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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속의 철학자로 널리 알려진 디오게네스는 엄격한 금욕주의자였다. 그는 금욕주의 학파인 견유학파(犬儒學派)를 대표할 만한 인물이었다. 가진 것이라곤 지팡이와 허리에 찬 표주 박 뿐이었다. 어느 날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통 속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디오게네스를 찾아왔다. 대왕이 그에게 소원을 묻자 그는 "제발 몸을 비켜서서 폐하의 그림자를 치워 달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알렉산더 대왕은 심히 부끄러워하며 "내가 만일 알렉산더가 아니었더라면 디오게네스가 되었을 것"이라고 자탄했다. 이것이 페르시아 등을 정복하며 유라시아에 걸쳐 대제국을 형성한 알렉산더 대왕과 마음을 정복한 디오게네스의 유명한 대화다.

햇볕은 세상 만민에게 똑같이 쏟아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인위적인 그림자가 사람들을 더욱 숨 막히게 한다. 현대생활에서도 통 속으로 쏟아지는 햇볕을 가로막는 알렉산더의 그림자는 헤일 수 없이 많다. 그 대표적인 건축물이 바로 고층 아파트다. 오늘날의 현대도시는 구름 위로 솟은 마천루(摩天樓)가 숲을 이루고 있다.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102층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고 배웠는데 그것은 옛 이야기가 됐다. 뉴욕, 두바이 할 것 없이 이보다 높은 빌딩이 앞 다퉈 올라간다. 바벨탑을 쌓으려는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우리나라도 고층빌딩의 키 재기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전국 도시 곳곳을 돌아보아도 천편일률적으로 고층 아파트가 숲을 이룬다.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에서 주택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안은 역시 아파트에 있다. 그래서 전국 각 도시가 고층 아파트를 경쟁적으로 짓고 있지만 요즘 전세대란이 말해주듯 주택난을 완전 해소치 못하고 있다. 서울의 강남이나 분당 등지를 둘러보면 마치 우주도시를 보는 것 같다. 지역의 군소도시도 서울 흉내를 내다보니 하루가 다르게 시멘트 문화로 빠져든다. 그러다 보니 도시마다 특성과 정체성을 잃어가면서 서로 비슷비슷해진다. 오늘날 도시의 모습은 너나 할 것 없이 시멘트 화장독으로 퉁퉁 부어있다.

전원도시를 표방하는 청주도 마찬가지다. 1980년도부터 시작된 아파트 문화는 순식간에 청주시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용암동, 분평동, 산남동 등 신흥개발 지구에는 아파트 일색이다. 아파트는 나날이 고층화의 속도를 내고 있다. 대농이 있던 자리에 45층인 G아파트가 들어섰고 구도심의 하나였던 사직동에도 41층짜리 D아파트가 들어섰다. 앞으로 인근에는 또다른 59층 규모의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설 채비를 차리고 있다. 슬럼화 된 도심을 정비하고 주택난을 해소한다는 당위성을 갖고 있어 반대 명분의 입지가 작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번 청주시의 시상(市像)과 역사성에 비추어보면 초고층 아파트는 상당한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정서뿐만이 아니라 실생활에 있어서도 도심의 고층아파트는 상당한 불편을 준다. 고층아파트 입주자들이야 시야가 탁 트이고 볕이 잘 드는 이점이 있겠지만 그 주변에 사는 주민들의 고통은 심할 수밖에 없다. 오후 3시만 되면 고층 아파트의 그림자가 저층 건물을 덮어씌운다. 저층 건물의 옥상에서는 식물이 잘 자라지도 않는다. 가정생활의 면면도 상당수 노출되기 마련이다. 한마디로 조망 권, 일조권을 을 박탈당하고 있다. 사직동 일대가 신흥 개발지로 애당초 아파트 단지였다면 그런대로 이해될 수 있으나 이 일대는 구도심으로 개인주택이나 빌딩이 있다 해도 대부분 5층 미만이다. 이런 성격으로 마을을 이룬 기존의 도심에 느닷없이 40층이 넘는 고층 아파트가 지어졌다. 시각적으로도 주변 건물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청주사람들이 서울 등 외지에 갔다. 청주 가로수 길에 들어서면 왠지 모르게 푸근한 맛을 느끼게 된다. 여기에다 사창말 고개(시계탑)를 넘어서면 청주의 진산 우암산이 우리를 반긴다. 사창말 고개에서 우암산을 바라보는 맛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편안하다. 그런데 사직동에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서부터 그 맛이 줄어들었다. 초고층 아파트가 우암산의 상당부분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민들의 조망권은 무시돼도 괜찮은 것일까. 도심 재개발도 좋지만 앞으로는 시민의 조망권을 고려하는 주택정책을 폈으면 한다. 알렉산더 대왕의 그림자로 고통을 받는 디오게네스가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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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