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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려진 땅이 친구들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 망설일 시간에/ 우리는 잃어요 한민족인 형제인 우리가 서로 겨누고 있고/ 우리가 만든 큰 욕심에 내가 먼저 죽는 걸/ 진정 너는 알고는 있나 전 인류가 살고 죽고/ 처절한 그날을 잊었던 건 아니었겠지/ 우리 몸을 반쯤 가른 채 살아갈 건가/ 치유할 수 없는 아픔에 절규하는 우릴 지켜줘/ 갈 수 없는 길에 뿌려진 천만인의 눈물이 있어...중략"

잘 알려진 서태지의 랩송 '발해를 꿈꾸며' 노랫말 일절이다. 만주벌판에 대제국을 건설했던 발해의 꿈이 산산 조각나며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점, 중국의 동북공정에 상처받고 있는 발해 유적의 현주소, 그리고 어쩌면 그 비극의 씨앗이 자라나 3.8선, 휴전선을 긋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며 발해의 꿈을 키워보자는 의지를 담고 있는 노랫말이다.

지난 달 발해유적을 취재하며 중국의 동북공정 앞에 유적의 출입마저 봉쇄당했던 안타까운 심정을 서태지의 노래로 잠시 달래본다. 발해는 우리의 역사이나 무대는 중국 땅이고 유물은 중국, 일본, 러시아 등지에 흩어져 있으니 발해는 멸망 후에도 국수주의적 사관과 국제관계의 역학구도 속에서 유물마저 이산가족이 되어있다. 발해의 5경중 가장 큰 수도인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에서 나온 알짜배기 유물은 일본 동경대에 소장돼 있다.

금란전터에서 출토된 용머리 장식을 비롯하며, 기둥 밑 둘레장식, 짐승얼굴 기와, 화려한 치미(망새: 용마루 양끝의 장식기와) 와 연꽃무늬 전돌 등 발해문화의 진수를 엿볼 수 있는 유물 상당수는 이미 일제강점기와 만주사변 때 일본으로 반출됐다. 일 제국주의의 침략방식은 강토를 유린하기 이전, 문화적 침략을 선봉장으로 삼았다. 식민사관에 입각하여 히라도리(白鳥庫吉), 도리야마(鳥山喜一) 등 일단의 학자를 내세워 1930~1940년대 상경성 등 발해유적을 발굴하고 진품을 가져갔다.

장보고가 통일신라시대 서해, 남해 일대의 상권을 장악한데 비해 발해는 동해의 상권을 장악한 해양 국가이기도 했다. 발해는 염주(鹽州:연해주) 크라스키노에서 상선이나 뗏목을 띄워 일본, 신라와 교역했고 사신을 파견했다. 교역품은 호랑이, 담비, 곰 가죽 등이었으며 귀국할 때는 섬유제품, 금, 수은 등을 싣고 왔다. 일본은 발해의 교역품을 엉뚱하게도 조공품으로 해석하고 있다. 발해의 서간문 등도 일본에 일부 남아 있다.

발해역사에 대한 각 국의 해석은 제각각이다. 우리나라는 같은 민족이면서도 발해사에 대해 무심했다. 고문헌에 등장하지 않던 발해는 조선후기 실학자 유득공(柳得恭)에 의해 비로소 첫 선을 보인다. 사방 오천리에 달하는 거대한 대제국 발해를 우리부터가 의식 속에서 지워버린 것이다. 발해는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의 연합정권인데 지배계층은 우리 민족이었다. 남송(南宋) 홍호(洪皓)의 송막기문(宋漠紀聞)에는 "발해의 왕은 대(大)씨이고 유력가문의 성은 고(高), 장(張), 양(楊), 두(竇), 오(烏), 이(李)씨 등"이라 했다. 거의 오늘날에 존재하는 성씨들이다.

주거의 문화를 보면 발해는 고구려의 문화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상경성 및 연해주 크라스키노 성터에서 구들이 발견되었다. 외고래도 있고 양고래도 있다. 벽을 따라가는 고구려 졸본성의 구들과 비슷한 형태다. 출토되는 유물들을 보면 연꽃무늬 수막새, 보상화문, 봉황문 기와 등 고구려의 양식을 답습하고 있다. 배흘림기둥에다 앙련, 복련 조각이 힘찬 상경성의 석등은 틀림없는 우리의 양식이다.

그럼에도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발해를 중국의 역사에 억지로 편입시키고 있다. 발해의 첫 도읍지인 동모산을 중국식으로 바꿔 성산자산성으로, 중경현덕부를 서고성자로 이름붙이고 있다. 발해의 고분이 밀집해 있는 육정산에서는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아예 출입을 금하고 있다. 중경현덕부에서는 몇 장의 사진을 찍다가 감시인에게 들켜 관련사진을 삭제 당했다. 우리의 문화임에도 마음대로 볼 수 없는 유적이다. 감시인은 답사반에게 "2년 후면 마음대로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자기네 식대로 뜯어 고친 다음 개방하겠다는 뜻이다. 각국의 이해가 얽혀있는 발해사를 풀기위해서라도 발해사 연구를 위한 국가 간 공조네트워크가 형성돼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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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