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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버려지고 홀로 남았지만 행복한 '묘생인생'

청주 상당구 남주동 79세 홀몸노인 이은정씨
폐지 팔아 번 돈으로 30년간 길고양이 돌봐
"따뜻한 고양이집 마련하는 게 유일한 소원"
오는 3월 지역동물봉사단체서 지원할 예정

  • 웹출고시간2018.02.20 21:07:06
  • 최종수정2018.02.21 13:40:22

이은정씨와 고양이 '태명'.

ⓒ 강병조기자
[충북일보] 선한 미소의 해바라기 할머니는 오늘도 폐지를 가득 실은 무거운 손수레를 끌고 거리를 지난다. 그러다 가로등 옆에서 종이 상자 하나를 발견한다. 상자 안에는 다친 고양이들이 모여 있었다.

생활이 어렵고 몸도 성치 않은 할머니는 고양이들을 내버려 둔 채 상자만 싣고 다시 길을 간다. 그러나 두고 온 고양이들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할머니는 이들을 집에 데려와 지극정성 키운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큰 사고를 당하고 만다. 홀로 사는 할머니를 돕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때 할머니의 고양이들이 나선다. 고양이들은 은혜를 갚고자 요술을 부려 할머니를 돕는다.

그림책 '상자 속 요술 고양이'의 줄거리다. 도내에도 책 속 이야기처럼 따뜻하고 훈훈한 이야기가 있다.

청주시 상당구 남주동에 사는 이은정(79)씨는 폐지를 팔아 생계를 잇고 길고양이를 돌보는 홀몸노인이다. 본래 경북이 고향인 이 씨는 20대 초반 나이에 군인이었던 남편을 따라 증평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새로운 삶은 험난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도 모르는 낯선 타지에서 이 씨는 외롭고 두려웠다. 남편이 유일한 버팀목이었지만, 월남전에서 돌아온 이후 잦은 다툼이 있었고 끝내 이 씨를 떠났다.

누구보다 악착같이 살았던 시절이었다. 3남매를 키우려고 주위 비난에도 물불 가리지 않고 일했다. 그렇게 산전수전을 겪고 20여 년의 세월이 지났다. 장성한 자녀들은 제 삶을 찾아 하나, 둘 떠났다.

고양이와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그즈음이었다. 어느 날 고양이 한 마리가 이 씨의 집 마당을 찾았다. 얼핏 봐도 몸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고양이에게는 새끼 고양이가 줄줄이 딸려 있었다.

평생 동물과는 연이 없었던 이 씨였지만 자신도 모르게 이들을 품어야겠단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부족한 생활 형편이었지만 제 발로 찾아온 비쩍 마른 고양이들을 매정하게 내쫓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한 마리, 두 마리 거둬 먹이다 보니 당시 이 씨의 집을 찾는 고양이는 50여 마리에 달했다.

이은정씨가 남주동 자택에 마련된 길고양이 급식소에서 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주고 있다.

ⓒ 강병조기자
10년 전 지금의 청주 남주동으로 보금자리를 옮긴 이 씨의 길고양이 돌봄은 여전히 지극정성이다. 남주동에는 낡은 모텔과 버려진 건물에 살던 외국인들이 키우다 버린 고양이들이 많았다.

이 씨는 증평에서 데려온 고양이 7마리를 포함해 길고양이까지 총 40여 마리의 고양이를 품었다. 고양이들에게는 각각 이름이 있다. '태산', '태국', '태미', '도명' 등 이 씨가 건강을 위해 찾았던 산 이름을 땄다.

고양이의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에서다. 그 배경에는 기적적으로 생명을 건진 고양이 태국이의 이야기가 있다. 올해 3년생인 태국이는 1년 전 주변 고양이들에게 물린 상처들로 온몸에 고름이 가득했다. 인근 병원을 찾았지만 비용이 문제였다. 이 씨 수중에는 60만 원에 달하는 수술비가 없었다.

하지만 이 씨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태국이의 고름을 손수 짜내고 약을 바르며 혼신을 다했다. 이 씨의 정성 어린 돌봄 덕이었을까. 죽음의 문턱에 있던 태국이는 기적적으로 기력을 되찾았다. 아직도 당시 일을 생각하면 이 씨는 눈물을 훔친다. 넉넉지 못한 자신의 형편을 탓하면서 말이다.

이처럼 이 씨의 일과는 고양이로 시작해서 고양이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은 종이 상자들을 활용해 고양이들을 위한 집을 만들고 추위를 막기 위해 이불도 감쌌다.

또 고양이 특성상 묶어 놓을 수 없기에 집 안 곳곳 사료와 물을 두고 청소도 매일 하고 있다. 특히 요즘처럼 온도가 낮은 겨울철에는 고양이들이 동상에 걸리지 않도록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 고양이들의 배가 두둑해지고 나서야 이 씨는 손수레를 이끌고 폐지를 줍기 위해 집 밖을 나선다.

수레 속에 길고양이에게 나눠줄 물과 사료 넣어 다니는 것은 물론이다. 하루 내내 폐지를 주워 버는 돈은 많아야 5천 원이다. 이마저도 사료를 사면 남는 게 없다. 게다가 여름과 달리 겨울에는 오랜 시간 폐지를 줍는 일도 고령의 이 씨에게는 벅찬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작 이 씨는 중앙공원에서 열리는 무료급식소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중앙공원 노인들 사이에서 이 씨는 이미 '고양이 엄마', '고양이 할머니'로 잘 알려져 있다.

사룟값에 보태라며 도움을 주는 이들도 있지만,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 까짓 고양이가 뭐냐'는 비아냥부터 '쓰레기 뒤지는 고양이는 다 죽어야 한다'는 말까지 내뱉었다.

한 번은 어느 노인이 이 씨에게 고양이를 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이유인 즉슨 고양이를 약으로 쓰면 간질에 좋다는 것이었다. 선한 인상의 이 씨도 그럴 때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사람 목숨처럼 말 못 하는 고양이 목숨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청주시 남주동 이은정씨 집 한편에 앉아있는 길고양이.

ⓒ 강병조기자
"사람도 배가 고프면 쓰레기를 뒤지는데 고양이는 어떻겠어. 먹이를 주는 것도 바라지 않아. 사람들이 해코지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요즘 이 씨의 고민은 고양이들의 임신이다. 새끼가 늘어나면 홀로 감당하기가 버겁기 때문이다. 또 발정기 고양이 울음은 주변 이웃에게도 피해다. 중성화 수술이 필요하지만 비용 부담이 크다.

이 씨가 할 수 있는 것은 밤새 고양이 곁을 지키며 다독이거나 실내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 뿐이다. 게다가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최근 이 씨의 허리와 골반 상태가 나빠져 제대로 앉을 수 없을 정도다.

자신이 아픔은 참을 수 있지만, 불편한 몸으로 고양이들을 챙길 수 없다는 게 가장 걱정이다. "나는 괜찮아, 고양이들이 걱정이지. 내가 돌보지 않으면 굶주릴 게 빤한데, 얼마나 비참하고 불쌍해."

힘들다는 내색 한 번 없던 이 씨는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읊조렸다. 이 씨의 소원은 딱 하나다. 고양이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편히 지낼 수 있는 것. 그러던 이 씨에게 최근 요술 같은 일이 벌어졌다.

청주에서 고양이를 돌보던 캣맘, 캣대디 등이 이 씨의 사연을 듣고 도움을 주기로 한 것이다. 어쩐 일인지 남주동의 한 허름한 집을 향하는 길고양이들이 유독 이들의 눈에 띄었다고 한다.

지난해 말부터 이 씨를 찾아 그간 부족했던 사료부터 걱정거리였던 중성화 수술까지 도왔다.

"근처에서 고양이를 돌보다 이곳까지 오게 됐어요. 어려운 형편에도 정말 감사하고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어요. 할머니가 많이 고생하셨으니, 앞으로는 저희가 도와야죠." 봉사자 정은미씨는 이 씨를 다독였다.

이뿐만 아니다. 유기동물을 위한 청년 기업인 '애니멀 공화국'도 이 씨를 돕기 위해 나섰다. 펀딩을 받아 모은 기금으로 오는 3월부터 고양이들의 따뜻한 보금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다.

오랜 걱정거리였던 중성화 수술도 지자체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협력하는 데 뜻을 모았다.

지난 설에도 이 씨는 타지의 가족들을 찾는 대신 고양이들과 함께 있었다. 고양이들이 좀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의 선물이면 충분했다.

"야옹" 고양이 한 마리가 울었다. 이 씨는 반가운 친구를 만난 듯 손을 흔들었다.

이 씨의 상자 속 고양이들은 어떤 요술을 부렸을까. 버림받은 고양이도 홀로 사는 이 씨도 더 이상 외롭지 않아 보였다.

/ 강병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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