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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세기를 전후하여 치러진 제국주의 간의 전쟁은 국가 간의 이해관계나 영토싸움에 기인된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문화재가 큰 피해를 입었다. 어떤 때는 문화재 약탈로 전쟁의 목표와 양상이 바뀌기도 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대는 전쟁 때 그다지 쓸모도 없는 고고학자, 예술가 등 여러 분야의 학자를 수백 명이나 참전케 했다. 학자들로 구성된 부대는 총도 제대로 쏠지 모름으로 주위에선 이 지식인 부대를 가리켜 '당나귀 부대'라고 빈정거렸다. 그런데 이 엉터리부대가 이집트 정벌에서 여러 유물·유적을 찾아냈고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도 해독해냈다. 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비밀은 이 학자들에 의해 풀리기 시작했다. 소위 '이집트 학'의 토대를 이때 마련한 것이다.

20세기 초, 일제는 한반도와 만주를 침략하기 전에 문화침략을 먼저 했다. 일 학자로 하여금 문화재의 현황과 더불어 주요 유물·유적에 대해선 사진을 찍어두었다. 한반도의 유적은 거의 세키노 다다시(關野貞)가 주도하였다. 충북에도 일제시대에 그가 찍은 유적 모습이 여러 점 있다. 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몇 해 전에 국립청주박물관에서 공개된 사진에는 매몰되기 전의 남석교, 용두사지철당간, 속리산 법주사, 충주 사자빈신사지석탑 등 우리고장의 중요 유물·유적의 모습이 담겨 있다.

한편 히라도리(白鳥庫吉), 도리야마(鳥山喜一) 등은 만주로 향해 발해 유적 등을 발굴했다. 이때 발해 상경성 금란전 터에서 나온 오색찬란한 왕궁의 치미(용마루 양쪽 끝의 장식기와), 용머리 장식, 유약 발라 구운 기둥 밑 둘레장식, 연꽃무늬 전돌 등 알짜배기 출토품은 밀 뱐출 되어 현재 동경대에 소장돼 있다. 일제치하에서 우리민족은 피압박 민족으로서 아픔이 컸는데 문화재도 덩달아 수난을 겪었다. 청주만 해도 청주읍성이 헐리고 이천년의 돌다리 남석교가 매몰되었으며 청주목과 충청병영의 객사 건물이 헐리거나 딴 곳으로 옮겨졌다. 충주 탑평리칠층석탑에도 손을 대어 이상하게 복원하였으며 일대를 파헤쳐 절집의 배치를 알아볼 수 없도록 했다.

일제는 전국에 산재한 태실에서 태항아리를 꺼내 창경궁 안에 모아두었고 경복궁 앞에는 중앙청을 지어 정궁의 앞을 가리게 했다. 석굴암은 천정의 기와를 거두어내고 철근 콘크리트로 돔형의 지붕을 만들었으며 전실(前室)을 무시한 채 엉터리로 복원하였다. 일제의 문화재 훼손 행위는 그 사례를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다. 왜 일제가 그토록 우리의 문화재를 백결선생의 옷처럼 누더기로 만든 걸까. 첫째는 우리의 문화, 문화재가 일본보다 우수하다는 점에 대한 열등감이 작용한 것이고 두 번째는 한국의 민족혼 말살에 있는 것이다. 일제치하에서는 한국인으로서 문화재 보수에 참여할 수가 없었고, 따라서 문화재 보수의 노하우를 아는 사람도 매우 적었다.

광복이후 우리는 비로소 우리 손으로 문화재를 보수하거나 복원하게 되었다. <사> 한국문화재수리기술자협회(회장 · 안상열)가 출범하여 문화재 보수에 나선 것이 불과 반세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 협회는 작업을 하면서 그동안 찍은 문화재 관련 사진과 문화재위원, 문화재전문위원, 박물관장 등 관계인사의 협조를 얻어 귀한 문화재 사진을 확보한 뒤 '우리 문화재의 기록 그리고 기억'이라는 주제아래 '제1회 문화재 기록 사진전'을 지난 11월10일부터 11월21일까지 경복궁 수정전(경회루 앞)에서 열었다. 그리고 문화재실측설계기술자로 이 협회에 참여하고 있는 장현석 청주문화원장 등의 주선으로 이 전시가 지난 8일부터 내년 2월말까지 신봉동 백제 유물전시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불국사 수리 전 모습, 일제시대 석굴암 사진, 광화문과 그 앞의 육조거리, 공주 공산성 쌍수정의 해체수리 모습, 북한산 순수비의 이건 모습, 공주 갑사 해우소(화장실) 모습, 시멘트 미륵불 조성당시의 속리산 법주사 전경, 1960년대 청주극장 앞의 철당간 풍경 등 우리나라 중요문화재의 어제와 오늘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문화재 관련 사진전은 간간이 열려오고 있지만 이번처럼 구한말~일제시대~현재에 이르는 문화재 변천사 사진전은 처음이다. 여간해서 충북지역에서 볼 수 없는 진귀한 사진들이다. 민족의 얼이 농축된 사진전을 관람하면서 기록문화의 중요성을 음미하며 이 한해를 보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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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