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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5.03.12 14:03:21
  • 최종수정2015.03.12 14:03:39

조혁연대기자

1728년 3월 15일, 이인좌 반란군이 청주읍성을 공격할 당시에는 월례(月禮), 해월(海月) 등 2명의 기생 이름이 등장한다. 월례는 관기였고, 해월은 충청병영 소속 홍림(洪霖·?-1728)의 첩이었다.

그날 이인좌 반란군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상여꾼으로 위장해 청주읍성에 다다르자 안에서 성문을 열어준 인물이 있었다. 이봉상의 참모 양덕부(梁德溥)와 기생 월례였다. 두 사람은 이인좌에 포섭돼 내통하던 관계였다.

'이날 밤에 이르러 적이 이봉상이 깊이 잠든 틈을 타 큰 소리로 외치며 영부로 돌입하니, 영기 월례 및 이봉상이 친하게 지내고 믿던 비장 양덕부가 문을 열어 끌어들였다.'-<영조실록 4년 3월 15일자>

청주 우암산 중턱의 해월의 묘.

당시 청주를 주둔지로 하고 있던 충청병영은 병마절도사(달리 兵使·종2품) 이봉상(李鳳祥·1676~1728), 바로 밑인 영장(營將·정3품)은 남연년(南延年), 군관 홍림(洪霖) 등의 군사조직을 갖추고 있었다. 해월은 세 사람 중 군관 홍림의 첩이었다. 그날 홍림은 청주읍성 밖에서 취침하고 있다가 변란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군관 홍림(洪霖)이 변을 듣고는 돌입하여 이봉상 위에 엎드리며 말하기를, "내가 진짜 절도사다." 하니, 적이 끌어내어 항복하라 협박했으나, 그는 끊임없이 욕을 퍼부었다. 이인좌가 탄복하면서 말하기를, "이는 충신이다. 죽이고 싶지 않지만 나를 죽일까 염려되기 때문에 죽인다. 그러나 일이 성사된 후 너의 후손을 녹용하겠다." 하였다.-<〃>

홍림은 이인좌의 말을 받아 "나에게는 본디 아들이 없지만 있다 하더라도 어찌 너 같은 역적에게 등용되겠느냐"(〃)라고 응수했다. 해월과 홍림이 단순한 내연 관계였는지, 아니면 사실상 부부 관계였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홍림이 "나에게는 본디 아들이 없지만"이라는 표현과 그 직후의 진행으로 봐 후손을 얻기 위해 해월을 맞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정황상 홍림은 그 전에 아들 둘을 뒀으나 모두 요절했다.

홍림이 죽은지 얼마 안 돼어 해월은 사내아이를 출산했다. 어떤 자료는 사내아이 이름이 '홍유복'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이때의 '유복'은 '유복자'(遺腹子)라는 뜻으로 이름은 아니다.

조선시대에는 종모법을 따랐기 때문에 어미가 천민이면 그 자식도 자동적으로 천민이 됐다. 영조는 유복자를 면천하고 벼슬을 주는 것으로 홍림의 순절에 보답했다.

'좌의정 조현명(趙顯命)이 말하기를, "(…) 홍림의 두 아들은 계속해 요절하고 다만 아들 하나가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모두 충신의 후손이니, 마땅히 거두어 녹용하는 도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영조실록 23년 11월 28일자>

영조 23년이면 무신란(영조 4년)이 일어난지 19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에 대해 <디지털청주문화대전>은 다음과 같이 적어 놨다.

'그 뒤 유복자 홍유복(洪遺腹)을 낳아 7년 동안 키웠으나 요절하고 말았다. 해월은 "내가 남편이 죽던 날 같이 죽지 못한 것은 그의 유복자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젠 죽어도 한이 없다"고 하며 남편을 따라 죽었다.'

19주년과 7년은 시간 차이가 너무 난다. <디지털청주문화대전>도 역사 기록물이다. 전설이면 전설이라고 밝혀놔야 한다. 그건 그렇고 목숨을 잃었을 양덕부와 월례는 어떤 사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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