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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곱게 물들고 대추가 빨갛게 익어갈 때면 보은 사람들의 마음이 설렜다. 속리산을 찾는 관광객이 미어지고 대추를 팔아 시집을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추 수확기에 비가 내리면 보은 처녀들은 눈물을 흘렸다. 수확량이 줄어들어 혼수를 마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허구한 날, 속리산과 대추에 목줄을 대고 살아온 보은 사람들이다.

1960년대까지 보은에서 속리산을 오가는 유일한 차량은 '쓰리 쿼터'였다. 물론 승합차도 있었으나 운임이 비싸 보은 사람들은 주로 쓰리 쿼터를 이용하였다. 미군이 쓰다버린 쓰리 쿼터를 적당히 수리하여 쓴 것이다. 쓰리 쿼터는 4분의3톤을 일컫는데 사람들은 일본식 발음으로 그냥 '쓰리꼬다'라 불렀다. 이 차를 타려면 약간의 요령이 필요하다. 발판이 있기는 하나 너무 높아 부녀자나 아이들은 밟고 올라타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자동차 바퀴를 발판삼아 밟고 올라탔다. 양쪽으로 좌석이 있기는 했으나 늘 콩나물 시루여서 좌석 차지가 돌아오지 않았다. 흔들리는 차량 속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속리산을 찾았다.

그 후에는 버스가 운행되었다. 전세버스도 꼬리를 물었다. 속리산은 수학여행 단골코스였으며 이름난 신혼 여행지였다. 버스는 말티 앞에서 일단 멈추었다. 도로사정, 차량사정이 모두 열악했기 때문에 승객은 하차를 하여 지름길로 말티를 올랐고 버스는 빈 차로 늑골을 앓으며 정상까지 올랐다. 구절양장(九折羊腸) 열두 굽이 고갯길에서는 사고도 많이 났다. 이처럼 속리산을 찾는 일이 만만치 않아 하루 관광은 거의 불가능했다. 최소한 1박2일 일정은 가져야 속리산 관광이 가능했다. 이 때문에 속리산에는 숙박업이 성업을 누렸다. 속리산 문턱에서 오리숲 입구에 이르기까지 여관, 여인숙이 도열을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청주~보은~속리산 길이 확포장 되면서 속리산의 숙박업소는 서리를 맞기 시작했다. 뒤이어 요식업소나 기념품 판매업소도 사양길로 접어든 것이다. 도로사정이 좋아지면 관광객이 더 많이 찾아와 장사가 잘돼야 할 텐데 결과는 그 반대였다. 도로포장으로 인해 하루 관광이 가능해졌으므로 속리산에서 숙식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문명의 발달이 가져다준 역작용이다.

이번에는 청원~상주 간 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접근성이 좋아지므로 속리산을 찾는 관광객의 숫자가 부쩍 늘어날 것이라고 보은 사람들은 내다봤다. 관광객뿐만 아니라 물류가 원활해져 보은 발전에 획기적 전기가 될 것이라고 저마다 점쳤다. 그러나 이런 기대와 희망은 단번에 빗나갔다. 물류는 원활해졌어도 관광으로 인한 수입은 되레 줄었다. 전에는 속리산을 가자면 필히 보은을 거쳤는데 이제는 보은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속리산으로 진입한다. 따라서 보은 상인들은 관광객을 대상으로 사이다 한 병을 팔지 못한다.

속리산도 매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고속도로 개통으로 인해 관광 형태가 대부분 당일치기 관광으로 변하고 있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법주사는 물론 천황봉이나 문장대를 당일로 오르내리고 귀가가 가능해졌다. 게다가 알뜰관광이 유행하면서 관광객들은 먹을거리조차도 마련해오기 일쑤다. "장사는 무슨 장사...관광객이 떨어뜨리고 가는 것은 쓰레기와 대·소변 밖에 없어요" 보은 상인들의 볼멘소리다.

청원~상주 간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어려움을 겪는 곳은 보은 이외에도 기존의 청주~보은 간 국도상에 있는 마을이다. 미원, 창리 등은 관광객의 휴게소 역할을 하면서 점심이나 음료수 등을 팔았는데 이 길을 이용하는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매상도 뚝 떨어졌다. 종전보다 30~40%는 줄었다고 하소연한다. 그러고 보면 고속도로가 되레 애물단지다. 우리는 피상적으로 고속도로하면 으레 마을 발전의 동력으로 알아왔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를 보은에서 발견하게 된다. 고속도로가 마을 발전의 젖줄이 아니라 빨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고속도로 만능주의의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 속리산 관광은 단순히 스쳐가는 관광에서 머무는 관광으로 형태를 바꿔야 한다. 그러자면 퍼블릭 코스의 골프장이나 삼림욕장, 캠프장 및 편의시설 등을 갖춰나가야 한다. 웰 빙 붐을 탄 먹을거리 개발도 중요하다. 속리산이 갖고 있는 어메니티(amenity:농촌, 생태환경, 자연이 주는 혜택과 즐거움)를 극대화 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속리산 소나무 숲이 주는 피톤치드 효과, 법주사 관광 및 템플스테이, 삼년산성, 장내리 동학 취회지 및 종곡 동학유적지, 오장환 문학관 등을 연결시키는 문화관광벨트, 웰 빙 관광벨트를 설정하여 고속도로의 빨대 효과를 극복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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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