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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1.04 18:37:1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김승환

충북대교수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늘에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이어서 "정말로 잊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간단한 것 같은 이 두 문장은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간절히 기도한다는 것은 그만큼 잊기 어렵다는 것이고 둘째, 잊고 싶다는 것은 잊지 못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문장의 심층구조는 '잊고 싶지만 잊을 수가 없다.'이다. 그렇다면 이 화자는 왜 이런 고통스런 발화를 했을까· 잊고 싶지만 잊지 못하는 정신적 상처인 트라우마(trauma)가 있기 때문이다.

그 발화자가 용서하고 화해한다는 타자는 누구인가. 그는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는 목사인 전직 수사관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똑같이 일할 것이다." 이어서 "그것이 당시 상황에서는 애국이었다." 간단한 것 같은 이 두 문장 역시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잘못을 했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째, 이 사안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목사 안수를 받을 정도로 깊은 기도를 했다면서 왜 이런 발화를 했을까· 이 발화자 역시 마음 속 깊이 치유되지 않는 트라우마와 극복하지 못하는 고통이 있는 것이다.

앞의 발화자는 김근태 전국회의원이고 뒤의 발화자는 이근안 전 수사관이다. 민주화운동의 투사 김근태는 1985년 대공분실에서 모진 전기 고문을 당했다고 전한다. 전수사관 이근안은 고문을 가한 적이 없다고 강변했지만 당시까지 고문이 공공연하게 행해졌다는 점에서 그의 주장은 개연성이 낮다. 한편 당시 수사관들은 바닥을 기면서 살려달라고 말하라고 지시했으며, 너희들 소원대로 민주화가 되면 나에게 복수하라고 했다는 말은 개연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문 수사관은 고문한 사실이 없고, 설령 고문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애국심의 발로였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 본성의 문제와 특별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행위와 심리에 대한 문제가 대두한다.

심리학자 밀그램(S Milgram, 1933 - 1984)은 복종실험으로 알려진 특이한 실험을 했다. 분리된 장소에서 A는 전기충격을 받고 B는 전기 충격을 가하는 것이다. A가 틀린 답을 할 때마다 충격의 강도를 높인다. 여기서 심리학자 밀그램은 이상한 현상을 목도했다. B가 비이성적으로 전기충격을 가한다는 사실이다. A의 비명을 듣고서 B는 자신도 모르게 전기충격의 강도를 높여 나갔다. 이 실험은 인간의 폭력성과 가학성(加虐性)의 문제로 비화되었고, 실험이지만 비인간적이라는 이유로 중단되었다. 이 밀그램의 인간심리 실험과 고문의 비이성적 행위는 유사한 점이 있다. 그러니까 인간내면의 폭력성이 국가폭력(國家暴力)으로 확산된 것이 바로 고문이다.

그 어떤 경우에도 고문은 금지되어야 한다. 고문은 한 개인을 파멸시킬 뿐 아니라 집단과 국가를 파멸시킨다. 혹자는 더 큰 파멸을 막기 위해서 고문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근대 민주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고상한 존재이며 근대사회에서는 이성과 합리가 통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어떤 동물도 하지 않는 고문(拷問)은 가장 사악한 범죄 중의 하나이므로 모든 국가와 사회에서 추방되어야 한다.

김근태 전국회의원은 한국사회에 큰 기여를 하고 세상을 하직했다. 그의 용감한 고발과 지혜로운 행동으로 인하여 이제 한국인은 공공권력으로부터 고문을 당하지 않게 되었다. 혹자는 민주투사 김근태에 대한 과도한 의미부여라고 폄하하지만 한국에서 고문이 없어졌다는 것은 이데올로기로 측정할 사안이 아니다. 우파좌파를 막론하고 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고문 없는 세상'을 만든 그에게 진심으로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애써 원한을 잊고자 했던 그의 인간적 고뇌를 잊지 말아야 한다. 밝고 맑고 아름답고 평등한 세상을 위한 한 인간의 숭고한 노력은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수치스런 고문의 기억을 가슴에 안고 평생 살아온 김근태, 그의 영혼에 성호를 하나 긋는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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