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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4.01.14 14:41:36
  • 최종수정2014.01.14 14:41:36

조혁연대기자

옥천으로 피신한 김옥균의 부녀를 서울로 최종적으로 데려온 사람은 같은 개화파였던 박영효로 알려져 있다. 동학군의 기세가 충청도와 호남을 휩쓸 무렵 '이윤고'(李允曰+木)라는 사람이 옥천으로 찾아온다. 그는 김옥균이 1차로 일본을 갔을 때 통역으로 따라갔던 인물로, 제자이기도 했다. 그는 동학 농민군을 진압하던 일본군을 따라 우리고장 충북에 들어왔다가 두 모녀를 만나게 된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이는 우연이 아닌 의도된 행동으로 그 뒤에는 박영효가 있었고, 박영효는 뒤에는 일본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澤兪吉·1835-1901)가 있었다고 관련 논문들이 공통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후쿠자와의 부탁을 받은 박영효가 이윤고에게 김옥균 부녀의 근황을 알아보도록 시킨 것이 된다. 현재 일본 1만엔권 지폐에는 인물 도안이 그려져 있다. 바로 후쿠자와 유키치로, 일본 내에서는 근대화 주역의 한 명으로 칭송받는 인물이다.

그는 김옥균이 차관을 얻으러 일본을 갔을 때는 물론 1884년 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으로 망명했을 때 양아버지이자 후견인 역할을 했다. 그는 메이지 천왕의 스승이면서 현재 동경대학과 쌍벽을 이루는, 게이오대학의 전신인 '난학숙'을 세웠다.

현재의 산케이신문은 극우적인 성향으로 정평이 높고, 그 전신은 '시사신보'다. 바로 후쿠자와 유키치는 시사신보의 설립자기이도 하다. 박영효가 징검다리 역할을 하면서 기계유씨와 후쿠자와 유키치가 편지로 소식을 주고 받기 시작했다.

"때는 10월을 지나 동짓달 초순이었는데, 한 친척집에 숨어 있다가, 옥천관헌에게 들켜서 붙들려 간 곳이 감옥이었습니다. 차마 말로 다하기 어려운 치욕과 고통을 당하면서…'-<명치 28년 3월 7일자 시사신보>

김옥균 후견인 역할을 했던 후쿠자와 유키치로, 일본 1만엔권 도안의 주인공이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김옥균 부녀를 경제적으로 돕고, 또 일본으로 데려가려고까지 했다. 그러나 기계유씨는 일본으로 가겠다고 약속했으나 출국당일 마음을 바꾸면서 일본행은 성사되지 않다.

1894년 김옥균이 중국 상해에서 암살되자 일본내에서 장례위원회를 구성하고, 또 김옥균의 위패를 조선으로 보낸 사람도 후쿠자와 유키치였다.

기계유씨의 편지가 일본신문에 게재된 점은 궁금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앞서 후쿠자와 유키치가 산케이신문의 전신인 '시사신보'를 설립했다고 밝힌 바 있다. 바로 후쿠자와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시사신보에 기계유씨의 편지를 기사화했고, 이것이 오늘날까기 남아 있다.

이때 기사를 쓴 시사신보의 타카미 카메(高見龜) 기자는 사주 후쿠자와로부터 김옥균 딸과 결혼하라는 요청을 받으나 이뤄지지는 않는다. 김옥균의 부인 기계유씨는 파란만장한 삶에 지쳤는지 장수하지 못하고 1914년 사망했다.

그러자 일본 망명중에 얻은 아들인 '김영진'(金英鎭)이 김옥균의 머리카락과 옷조각 일부를 가져와 기계유씨와의 합장묘를 만들었다. 기계유씨는 죽어서야 비로소 남편 곁에 다가갈 수 있었다.

1914년이면 일제 강점기 치하가 된다. 일제는 기계유씨가 사망하자 김영진을 통해 1백원의 거금을 부의금으로 전달했다.

'특별히 김영진(충달공 김옥균의 아들이다)에게 일금 100원을 내렸다. 그의 모친의 상(喪) 때문이다.'(特賜金一百圓于金英鎭【忠達公玉均之子】 以其母喪也.)-<순종부록 대정 3년 9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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