗離寺)의 주지(住持)를 혁파(革罷)한다면 다른 절의 주지들 또한 반드시 스스로 근신(謹愼)할 것"(성종실록)이라고 주장했다. 속리사를 본보기로 처벌하면 다른 사찰도 순해진다는 뜻이다.

홍흥의 상소가 이른바 사상논란을 촉발시켰다. 김수동은 "사찰은 곡식만 허비하는 곳", 이세인은 "중의 무리를 사대부 예로 대접할 수 없다"며 성종을 압박했다.

그러자 성종은 "중 하나가 함부로 외람된 짓을 하였다 하여 대전을 고칠 수 없으니 감사가 알아서 죄를 다스려라"(성종실록)라고 반응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홍흥은 우리고장 충청도 감사를 지냈다. 그는 불교를 강하게 탄압했지만 사관으로부터는 호평을 받았다. 당연히 조선시대 사관도 유교논리로 무장한 동패였다.

'사신이 논평하기를, "홍흥은 홍응의 아우인데, 성품이 방엄하고 정직하여 사람들이 감히 사사롭게 범하지 못하였다. 홍흥은 이르는 곳마다 불편한 일이 있으면 반드시 물리친 후에야 그만두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그를 꺼려하였다." 하였다.'-<성종실록>

그는 연산군 때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말년에 이르러서도 꼿꼿한 성격과 유자의 자세를 잃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관은 홍흥이 "내가 병으로 직무를 보지 못한 지가 오래되었는데, 어찌 감히 임금의 녹을 받겠는가", "나이가 많고 벼슬이 높으니 지금 죽어도 또한 만족하다"(연산군일기)라는 말을 남기며 죽어간 것으로 그의 졸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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